속앓이

(에세이) 누군가로부터 받는 상처 때문에

by 황윤주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땐,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자존심을 지키는 거라 생각했었다.

금방 멈출 거라고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결혼을 하고 동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착하고 좋은 며느리로 소문이 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조금만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이 내 탓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그러려니 생각했었고 진심을 알아주실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시다 말겠거니 하고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시부모님께서 몸이 아프셔도 내 탓이었고,

아파서 병원에 모시고 가서 수술을 받게 된 것도 모두 내 탓이었고,

새벽에 도둑이 든 것도 내 탓이었고,

교통사고가 나도 모두 내 탓으로 돌아왔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럴 때마다 하나 둘 가시가 되어 내 가슴에 콕콕 박혀 쌓여만 갔었다.


그러한 일들은 언제나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있을 때 일어났다.

특히 남편이 출근을 하고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나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옆집이 외가댁이라 남편이 퇴근해 오면 언제나 한결같이 그곳으로 불러서 나에 대한 얘기를

안 좋게 해 왔고 남편은 내게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 왔던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남편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나 조금씩 탈선해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어야 했다.


직장을 다닐 땐 조금이라도 책잡히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일해놓고 출근하고,

퇴근해 오면 밤늦게까지 밀린 집안일을 해야 했다.

정말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물론 한 가문의 사람, 한 가문의 일원으로 가족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걸 감안한다고 치더라도 정도가 있어야 함에도 그 끝을 알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속을 부글부글 끓여야 했던 날들이 점점 늘어만 갔었고 혼자 조용히 숨죽여 울어야만 했다.

그러한 속앓이는 몇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들이 모두 떠나시고 형제들과 상속 문제로 법적 다툼이 끝나고,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은퇴하고 난 후에 모두 멈추게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속앓이를 너무한 나머지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 멘털에 문제가 생겼었다.

결국 몇 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그런 병을 앓아야만 했었다.

지금도 그 병명은 기억을 못 할 정도로 길고 긴 병명이었다.


속앓이!

남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땐, 나와는 무관한 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라고 한 것 같다.

나 또한 살면서 하나하나 경험하면서 깨우치고 배웠었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일일이 다 열거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큰 상처였고 아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엔 바보처럼 그냥 참고 기다렸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 하면서.

진실을 말할 날이 있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 가며 살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모두 다 묻어두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을 땐 가슴이 쓰리고 아프다 못해

아렸었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그걸 지키겠다고 그렇게 안간힘을 썼는지 아쉬움이 가득하다.

물론 지금은 누명도 벗고 진실도 밝혀졌다.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했던 무심한 남편도 그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어쩌다 진실을 말해도 들으려고도, 믿지도 않았던 남편이 참 야속했었다.

그랬던 남편이 세월이 흐르고 본인이 실제로 겪고 나서야 내 말을 들어주기도 하고 믿기 시작했다.

더불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를 그렇게 대했던 배경은 나를 어떻게 대하든 아무 말이 없고 남편이 내게 잘해주는 것이 싫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또한 친정이 가난해서 돈을 다 빼돌릴까 봐...

내가 대학교를 안 나와서 더욱더 그랬었다.

그렇다고 시댁이 특별히 부자는 아니었고 집 한 채가 전부였다.

나를 모질게 대해도 가만히 있어서 매를 더 번 겪이었다고...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였다.


이러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시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천도재와 백중맞이를 하면서 무당의 입을 빌어서 두 분의 혼령이 말씀해 주셨다.

그러한 방법으로나마 진실을 알게 되고 사과를 해 주셔서 감사했었다.


아무 잘못도 없이 그토록 오랫동안 힘들고 아프게 했던 일들이 그대로 묻힐 뻔했는데...

순간 너무도 감사하고 속이 후련했다.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쳐 올라 울컥해지면서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이제라도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었다.


모든 걸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몇십 년 동안 가슴에 그토록 무겁게 매달렸던 돌덩이가 치워졌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남편에게도 그 얘길 전하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평생 달고 살았던 속앓이를 떨쳐버릴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 많은 세월을 그렇게 라도 달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 세상엔 많고 많은 사연들로 가슴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크고 작은 일부터 각각의 사연들로 평생을 속앓이 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동일한 잣대로 잴 수는 없으나 가슴 아픈 것은 대부분 대동소이할 것이다.

특히 가족 간에 빚어지는 일들로 인해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

물론 우리 주위에 간혹 가족관계 속에서 그러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을 줄 알지만, 뿌리 깊은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로 아끼며 사랑해도 모자랄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는 그런 일만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