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그리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오히려 20말, 21세기는 인터넷상에서'잊힐 권리'가 하나의 권리로 인정되기도 한다. 나로선 뭘 남기고 싶은 건 아닌데, 어떻게라도 해보자는 일정들에좀 성가시고 피곤할 때가 생긴다.
이를테면 학생 때의 말도 안 되는 스케줄 같은 거다.
'00시에 A를 하고, 01시에 B를 하고 02시에 C를 해서,,,' 결국 뿌득하게 하루를 fully 채우는 식의 일정같은 것!
성가시다는 표현은 허세다.정작 이런 식의 스케줄은 숨 쉴 공간이 없어 다 수행하더라도 체력을고갈시키고야 만다. P.T를 받고 비싼 비타민을 채워 넣더라도 매일의 힘은 매일의 밤과 아침의 자연스러운 연결, 주고받음에 있기에 당췌 저랬다간 쉽사리 수면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여백을 견디기
연구자이지만생업이 있는 나는, 반드시 헉헉 댈 때를 마주한다.부족한 능력으로 매듭을 지어놓고, 뭐라도 할 양인데, 어쩌다 일정이 꽉 채워져 옴짤달싹 못하게 되는 것이다. 꾸역꾸역 하면서 후회한 듯 무슨 소용이랴. 마치 마라톤 주자가 몸과 정신이 분리된 상태에서 레이스를 완주하는 순간 같다. 하지만 레이서는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현실 일정은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늘 있지 않은가.
여백은, 20프로 남겨서는 안 된다. 40프로 남겨야지. 남겨진 자투리 시간에 아주 사소한 일만이 생길 것이리라는 제멋대로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완전히 착오다)
어떤 일이 들어올때 그것이 왜 20프로 분량이라 생각했을까. 당연히 40프로일 수 있는데! 그러니 제깐에는 해내려고 한들, 얼마나 과부하가 오겠냐는 말이다.
첫날 미리 오찬 식사에 초대받았는데, 거절을 예상했으나, 두 번 온 연락에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3시간 반이라는 어마무시한 시간을 반납하고 나갔으나...
두둥 ' 내 밥을 누가 드신 거냐?!!' 흐음.. 호텔 측의 어눌한 대응에 점심으로 준비된 스테이크를 분실하고야 말았고, 혼자가 더 편한 나는 행사장을 나오고야 말았다.
이미 그날부터 힘든 상태는 확정됐다.오후 늦게 여의도 컨퍼런스에서 발언을 마치고, 운 좋게 지하철을 제 때 타고
용산역에서 KTX에 몸을 태웠다.(이렇게 글을 쓰며 복귀하니 지금 이렇게 탈진한 이유를 알게 됐다)
'너는 30대가 아니다...'
예전에 지도 교수님이 "인생의 꽃은 40 대야!"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다. 그 말은 즉, "이래 저래 겁나 바쁘다"이다.
고속열차를 타는 일은 멋진 일이야
휴일인 노동절(May Day)을 보냈지만, 속으로 긴장했다. 소중한 사람들이 아프거나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참 안타깝고 맘 불편한 일이다. 그런중에도 자연스럽게 농담도 하고 배려해야하는데, 나에겐 그런 여유와 유머가 없음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님! 인간은 너무 연약한 존재입니다.라고 말한다.
새벽에 서울에 올라오는 길에 바로, 출근을 하게 됐고, 또 중요한 점심도 있었다. 마음은 즐겁지만, 그 마음을 충분히 나눠줄 에너지가 없는 상태였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곧장 오징어 상태에서 운동능력치를 검사하게 됐다.
오마이갓. 하. 단순히 운동능력을 측정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센터 일정에 대한배려로, 내게 힘든 시간임에도 상대방의 시간에 맞춘 결과다.
두 일정 모두. 무대책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일정이 과연, 내가 견디는 과부하만큼이나 중요했을까?
이런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부담되는 일이 자연스레 소화되기도 하지만, 안 그럴 때가 많은 것을!
곧이어 분기마다 하는 주요 일정을 안팎으로 뛰고서야
결국 그날 삼일째 열 두시에 집에 들어오는 일정까지.. 하루종일 후회할 힘도 없는 상태로 버텨냈다.
살아들어와 다행이지만, 그 각각 나와 함께한 분들께는 민망하고 미안하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음 번엔 과연 잘, 거절하고 내게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유리한 선택이란 부족하거나 뭔가 허전할 수 있는 선택임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