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후에 복음의 말씀을

하루를 바꾸는 한 구절, 오후 햇빛에서 피어나는 말씀의 향기

by JayGee JIN
예배당 밖 낙엽이 뒹그는 거리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오후다. 작은 예배당 안에는 맑은 숨결처럼 영어 성경 구절이 흘러나왔다.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라는 고린도전서 13장 4절의 말씀이다.


성경을 읽는 중년 집사의 미세한 떨림의 음성이 공기 속을 부드럽게 흔들었고, 그 울림은 마치 봄날의 바람결처럼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누군가는 인생의 고단한 오후를 지나왔고, 또 누군가는 제2의 인생 문턱에서 첫 걸음을 내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날, 모두가 같은 구절을 붙잡고 있었다.


성경 귀퉁이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으며,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고 있었다. 영어로 외우는 그 한 문장은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삶의 고백이었고, 낯설지만 따뜻한 기도의 제목이었다.


중년의 여인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단어를 되뇌고 있었다. “Kind… kind…” 그녀의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늘게 베어 있었지만, 그 입술에서 흐르는 단어는 소녀의 순수처럼 맑았다.


어떤 이는 발음을 교정하며 작은 웃음을 지었고, 노인은 굳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며 그 구절을 따라 읽었다. 그 순간, 서로의 세대와 인생의 거리가 사라졌다. 오직 한 말씀만이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고 있었다.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투영된 예배당 안의 공기가 잔잔히 흔들렸다. 그들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창문가의 화분이 햇살에 이파리가 반짝이고, 먼지 입자들이 천천히 그 빛 속에서 춤추었다.


그 광경은 마치 천사의 숨결 같았다. 말씀은 언어를 넘어선 음악이 되었고, 그 음악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그날의 예배당은 누군가의 영혼이 다시 깨어나는 정원이었고, 하늘은 그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그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믿음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문득 떠올렸다. 2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인지 능력의 노화가 늦게 찾아온다는 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언어를 바꾸어 생각하고, 다른 말로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마다, 뇌는 새로운 신경의 길을 낸다. 아마도 이들의 젊음은 단어 속에, 말의 떨림 속에 숨어 있는 신의 경이로움이 새 생명의 새싹을 틔운 것이었으리라.


낯선 문장을 외우며 웃던 얼굴들에는 이상하리만큼 생기가 돌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영혼이 다시 새싹을 틔우는 것 같이.



‘Love never fails.’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고린도전서 13장 8절, 그 한 문장이 조용히 공기를 메웠다.


그 말은 단순히 문법이나 발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온 날들 속에서 흔들렸던 사랑의 진심을 다시 일깨우는 찬란한 빛이었다.


그리고 그 구절이 입술에서 흘러나올 때마다, 점차 노쇠해지는 나의 뇌는 젊은 날의 기억처럼 다시 깨어났다.


어쩌면 신앙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언어로 새로움을 배우는 일,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을 다시 낯설게 듣는 일. 낙엽이 지는 계절에도 마음은 여전히 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일.


외국어를 사용하면 뇌의 노화가 지연된다는데, 나의 신앙도 영어 성경구절로 다듬어 볼까나?



그날 예배당을 나서며 나는 혼잣말처럼 기도했다. “하나님, 저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하루에 한 구절씩, 당신의 말씀을 외우며 늙어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입속으로 천천히 읊조렸다.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Love never fails.”

그 문장들이 내 안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날의 오후, 말씀은 내 영혼을 젊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