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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저녁 외출

보통 김밥

어제는 사랑하는 에세이 작가 단어벌레 님의 첫 북토크가 있는 날이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꽃시장에 나가 꽃 두 다발을 사고, 식구들이 저녁에 먹을 김밥을 쌌다. 김밥은 자주 싸주지 않아서 그런지 언제든 저녁 외출이 있을 때 미리 싸두면 불평 없이 잘 먹는 음식이다.
개인 일정 때문에 미리 싸두는 거라 특별히 햄 한 줄, 소시지 한 줄 이렇게 두 가지 햄을 넣었다.^^

우리 집은 해가 떨어지면 모두 집으로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남편은 해가 떨어지면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저녁에 일이 있을 경우 이렇게 미리 저녁을 준비해놓고 나가는 것으로 양해를 구한다.
남편은 저녁을 먹으면 9~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5~6시에 일어난다. 그 루틴은 여행을 가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여행지에 가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8시에 불 다 끄고 자기도 한다. --;;
올빼미족인 내가 어쩌다 이런 아침형 인간을 만나게 됐나 싶다. 진짜 미스터리다.

어쨌든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남편의 그런 생활 습관 때문에 저녁 외출은 꿈도 못 꿨는데, 아이들이 이제 곧 3~4학년이 되다 보니 다음날 등교하지 않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엔 저녁에 일정이 있으면 저녁밥을 미리 준비해놓고 살포시 나갔다 오곤 한다.
이것만 해도 어디냐며, 이 사소한 변화에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

어제 갔던 북토크는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동네에서 열렸는데, 이동 과정이 참 버라이어티했다.
가는 길에는 퇴근 시각이랑 겹쳐서 콩나물이 되어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탔고, 돌아오는 길에는 취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젊은 여성 한 분이 너무나 취해서 지하철 문에 퍽퍽 몸을 부딪치며 쓰러지길 반복하는 모습을 보았다.
만취한 여성분이 너무나 걱정되어 어떻게 집에 데려다줘야 할지 고민되었는데, 다행히 지하철에 다른 여성분들 중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어 서로서로 계속 만취한 여성분을 케어하며 데려갔다.
아마도 곤란한 자리에서 사양하지 못하고 자신의 주량을 초과하는 술을 마신 게 아닌가 싶었는데, 험한 세상이라 걱정되었다. 아직 우리 딸은 한참 어리긴 하지만 10년 후가 걱정되어 눈길이 더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여성분을 무심하게 방치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챙겨주려고 해서 다행이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따뜻하다 생각 들었다.

어쩌다 보니 서론이 길었는데, 제일 중요한 북토크!
북토크는 너무 좋았다. 작은 책방도 아늑하면서 오밀조밀해 좋았고, 수 년 간 온라인과 책으로만 만났던 작가님을 최초로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데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정갈한 태도에 반했다. 어쩜 글 느낌과 사람이 이리도 닮아 있을 수가!
나는 글로만 만났던 분들이 실제로 만나면 글 느낌과 다르단 소리를 종종 듣는 편이라 단어벌레 작가님의 일관성이 참 보기 좋았다.
준비해 간 꽃다발을 드리며 뭔가 길게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작가님도 첫 북토크라 경황이 없으실 것 같고 나도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틈에 있으면 경황이 없어지는 습성이 있어 포옹만 하고(?) 헤어졌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북토크 현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직 글 하나로 세대를 아우르고 교감하는 그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생각이 같으면, 취향이 같으면 나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한 살, 두 살이 문제가 아니라 열 살, 스무 살 차이가 나도 같이 느끼고 같이 교감할 수 있는 거다. 내가 타샤 할머니에게 공감했던 것처럼 말이다.

짧지만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기에 이동 과정 중 있었던 에피소드들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고, 나는 또 갑자기 열정이 불타올라 노트북 앞에 앉았다.
무엇이든 쓰고 싶었고,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깜박 졸은 사이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추위에 눈 뜬 나는 따뜻한 온수 매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제는 잠들었지만 오늘은 꼭 쓸 것이다, 글을.




#단어벌레

#깊이에눈뜨는시간

#북토크


@moment_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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