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은영의 집은 잘 살았다. 고가의 사과폰과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신발 브랜드들. 은영의 취미는 ‘신발 콜렉트’였다. 워낙 이 나이대는 보이는 게 중요하기에 은영은 금방 이목을 끌고는 했다.
“교복은 똑같지만 신발은 매일 다르잖아 난 그래서 좋아!”
긴 생머리에 쌍꺼풀은 없지만, 무척이나 눈이 컸다. 조금 통통한 체형과 주근깨 가득한 피부가 매력적이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은영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어느덧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반장 선거를 한다는 공지를 올렸다. 은영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지안아 나 뽑아줄 거지?”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는 생각에 기뻐 끄덕였다. 다른 아이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만장일치로 은영이 선정되었다. 워낙 평판이 좋은 친구라 휴대전화를 걷는 ‘휴대폰 부장’까지 맡게 되었다.
소풍으로 에버랜드를 간다는 소식을 듣자 반 아이들은 기뻐했다. 댄스동아리 소속 금자영과 이유민부터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은성과 최보리.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채안나와 임유진까지 모두 신나 했다. 그들 모두 ‘은영’에게 다가와 무엇을 입고 갈지 서로 자문을 구했다. 은영은 말 그대로 우리 반 인기스타이자 소위 말하는 ‘인싸’였다.
반면에 나는 걱정부터 되었다. 도와줄 어른이 없을뿐더러 소풍비 5만 원은 내게 큰 부담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양가 부모의 반대에도 결혼해서 나를 가졌다.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 시절이지만, 내가 5살 때 아빠가 나를 안고 친척 집을 많이 돌아다녔다. 늘 거절당했고 아빠는 일용직 일을 하면서 힘겹게 나를 키웠다.
그럼에도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장난감 회사에서 ‘복직’하라는 소식이 왔다. 아빠는 너무 바쁜 나머지 어린 나를 항상 밤늦게까지 어린이집에 맡겨두었다.
어린이집은 매일 5시까지 정해진 시간이 있었지만, 늘 나는 10시가 넘어야만 집에 가게 되었다. 항상 친구들은 먼저 가고 나만 남았다. 매일같이 선생님들이 바뀌면서 내 곁에 앉아있으니 이유 없이 무서움이 크게 들었다.
하루는 원장 선생님께서 아빠를 불렀다. 언제까지 규정된 근로시간을 어길 거냐며 화를 내자 거듭 죄송하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서운 나머지 오줌을 싸버렸고 새싹반 선생님이 “어머 얘!”하며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셨다.
보다 못한 아빠는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하필이면 그 일이 잘 되었다. 단칸방에서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갔다. 나도 미술학원과 태권도학원을 다니며 새롭게 친구를 사귀었다.
자만심이 컸던 아빠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장 크게 가세가 기울었다. 아빠는 거금을 얻자 욕심이 생겨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 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엄청나게 나를 추궁하고 몰아붙인다. 1년이 지나도 아빠는 연락이 없었다. 도망갔다. 다시 돌아온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었고 시도 때도 없이 빚쟁이들이 쳐들어왔다.
새 교복을 사야 하는 와중에도 같은 반 아이들의 부모님이 “지안이랑 놀지 마”라며 내 상황을 부풀렸다. 학교생활도 힘들어진 와중에 아빠 어디 갔냐고 묻는 아저씨들이 무서웠다.
“애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무 그러지 마이쇼”
사채업자 아저씨들은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던 중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외할머니가 집을 팔아 천만 원은 내 명의로, 나머지는 다 가져갔다. 그러더니 억지로 날 시골집으로 데려왔다.
“우리 애 어릴 때랑 똑같이 생겼네.”
칭찬이 아니었다. 날 항상 냉랭하게 대했고, 외할아버지도 혀를 차며 겨우 얻은 큰딸을 잃었다고 꼴 보기 싫어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보처럼 울면서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너만 아니었으면 딸이 죽지 않았을 거라며 화를 냈다.
외할머니가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볼 때 힐끔 본 적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들고 머리띠를 쓴 한 앳된 여자아이. 참 예쁘고 수수했다.
누군가 외할머니댁으로 찾아왔다. 엄마의 동생, 외삼촌이다. 외삼촌은 1남 1녀 중 둘째다. 하지만 부모님은 누나에 대해서만 기대했다고 한다.
외삼촌은 나를 보며 주먹을 쥐다가도 안쓰러워서 쓰다듬곤 했다. 유일한 조카지만, 아무렇지 않게 사랑할 순 없었다.
나는 애초에 ‘행복’과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니 삼촌은 결혼했다. 숙모는 나를 보자마자 “어머니 돌아가시면 우리가 키워야 해?”라며 소리 질렀다. 내가 있으면 결혼 안 할 거라며.
안 그래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더 이상 나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외숙모는 고학력자에 엄청난 외모를 갖고 있어서 결혼이 무산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외숙모가 제시한 조건은 딱 하나, ‘내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삼촌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숙모 편을 들었다. 내 의사는 중요치 않았다. 결국, 나는 다른 지역 보육원에 맡겨졌다. 양육 포기 의사를 비추었기에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난 외가에서 살 때 음침하고 더럽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했다. 속상하고 우울해서 내 베개는 늘 축축했다. 학교 가기 싫어 이불에 오줌을 싼 날에도 외할머니는 꾸역꾸역 학교에 보냈다.
새로운 지역에서도 안심은 사치였다.
잠시 딴생각을 한 사이 은영이 내게 물었다.
“지안이 너는 부모님이랑 에버랜드 가봤어?”
“어? 어…. 가봤어.”
거짓말했다. 오래 보지 않은 아이에게 내 개인 사생활을 다 말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금방 들켰다.
담임 선생님이 서류를 올려두고 교장의 호출을 받아 교장실로 향한 찰나, 은영은 생리 공결을 내려 교무실로 갔다.
신의 장난인지 하필 바람에 서류가 휘날려 내가 사는 주소를 봤다. ‘00 보육원’ 게다가 엄마는 사망신고가 되어 있는 것.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 잘못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안아, 나 할 말 있는데 잠깐 나올래?”
은영은 네 약점을 잡았으니 학교 잘 다니고 싶으면 나한테 잘하라고 했다. 나는 제발 비밀을 지켜달라 부탁했다. 살고 싶었다.
다음 날부터 은영은 조용했다. 나도 평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학교를 다녔다.
8시 30분이 되자 수업 시간 10분 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은영이 가방을 가져와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했다.
“보리야 은성아~ 휴대전화 내야지.”
은영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늦게 내면 늘 따듯하게 불러 준다. 하지만 나한테는 퉁명스럽고 화를 냈다.
“야 김지안 휴대폰”
반 아이들의 이목을 사게 됐다. 내가 무얼 잘못했나 싶어 두 귀와 눈을 의심했다.
“너 나한테 잘못한 것 있잖아”
설마 부모님과 함께 에버랜드를 갔다는 거짓말을 말하는 걸까 싶어 치가 떨렸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 비밀이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았다. 새로운 장난감이 생겼다는 것인지 은영은 미소를 지었다.
휴대폰 수거가 끝나고 은영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잘못한 것 있으면 말해줄 수 있어? 고칠게”
자기 딴에는 그냥 싫으니까 내 마음이라고 말했다. 너무 당황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설마...”
은영이 내게 생일을 물어본 날이 있다.
“김지안, 너 생일 6월 1일이야?”
“어, 왜?”
은영은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가를 올렸다.
“이런 근본 없는 애랑 내가 생일이 똑같다고?”
은영은 자신이 주인공이고 주목받아야 하는데 내가 태어나서 흐지부지됐다는 이상한 주장을 펼쳤다. 세상에 같은 생일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 신경 거스르는 짓 하지 마. 무릎 꿇어.”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야?”
따지려는 사이, 은영의 신발을 모르고 밟아버렸다. 그건 아주 고가 브랜드였다.
반 아이들은 놀라 나를 쳐다보았고, 은영은 “이거 500만 원짜리인데 갚을 수 있어?”라며 쏘아붙였다.
거듭 사과했지만, 은영은 용서받고 싶으면 무릎 꿇으라며 윽박질렀다. 결국 나는 모든 걸 포기하는 심정으로 무릎을 꿇고 바닥을 핥아야 했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만 15세가 넘으니 보호자 없이 내 명의 체크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지원금을 받았고, 학부모 상담이라는 명목으로 아빠에게 다달이 생활비를 받았다. 하지만 돈을 받아도 쉽게 쓸 순 없었다.
계절마다 새로 사야 하는 교복은 수십만 원이었고, 이건 큰 부담이었고, 어리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도 무리였다.
“우리 가게는 미성년자 안 뽑아!”
사업주가 미성년자를 채용할 때는 가족관계증명서 또는 부모님 동의서 등을 반드시 받아서 갖추어 두어야 했다. 이는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를 채용할 때 보호자의 신원 확인 및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니 보육원 선생님도 나를 엄청나게 혼냈다. 네가 공부라도 잘했으면 덜 무시당했을 터라며 윽박질렀다. 잘하고 싶고 열정적으로 살았으나 내겐 정말 소질이 없었다. 매번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다독일 뿐이었다.
하루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과는 달리 현실은 참담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내 편은 없다. 차별하는 걸 알면서도 “김지안은 싫어할 만해”라며 몰아갔다.
사람이 싫어도 기본적으로 지킬 건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 의사와 다르게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은 빠르게 퍼졌다. 구전이라는 건 참 무섭구나 싶다.
난 매번 뒷자리에 앉게 됐다. 앞에 앉은 애가 뒤돌아서 날 쳐다보는 게 무서우니까 사람들의 눈빛은 소름 끼치고, 피할 수도 없었다.
“김은영 싫어”
나 역시 은영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나한테 무례한 사람을 사랑하고 보듬어 주는 건 불가능하다. 예의를 지켜서 상처 안 되게 좋게 말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더 비참해갔다.
싫은 데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에 가장 미웠던 건 나 자신이었다.
반격할 힘도 없고 셀 수 없이 참기만 한 나 자신.
한 번 경고한 적이 있지만, 여전히 은영은 자신의 무례함을 모른다. 한심하기도 하고 불쌍했지만, 학교라는 세계에서 김은영은 가장 높은 급이어서 전혀 페널티가 없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한 게 있을까 싶어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다.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는데?’였다. 엮이기 싫다는 것이다.
나아지고 싶어서 노력했지만, 다른 아이들의 화풀이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들은 내 행동 하나하나를 욕하기 위해 계속 레이더를 켜고 있었다.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피해의식’이라고 몰아댔다.
정말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나는 남몰래 자살 시도했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애들은 “쟤 피해의식 있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살면서 이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피해의식이 아니라 상처받은 거야.”
나는 전할 수 없는 혼잣말을 했다. 이 먹이 사슬에서 은영은 최상위에 있다. 그녀를 주축으로 다른 애들도 군중심리에 삼켜져 나를 싫어한다.
우연히 교실에서 눈을 마주치면 왜 쳐다보냐고 한다. 우리 반 댄스부 금자영과 이유민이다. 둘은 단짝이다.
잠시 멍하니 있었을 뿐인데, 악의를 갖고 쳐다본 것도 아닌데, 그걸로 ‘멍청이’, ‘왕따’ 등 기분 나쁜 단어로 나를 조롱했다.
“김지안이랑 놀지 마.”
이유민은 나랑 놀지 말라고 부추기고 따돌렸다. 유민과 친한 은성과 보리 역시 내 옆자리에 앉으면 더럽고 냄새난다고 했다.
자영은 나를 교탁 앞에 세워 스스로 잘못한 이야기를 들으라고 했다. 1 대 다수의 마녀사냥. 잔인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반 아이들은 내가 급식을 못 먹도록 조리돌림까지 했다.
“배고파.”
3교시가 끝나니 허기졌다. 지갑의 돈을 세어 보니 매점에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동안 파뤼소보로나 뚜레빵 같은 프랜차이즈 빵집에 가거나 매점에서 과자로 때웠다. 급식만큼 영양가가 없어 당뇨를 겪기도 했다.
지금 밥을 먹지 않으면 저녁까지 굶어야 했다. 혼자라도 급식을 먹을까 고민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SNS에서 혼자 밥 먹기 난이도라는 글이 엄청나게 유행한 적이 있다. 학교 급식실 혼자 밥 먹기는 최고난도였다. 장담하건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혼자 밥 먹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와 아무 관계없는 애들도 ‘분위기’에 이끌려 선동당했다. 교실은 붙어있고, 자주 마주치면 대화하지 않더라도 은연중에 나를 알게 되니까.
민방위 훈련이나 특강에 갔을 때 운동장이나 체육관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용기 내서 급식을 먹으러 갔다. 급식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쳐다보고 웃었다.
‘쟤 혼자 먹나 봐.’
침묵 속에서 서로에게 눈치를 보내는 게 보였다. 친구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내 옆에 앉은 애는 바로 자리를 옮기면서 경멸 어린 눈초리를 띠었다.
“밥맛 떨어져 진짜.”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주변에서는 깔깔 웃으며 동조했다. 나는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화장실에서 토했다.
그때 트라우마를 얻어 혼자 급식 먹으러 가는 게 무서워졌다. 학교 밖에서 먹는 건 괜찮았다. 급식실은 나를 아는 공간이자 친구 관계를 시험하는 곳 같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급식을 먹지 않고 매일 교실에서 혼자 있었다. 나를 슬쩍 보고 가는 애들도 있었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표정 관리하고 울지 않으려 애썼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상처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쟤네들이 나한테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을 것이다.
매번 다짐하고 견뎌봤지만, 점점 한계에 부딪히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자 주먹을 쥐었다. 은영을 포함한 반 아이들이 너무 미워서 제발 나한테 했던 짓 고대로 돌려받기를 바랐다.
드라마처럼 내가 당했던 방식 그대로 복수한다면? 복수는 복수를 낳을 거고 예기치 못한 불행이 나를 덮칠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생길 현실의 변화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내 인격을 지키기 위함이다.
물론, 그들도 면전에서 내 이름을 대놓고 언급하진 않는다. 비난하고 뒷담 화하는 게 잘못됐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으니까.
“친구를 괴롭히지 마세요.”
인권 상담 혹은 학폭 예방 교육을 받으면 늘 듣는 말이다. 학교에서는 이 당연한 말이 시행되지 않는다.
예방 교육은 무슨…, 그냥 애들 헛소리하는 시간이지.
쟤네들이 반성이나 할까? 전혀!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린 애들은 교육 중에 몰래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 한다. 재미없다고 글을 올리며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욕을 쓴다. 나중에 물어보면 그냥 했다거나 수업이 지루했다고 핑계 대겠지만, 사실 그들의 표적은 단 한 명이다.
교육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숨 참고 교실로 돌아가야 하는 내 처지.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다.
모두의 호감을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두가 날 싫어하는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힘들었다. 사람의 뇌는 정서적 반응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그렇게 진화했기에 연민과 동정 등을 인간만이 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감정적 사고보다 이성을 앞세워야 한다.
그 논리대로 나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다.
현실은 똑같았다. 여전히 나는 왕따였다.
다른 반 친구를 사귀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이 가장 빨리 퍼지기로 유명한 게 여고다. 나에 관한 이야기는 전 학생에게 ‘재미’ 그 자체였다,
먼저 다가가기만 해도 피하려 하고 딴청 부린다. 나는 불청객이었다.
학교는 정 줄 데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관계와 공동체는 양쪽 모두 노력해야 이루어진다.
내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상황이 바뀌는 걸까?
가늠하기 어려웠다.
모범생 집단에 속한 한효빈과 방주희에게도 다가가 봤지만, 둘 역시 나를 피했다. 다 내 잘못이란다. 내 편은 없고 모두가 나를 저격한다. 난 나를 포기해 버렸다.
집에 가서도 자책하고 울기만 했다.
“이 상황이 다 제 잘못인가요?”
나는 교실에 안 가고 몰래 상담실로 갔다.
나는 상담실 단골이다. 참다 참다 온 게 여러 번인데,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늘 ‘아니야’라고 답해주었다.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선생님이 내 편이라는 안정감을 얻고 싶었다.
선생님은 안쓰럽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내게 문제가 없다면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고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반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따돌렸다.
남이 먼저 다가와 주기를 그렇게 원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먼저 손을 뻗은 횟수가 더 많았다. 하지만 다가갈수록 “애들이 다 너 싫어해”라는 말을 들었다. 욱한 나머지 ‘정확히 그게 누군데?’라고 물으면 답을 못한다. 친구를 파는 것 같다나?
상담 선생님은 우는 날 보며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음을 알았는지 말없이 토닥였다.
어른들도 가해자들도 ‘자신의 잘못’ 임을 알고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기 자신을 견딜 수가 없어 게워 내고자 지속해서 욕하고 정서적인 따돌림을 강행하는 거다. 되돌릴 자신이 없겠지, 정말 내가 잘못했다면 진심을 담아 비판했을 테니까.
나를 인간 취급 안 하는 그들이 미웠다. 인격을 모독하며 깔깔거리는 모습이 소름 끼쳤다.
“내가 너랑 같은 반 친구였다면 좋았을 텐데….”
상담 선생님은 쓴웃음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온전한 나를 믿어주고 응원하는 친구가 필요했다.
이 상황이 너무 숨 막히고 괴로워 빨리 수업이 끝나기를 바랐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아니었다. 이런 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집단에 어울리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함부로 말한다.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달이 원해서 도는 걸까?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당연히 있었다. 함께 어울리고 싶은데 허락된 것이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싫어하는 애가 자꾸 친해지려고 하면 짜증 날 것이다.
계속 배척하는 데 억지로 구겨 넣으면 고통만 남을 뿐이다.
사람들은 매번 내가 잘못했고,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다수가 주는 위압감은 생각 이상으로 위력이 세다. 내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걸 듣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만 깊어지고 있었다.
난 수업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복도를 지나며 귓가에 스치는 수군거림, 미워하는 눈초리를 애써 무시했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줄 선 이들이 보였다.
“아….”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뭐라 벙끗거렸다.
저 뜻을 안다.
- 하필 얘가 쓰던 자리야?
다수가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낙인.
그 낙인에 찍힌 소수자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저기… 지나가도 될까?”
최대한 정상적으로 들리게, 거슬리지 않게 들리도록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 그래.”
길이 트였다. 등 뒤로 가시 돋친 말소리가 들렸다.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내 일거수일투족을 문제 삼는 아이들이 불쾌했다.
“아, 어이없네.”
“그니까. 왜 말 걸고 지랄이야.”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누굴 말하는지 명백했다.
자신이 학교폭력 가담자라는 걸 알까?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유는 딴 게 아니었다. 나중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학교폭력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최대한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발각되지도,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측은지심이 있지 않나? 양심이 있다면 뉘우쳤으면… 했다.
피곤하고 지쳐 얼른 자리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더 이상 무의미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다.
죽을힘을 짜내 교실 문을 열었다.
그때, 섬뜩함이 몰려왔다.
“다 지 싫어하는 모르나?”
“눈치 진짜 없네.”
또 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그런데 하필 걸어오던 은영과 부딪쳤다. 나는 분명 가만히 있었는데. 은영은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아.”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한 눈빛이었다.
“야, 진짜 사과 안 하냐?”
분명 자기가 먼저 쳤음에도 뻔뻔하게 나를 몰아갔다.
나는 억울해서 입 밖으로 용기를 꺼냈다.
“네가 먼저 쳤잖아.”
“진짜 더러워.”
은영은 나랑 부딪힌 팔을 잡았다.
사과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더 강하게 쏘아붙였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모두의 시선이 느껴졌다. 날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편들어 주길 바랐는데.
신이 있다면 제발 지금 도와줘.
신도 날 버린 걸까? 야속하기만 했다.
“너 왜 자꾸 내 이름 말 안 하면서 욕하는 거야?”
죽을 각오로 덤볐다. 의식적으로 나를 지켜야 한다고,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반 아이들은 다수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우월감에 나를 더 괴롭히는 걸지도 모른다.
“너 내 말 못 들었어? 아니,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알고 사과를 구해야 하는 거 아냐?”
황당했다. 어이가 없었다. 은영은 나와 싸우면 모두가 자기편을 들어줄 거라는 생각에 기세등등했다.
“사과할 사람은 너잖아.”
오늘만큼은 꼭, 그동안 담아놨던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와 김지안 개센데? 기어오르네.”
난데없이 수연이 등장했다.
안수연, 우리 반 상담부장 처음부터 반 아이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안수연이라는 아이가 있다. 우리 반 상담부장이다.
나랑 같이 있을 때 누가 수연이에게 왜 저런 멍청이랑 같이 다니냐고 물었다. 내가 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수연이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불쌍하니까. 멍청이라서 놀아주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이 천사라니 뭐니 하면서 치켜세웠다.
정말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이 애는 자기 이미지 메이킹하는 데 날 쓰는 거였구나.
반 아이들과 나의 관계에 동등함이 없었다.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빠져있었다. 보이지 않는 계급의 선을 그어놓고, 나를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장식으로 생각했다.
나를 챙기면서 도덕적인 우월감을 만끽하는 수연이가 누구보다 더 미웠다.
나는 불편하다고, 그만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안수연은 교실에서 울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자기를 챙겼는데….”
다들 날 손가락질했다.
장님처럼, 귀머거리처럼 졸업할 때까지 얘와 겉으로 친한 척하며 지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안수연은 처음부터 날 친구로 생각 안 했다.
학교에서의 대인 관계는 동등한 생활이 아니라 전쟁이다, 선택받아야 살고 손가락질받는다면 그거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립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비참함을 삼키고 참는 아이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안수연이 울 때와 내가 울 때의 반 아이들 반응은 정반대였다.
다들 이렇게 잘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구나.
그 이후 안수연의 태도는 급변했다. 내가 욕먹을 때 가담하는 건 당연하고, 토할 것 같다니 쟤를 굳이 왜 챙기냐니, 날 멍청이라고 했을 때보다 더 심하게 날 모욕했다. 게다가 나를 괴롭히는 데 재미들인 김은영과 친해지면서 이 둘은 정말 가까운 사이가 됐다.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화낼 힘도 사라졌다. 여기서 더 노력하기란 불가능했다. 앞이 막막했다.
가장 비참했던 건 내가 받는 대우에 점차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싫으면 싫다고, 상처받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반 아이들에게 나는 화풀이 대용 샌드백이었다. 날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아프다고 하면 깔깔 웃으며 “지가 뭔데?” 욕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날 괴롭히는 애들처럼 똑같아지기도 싫었다.
그래, 난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하고 있구나.
쟤는 정치질을 한다. 학급이라는 사회의 축소판에서 다수의 여론을 가져오기 위한 행동이다.
“야. 애들이 다 너 싫어하는 거 몰라?”
아현이 은영을 거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선동한 것도, 주도자도 다 김은영이다.
아현은 1남 1녀 중 막내다. 따로 하는 동아리는 없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했다. 지나갈 때마다 ‘시 x아’라고 욕을 한다거나 조롱을 하고는 했다. ‘왜 그래?’라고 물어보면 ‘너한테 한 거 아닌데 찔렸어?’라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힘들었다.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챈 은영은 반 아이들을 주축 삼아 발을 빼며 간접적으로 공격했다. 진짜 가해자가 누군지 모르게 교묘하게 말이다.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모이며 나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애들 말고 이름으로 말해봐.”
그동안 쌓아온 감정이 폭발했다.
쟤네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조별 과제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내가 미운 것이다. 내가 설령 잘못했다 해도 좋게 풀 수도 있었을 거다. 난 내게 상처 준 애들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걸 왜 우리한테 그러는데.”
쟤네가 말하는 우리에는 내가 없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보다 사람은 많은데 소외되는 게 더 비참하다.
“이름 못 말하는 게 말이 돼! 내가 너희한테 뭘 잘못했는데!!!”
묵묵히 대화를 듣던 애들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수 편을 들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소수를 버리고 다수를 택한 것이다.
나름의 생존법이겠지.
적대받는 나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아팠던 만큼 너희도 고통스러웠으면 좋겠어.”
웅성웅성.
“피해의식 저네.”
“왜 태어났냐 그러니까?”
“부모 없는 티를 내네.”
반 아이들은 쉽게 선을 넘어버렸다.
내 책상에 적힌 세 글자를 보고야 말았다.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틀린 말은 아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날 돌아가셨고 아빠는 빚쟁이들에 시달려 연락조차 어려우니까.
내 생일은 동시에 엄마 기일이다.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왜 나에게만 냉소적일까?
신의 장난인지 하필 김은영도 오늘이 생일이다.
교실에서 누구는 축하받고 누구는 조롱받는다.
더 버틸 힘이 사라졌다.
나는 조롱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성악설은 맞는 것 같다.
나를 괴롭히는 강도가 높을수록 아이들은 서로 잘했다고 추켜세운다.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사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웠다.
감정이 거칠게 요동쳤다.
역설적으로, 문득 한 가지가 뇌리를 스쳤다.
죽고 싶지 않았다.
진짜 엉망이네.
사실 너무나도 살고 싶었다.
나는 책가방과 핸드폰을 챙겨 교실에서 도망쳤다.
울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분명 뛰쳐나가는 내 모습을 교실 안에서 보며 웃음거리로 삼았을 거다.
날 비웃을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는 예감에 숨이 막혔다.
제발 누가 나 좀 구해줬으면.
더 이상 혼자는 싫어.
체육 시간에 피구 하다 과호흡이 와서 보건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은 반인 이은성과 최보리가 ‘나 사실 쟤 불편해’,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한 걸 들었다.
내가 없는 줄 알았겠지.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순 없겠지만 실제로 그런 얘길 들으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한 교실에 고정된 아이들과 1년을 함께 하는 제한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는데, 이 공동체 안에서 내 친구는 없었다. 혼자이게 되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볼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에서 멈췄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남겨졌다는 사실은 자존심 상하는 문제였다. 게다가 이미 형성된 무리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 ‘어떡해...’라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런 힐끔 거림뿐이었다. 나를 무리에 끼워주는 건 꺼리는 듯했다.
따돌림당하는 게 자신의 인성과 사회성 결여 때문이라고 하는 건 헛소리다. 학교는 또 하나의 세상이다. 학생에게 학교는 유일한, 가장 중요한 사회다. 그런 곳에서 고립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다.
그럼에도 나아질 거라며 내가 다수를 이해하라고 강요한다. 다수와 소수 중 후자를 변화시키기가 편할뿐더러 탓하기도 쉬우니까 그러겠지.
유명한 공리주의 문제가 있다.
두 선로가 있다. 각각 1명과 5명이 누워 있다. 기차는 이 중 한 길로 가야 한다. 브레이크는 밟을 수 없다. 선로만 바꿀 수 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대다수는 한 명을 희생시킨다.
그런데 그 한 명이 내 가족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데,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가이드라인도 통하지 않는 상대다. 자신이 당하면 울고불고 난리 칠 거면서 다른 사람이 당하면 모른 척 합리화한다. 나에겐 씻을 수 없는 낙인이 새겨지고 있었다.
오늘도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선다. 구원의 손길은 없다. 부조리하고 비도덕적인 다수가 만든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창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파리지옥 같은 똥통 속에서 착하게 살아봤자 돌아오는 건 따돌림이다.
‘학교라는 감옥 안에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졸업이라는 석방을 기다린다.’는 문장이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나는 누가 날 관찰하고 쓴 건 줄 알았다.
학교는 교도소이자 독자적인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공간이다.
눈먼 이들이 만들어 낸 급 속에서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다.
내 잘못이 아님에도 한 명이 선동하면 군중심리가 작동해 내 인격체를 짓밟는다.
죄수번호 1506
죄수번호 1506
죄수번호 1506
내가 한 잘못은 ‘이 학교에 온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