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지안아 일어나.”
알람 대신 누가 날 깨웠고 보챘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일어나야지.”
잠이 덜 깬 채로 눈을 비비며 힘겹게 일어났다.
“아빠?”
난 눈을 크게 떴다. 그토록 보고 싶던 아빠가 있었다.
믿기지 않아 뺨을 때렸다.
“생일이라고 늦잠 자는 거야?”
“진짜 아빠 맞지?”
나는 아빠를 부둥켜안았다. 아빠는 아이고...라는 말과 함께 내 손을 잡고 서둘러 식탁으로 향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고기미역국과 깨 뿌려진 제육볶음. 따뜻한 밥공기.
“우리 공주님~, 얼른 생일상 먹자.”
아빠의 정성이 가득 담긴 반찬들은 큰 감동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오랜만에 마음껏 먹었다. 맞은편에 앉은 아빠는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빠는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였다.
“어! 이 케이크….”
틀림없이 위시가 준 케이크였다. 그런데 촛농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황급히 핸드폰으로 ‘위시의 베이커리’를 검색했다.
“없어?”
블로그 리뷰도 없었다.
‘뭐지?’
“무슨 생각해?”
아빠는 초를 꽂은 후 성냥으로 불을 피웠다.
하나하나 불이 붙는 초를 보니 내 마음이 하나씩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우리 딸의 생일 축하합니다. 소원 빌었어?”
“헤헤, 아직 생각이 안 나. 나중에 할게.”
나는 ‘엄마 보고 싶다’는 진짜 소원을 묵음으로 말하고 촛불을 껐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 올해 6월 32일은 급격한 폭염에 주의 차
속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6월 32일? 잘못 들은 걸까 싶어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그렇게 놀라?”
“말도 안 돼.”
-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생일자인 김지안 양
“푸흡!”
마시던 물을 뿜어버렸다.
어릴 때 학교에 기자가 온 적이 있다. 인터뷰해 볼 사람 손들라고 해서 들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진짜 내가 TV에 나오다니.
“전 세계에서 너만 생일인 기분이 어때?”
“말이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뺨을 꼬집었다.
“앗!”
꿈이 아니었다.
나는 은영의 근황이 궁금해 SNS에 접속했다.
은영의 페이스북에는 아무런 축하 메시지가 없었다.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이 진짜 없는 건가?
달력에도 32라는 숫자가 확실히 박혀있다.
그때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지안 씨! 보이보이즈 시현입니다. 전 세계 단 한 명뿐인 생일 축하드려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다. 공식 마크가 있는 인별그램 계정이었다.
난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시현은 내 암울한 학창 시절에 힘이 되어 준 유일한 존재였다. 나보다 3살 많고 노래를 정말 잘한다. 솔로로 발매한 <넌 절대 혼자가 아니야>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가사가 내 마음에 와닿았다. 게다가 이 곡은 시현이 왕따 당한 과거를 회상하며 쓴 자작곡이었다.
음악 사이트에서 1위 했을 땐 감사함의 표시로 결식아동에게 수익을 기부했다. 그의 선한 영향력은 세상을 놀라게 했고 그로 인해 팬도 많아져 사인회와 팬 미팅에 참가하려면 엄청난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최애가 축하해 줬어!”
너무 신이 나서 아파트가 들썩일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처음으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리에 놀란 아빠가 양치하다 말고 달려왔다.
입가의 치약 자국이 괜스레 웃겼다.
아빠는 내 모습을 보며 흐뭇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아빠…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없어.”
나는 의아하면서도 걱정이 됐다.
시계를 보니 학교 갈 때였다. 설마 또 괴롭힘 당하는 건가 싶어 슬며시 겁이 났다.
“학교 잘 다녀와.”
아빠의 말에 든든했지만, 갑자기 아빠가 떠나면 어떡하나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미리 걱정하지 말자. 집에 돌아오면 반겨줄 사람이 생겼다는 것부터 이미 많은 변화다.
축축해진 아빠의 눈가를 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마음 한편이 측은해졌다.
아빠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시작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만큼은 온종일 행복하기를 바랐다.
띵동.
- 13층입니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는 자주 멈췄다.
“어머~, 지안아 안녕.”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15층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늘 차분하고 똑똑해서 뭐든 잘할 거 같다며 칭찬해 준다. 사실 전혀 아니었지만,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오늘 생일이지! 생일 축하해.”
“어? 어떻게 아셨어요?”
“얘는~, 버스랑 지하철에 아주 소문이 났던데? 생일 너무 축하한다~.”
아주머니 때문에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들도 나를 힐끔거렸다. 내 사진이 뉴스에 나오고 대중교통에 실렸는데 관심을 안 두는 게 이상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은 안. 내 핸드폰이 ‘카톡’ 소리를 냈다.
“이런 걸….”
- 지안아 생일 축하해(선물).
어릴 적 아빠와 함께 만났던 소꿉친구 현서였다. 연락을 안 한 지 오래돼서 멋쩍었지만, 처음으로 받은 기프티콘이라 너무 소중했다.
- 기프티콘 받아 보고 싶었는데 챙겨줘서 고마워!
스토리로 인사를 주고받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진심을 다해 현서에게 답장하고, 스토리에 지금 이 순간을 올렸다. 그러자 대화 나눠 본 적도 없고 친구만 맺었던 사람들이 개별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생일인 사람 처음 본단다. 천 년 동안 아무도 없었다나?
스토리를 조회하면 누가 내 소식을 봤는지 알 수 있다. 모두가 축하해 주는 건 아니었다. 무시하는 아이들 목록을 보며 조금 실망했다.
“내가 너무 과했나.”
거창한 선물이나 장문의 편지가 아니라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올려줬으면. 너무 욕심냈나 싶다가도 나름 말도 하고 친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른 척하는 거 같아 서운했다.
“헐!! 버스.”
오늘따라 버스가 이상해 보였다.
“!”
외부 전광판에 ‘0601 김지안 생일 축하해’라고 적혀있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버스에 탄 나는 앉을자리를 찾았다.
“학생, 얼른 앉아.”
기사님의 호통에 서두르다가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여기 앉아!”
곰처럼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는 내가 좌석에 앉자 말을 이었다.
“오늘 생일이지? 축하해.”
“네? 감사합니다.”
이쯤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니었다. 버스와 지하철 전광판에 내 이름이 도배돼 있다. 무슨 디스토피아의 한 장면도 아니고. 좋은데 살짝 싫은 이상한 감정이 교차했다.
혹시 몰래카메라 당하는 건가?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혹시 어떻게 아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자리가 생일석이니까.”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케이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생일이라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단다.
저출산 문제와 시민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은 비운다. 혹여 역차별이라는 여론이 확대될까 봐 정부 차원에서 생일석을 만들었다고 한다. 복지의 일환이라나?
- 이번 정류장은 사랑고등학교, 사랑고등학교입니다.
나는 곰 닮은 아저씨를 포함한 몇몇 분의 축하를 뒤로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누구나 날 알아보고 호감을 보인다는 게.
하지만 호의만 누리면 미움도 받기 마련인 법.
“야, 비켜.”
한 무리가 내 어깨를 치고 깔깔 웃었다. 김은영의 친구인 은성과 수연이었다. ‘아 더러워’라는 말로 또 공격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학교 외관이 보였다. 어쩌면 진짜 마주해야 할 현실이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난 침을 꿀꺽 삼켰다.
걱정하는 일의 90%는 안 일어난다고? 천만의 말씀. 내가 학교생활에 대해 불길한 상상을 하면 꼭 현실화했다.
건널목 앞에 서니 등교하던 학우들의 목소리와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 바닥을 내려다봤다. 심장이 또 두근거리려 해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학교는 왜 그대로지?
‘야, 쟤 오늘 생일이래’
‘왜 태어난 거야?’
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분명 내 얘기다.
나는 1년에 단 하루도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울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간절히 빌었다. 집, 버스에서처럼 학교도 바뀌었기를.
“위험해!”
정신 차려보니 나는 넘어져 무릎이 까졌고, 등 뒤로 화물차가 빠르게 지나갔다. 날 구해준 애는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
“너 사고 날 뻔했어.”
명찰엔 강소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자연 갈색 머리에 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누구지? 이렇게 예쁜 애는 내가 분명 기억했을 텐데.
주위에서 수군거림이 들렸다.
괜히 나 때문에 소원이가 피해볼까 걱정됐다.
“고마워”
소원의 손을 뿌리치고 서둘러 교실로 달려갔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가려 하면 ‘쟤랑 어울리지 마’라며 불특정 다수의 따돌림이 시작됐다. 근거도 없고 통제도 못 하는 따돌림에 체념한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고 남 눈치를 보게 됐다. 조금이라도 내 얘기를 하지 않을까,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도 먼저 내 탓을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 세우기가 습관이 됐다. 이런 내 모습에 지쳐 결국 죽어야만 끝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야, 선생님. 너무 아파요.”
“엄살은. 이제 괜찮아?”
진짜 아팠다. 이 작은 고통도 참기 힘든데 죽겠다고 난리를 떨었다니.
소독 후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준 보건 선생님은 이제 새살 돋을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모두가 과정을 알지만, 결과만 빠르게 바라고 있는 걸까.
인류는 언제쯤 마음의 상처를 완벽히 치료하는 법을 찾아낼까?
예비종이 울렸다. 내게는 지옥행 열차를 알리는 소리였다.
“지안이 오늘 생일이니?”
보건 선생님이 달력을 보다가 말했다.
“네.”
그러자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생일 선물이라고 주셨다. 열어 보니 마들렌 몇 개가 예쁘게 포장돼 있었다. 작은 선물이라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선물 덕분에 전쟁터에 기꺼이 들어갈 용기가 났다.
드르륵.
고요하고 적막한 공기.
목이 조여 왔다.
내 관계에 관심 없는 애들은 별거 아닌 일에 의미 부여한다며 피곤한 성격이라고 할지 모른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하는 소리다. 진짜 비난받아 마땅한 불특정 다수가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지안아.”
담임 선생님이 날 불렀다.
“뭔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멍하니 있어?”
당황스러웠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나를 얕잡아 보이게 하고 애들이 공격할 빌미가 된다는 걸 선생님은 알까?
하지만 오늘의 나는 달랐다. 용기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오늘 생일이라서요! 잠시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엥? 오늘 김지안 생일이야?’
애들이 웅성거렸다.
“지안아, 생일인데 선물 많이 받았어?”
아현이 물어보자 옆에 있던 은영이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충직한 하인처럼 반 아이들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제삼자가 보면 분명 사이좋게 축하하는 모습이겠지.
아현의 진짜 의도는 이거였다.
‘넌 우리 반 왕따라 친구도 없어서 생일 축하받을 사람도 없겠다.’
난 아현의 의도를 비틀었다.
“내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마워.”
수업이 끝난 뒤 쉬는 시간.
내 자리는 교실 맨 뒤라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너무 잘 들렸다. 쟤 진짜 눈치 없고 애들 다 싫어한다며 찐따 주제에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분위기와 미워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다. 하지만 교묘한 따돌림을 어설프게 돌파하려고 했다간 나만 더 이상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견디는 게 최선이었다.
“자! 오늘은 우리 학급 공동 추진 계획이었던 생일 롤링 페이퍼를 쓸 거야.”
창체 시간에 한 담임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오늘 생일인 사람 쟤밖에 없잖아.”
“설마 저 찐따한테 써야 해?”
담임 선생님은 내 상황을 알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것 같아 개입하지 않았다.
“지안이를 위해 정성 담은 편지를 써야 해.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은근슬쩍 뒤돌아 흘겨보는 애부터 한숨 쉬는 애들까지 곳곳에 보였다.
새 학기 때 학급 교칙을 정했고 생일자에게 롤링 페이퍼 쓰자고 정한 거다. 억울했다.
나도 이전 생일자들에게 정성을 담아 적었다. 그때는 가식 떤다고 욕먹었었지만. 그러나 또 상처받을까 두려워도 내심 설렜고 기대됐다.
“여기.”
우리 반은 총 26명이다.
‘생일 축하해.’
‘안녕.’
성의 하나 없는 공허한 글이었다.
“하! 진짜 짜증 나.”
“우리가 왜 해야 하는데?”
반 아이들의 말투는 들을수록 거북해졌다.
가장 거슬렸던 단어는 ‘우리’였다.
우리 반이라는 말에는 내가 없다. 체육 대회 반별 티셔츠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거나 스승의 날을 위해 카네이션과 케이크를 살 때 나에게는 어떤 언질도 없었다.
매번 나를 빼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는 건 늘 곤혹이었다. 생활비가 빠듯해 돈을 안 내고 싶다고 하면 눈치 없다며 비난했다. 어떻게든 떠밀려서 돈을 내야 했고,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늘 무시했다.
분명한 건 쟤네들은 날 싫어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규 수업 시간 동안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견디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필요할 때만 억지로 나를 끼운다. 우리라는 단어에 환멸이 든다. 특히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엮이고 싶지 않다.
한때 아현이 자기랑 다니던 무리랑 싸워서 “어쩔 수 없지, 내가 봐주는 거야.”라며 나랑 같이 짝을 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현과 그 무리의 관계가 호전되자 바로 나를 버렸다.
걔네들은 가끔 아현에게 나를 가리키며 “야, 너 친구잖아 챙겨.”라는 말을 했다. 그들이 말하는 친구는 어떤 비속어보다 더 듣기 싫었다.
나는 어디에도 낄 수 없는 불청객이었다.
“아, 근데 또 이상한 거 하잖아.”
“뭐?”
아현과 은영이었다.
“위문편지. 그거 왜 하는 거야?”
위문편지는 우리 학교와 특정 부대가 결연하여 오랫동안 해오던 활동이었다. 군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 가끔 과자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나는 위문편지도 장문은 아니더라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썼다.
어떤 날은 이와 관련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김승현이 주범이었는데, 얘는 나를 괴롭히기를 좋아한다. 성격 자체가 무례한데, 걔가 위문편지에 온갖 조롱과 비속어를 담은 것이다. 편지를 받은 군인은 당연히 화를 냈고 SNS에서 크게 논란이 됐다. 교장은 이 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아직도 승현은 자기 잘못을 모른다. 나만 그런 거 아니라며 뻔뻔했다. 많은 애들이 거기에 질색했다. 담임 선생님이 필적 조회하겠다고 으름장 놓아도 굴하지 않았는데, 철면피인지 앞뒤 계산 못 하는 막무가내인지 알 수 없었다.
“김지안.”
승현이 다가왔다. 아래로 흘겨보며 팔짱 낀 채다. 얘는 자기 친구들로 무리를 만들어 나를 공격하길 즐겼다.
승현 같은 학교폭력 가해자의 특징은 절대 고유명사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 ‘애들’ 등 어떻게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전체를 들먹인다. 동시에 자신에게 올 피해를 대비해 이름은 언급하지 않는다.
분명 동갑이고 같은 여자인데, 그들의 비언어적인 폭력은 큰 위압감과 거한 압박감을 줬다.
“할 말 있어?”
나는 굴하지 않고 맞섰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김승현. 그만 좀 해.”
나는 모두에게 착해야 한다는 강박과 승현 역시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버리기로 했다.
김승현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지저스’ 이러면서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한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았다. 어느 날은 반 애들이랑 등굣길에 나를 보고선 ‘야. 큭큭, 봤냐?’, ‘네 친구잖아’라며 조롱했다.
복수하고 싶었지만, 왜인지 그러기 싫었다. 용기가 없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왕따 당할 때 반격하라고 조언한다. 맞는 말이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솔직하게 싸웠다가 더 미움받는 일도 있고, 화냈는데 만만해 보이면 최악이다.
왕따 당하는 사람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절대 그런 걸로 합리화할 수 없다. ‘네가 너무 소심한 거 아니냐’며 ‘자기주장을 제대로 해’라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다수의 가해자와 방관하는 불특정 다수가 정말 밉다. 하지만 가장 미운 건 나 자신이었다.
“와, 기어오르네. 찐따 주제에.”
김승현이 얼마나 무례하냐면, 내가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찐따년 엄마로 살 바에는 나가 뒤져야지.’라는 폭언을 한 적이 있다.
“이게 진짜.”
승현이 내게 손찌검하려 했다. 모두 당황한 눈치였고, 나 역시 움찔거리며 방어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뭐 하는 거야?”
누군가 승현의 손목을 낚아챘다.
“넌 뭐야?”
“나? 강소원.”
소원의 힘은 승현을 제지할 수 있을 만큼 강했다. 승현은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다. 괜스레 꼴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얘가 싫어도 부모님은 왜 들먹여.”
소곤소곤.
“우리 학교에 저런 애가 있었어?”
어수선한 분위기를 쳐낸 소원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너… 자리 여기야?”
“오늘부터 여기 앉으려고.”
반 아이들의 신경이 모두 소원에게로 향했다.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할 말 있어?”
아침에 날 구해줬던 아이잖아?
“도와줘서 고마워.”
“뭘, 당연한 거지.”
소원은 미소를 지었다.
창체 시간이 끝나고 4교시 사회 수업이 이어졌다.
옆에 누군가 앉아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오늘따라 에어컨 바람이 더 시원하게 느껴졌고, 수업 중에 교과서를 넘기는 촉감도 색달랐다.
수업이 끝나고 승현 무리가 미안했다며 소원이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그러나 소원은 내 손을 잡으며 ‘내 친구랑 먹을 건데?’라고 말했다.
승현은 크게 웃으며 애들의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아이들도 승현을 따라 비웃기 시작했다.
승현은 잠깐 할 말이 있다며 소원에게 손짓했다.
“지안아, 금방 올게. 잠깐 기다려 줄래?”
“어… 어, 그래.”
겨우 사귄 친구인데 이간질로 사이가 틀어질까 불안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길래 화장실까지 불러?”
“아…, 그 김지안 괜찮아? 걔 왕따잖아.”
승현은 지안에 관해 이야기했다. 작년에 완전 찐따였다며 학교 애들이 다 싫어했으니 엮이지 말라고.
“지안이가 너한테 뭐 잘못했어?”
정말 지안이 잘못했다면 좋게 충고해도 되지 않나? 왜 지안을 따돌리고 자신이 우위를 점하는 것에 큰 의의를 두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니 그 김지안이.”
“지안이도 왕따 당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잖아.”
소원 단호한 태도에 승현은 안절부절못했다. 솔직히 승현이 지안을 싫어하는 데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지안이 고립되고 모두가 지안을 싫어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거 알아?”
승현은 틴트를 바르다 멈칫했다. 몸 어딘가가 덜덜 떨렸다.
“지안이는 잘못한 게 없다는 걸 너도 알지.”
승현은 들고 있던 거울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자길 갉아먹으면서 그냥 지안을 괴롭힐 뿐이라는 방증이었다.
“이 범죄자 새끼들아.”
소원이 쏘아붙였다. 따돌림은 누구에게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지안이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 건 너야.”
소원은 더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화장실을 나왔다.
승현은 소원이 나가고서야 큰소리로 쌍욕을 했다.
“지안아! 밥 먹으러 가자.”
교실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 소원은 지안과 함께 급식실로 갔다.
‘급식실에서 친구와 함께 있다니.’
오늘 내 생일인 걸 안 건지 미역국이 나왔다.
소원은 ‘오늘 생일이지? 생일 축하해’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우리 둘을 보는 좌중은 냉담했다.
‘저런 애가 있었어?’
‘찐따랑 왜 노는 거야?’
공황이 온 것처럼 수저를 든 양손이 부들거렸다.
순간, 소원이 내 손을 잡았다.
“나갈까?”
눈물이 핑 고였다.
나는 학교 안에서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괜한 명분이 될 까봐
“우리 땡땡이칠래?”
소원은 내 팔을 잡고 학교를 나왔다.
“세상이 얼마나 크고 좋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보는 사람이 더 힘들다. 나가서 떡볶이나 먹자!”
장마가 시작됐는지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 없이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고 시내로 나가 떡볶이를 먹었다.
“소원아, 다음엔 어디 갈까?”
“캔모아.”
“캔모아? 그게 언제 적 이름이야. 싸이월드 하던 사람 같아.”
“맞아, 어떻게 알았어?”
“놀리지 마!”
캔모아는 없지만, 근처 우유 빙수 전문점은 있었다.
소원은 요즘 빙수가 좋아졌다며 자기 때는 팥빙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나이 아니었나? 자기 때?
‘특이한 말투네.’
“넌 좋아하는 게 뭐야?”
“먹을 거?”
“응.”
“피자.”
“왜?”
“우리 엄마가 빵 장사하거든? 나 어릴 때부터 케이크 만드는 법도 배웠어.”
빙수를 먹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나는 최근에 유명한 다음 단계라는 노래를 부르며 디귿 춤을 췄다. 소원은 자기도 안다며 기역자 춤을 췄다.
그 춤은 옛날 가수 박정남의 안무였다.
“너 진짜 옛날 사람 같아.”
소원은 웃으며 ‘어린 게 까불고 있어’ 나를 꼬집었다.
우리는 한바탕 노래를 부른 후 피자집으로 갔다.
그런데 직원이 나를 알아봤다.
“오늘 생일인 분!”
그러더니 동네방네 소리를 질렀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나를 쳐다봤다. 축하받으니 감사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올~ 김지안. 계 탔네.”
소원은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 배불러.”
피자를 다 먹고 잠시 숨을 골랐다. 어느덧 비는 그쳤고 햇빛이 내려왔다. 소원은 많이 먹었으니 이제 운동하자며 보챘고, 저 멀리 있는 남산타워에서 야경을 보자고 제안했다.
남산을 오르는 길.
땀이 줄줄 났다.
소원은 어디서 체력이 나는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가자….”
“빨리 와! 왜 이렇게 느려!”
서울의 야경은 무척 예뻤다.
소원은 잠시 풍경을 구경하다가 내게 선물을 건넸다.
“Wish list?”
표지에 그 제목이 적혀 있는 다이어리였다.
“설마….”
불현듯 잊고 있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왜 그래?”
소원은 내 표정을 보며 물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냐, 아냐!”
나는 손을 휘저었다.
“사실 생일날 죽으려 했어.”
소원에게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죽으려고 뛰어내렸는데 위시라는 사람이 구해줬다?”
하지만 자살 시도가 있던 날 이후 지금까지, 학교 아이들의 괴롭힘은 이어졌다. 반 아이들이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 해도 그들의 진짜 모습을 봤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을까 겁이 났다.
막막하고 힘든 문제였지만, 소원에게 털어놓으니 한시름 가벼워졌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
“이해해, 강해질 필요도 용서할 필요도 없어.”
소원은 묵묵히 듣고 있다 말했다.
“너희 엄마는 네가 죽길 원하지 않으실 거야.”
“생일 우울증은 왜 계속 그대로일까.”
한없이 푸념하다 문득 소원이의 눈치를 살폈다. 계속 부정적인 얘기만 하면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나를 달랬다.
“더 듣고 싶어서 그런데, 얘기해 줄 수 있어?”
난 생일 우울증을 겪어 왔다. 극심하게 외로워지는 것이다.
친한 친구가 없었다. 생일 땐 어떤 날보다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사실 오늘도, 전 세계에서 나만 생일이라고 온갖 축하받을 때마다 기쁨 마음 구석엔 회의감이 있었다.
어떤 생일을 보냈는지 SNS에 알려야 한다는 사실도 우울함에 큰 몫을 차지했고, 나와 생일이 같은 김은영과 계속 비교하게 되니 최악이었다.
연예인들의 모습을 동경했다. 나도 사랑받고 싶고, 축하받고 싶은데, 내 욕심이 과한 걸까 싶어 속상하고 눈물이 났다.
나는 쌓아왔던 속상함을 다 토해냈다.
“이제 좀 괜찮아?”
“응…. 들어줘서 고마워.”
눈물 자국에 가려진 서울의 야경은 한없이 아름다웠다. 옆에 친구가 있어서 그런지 든든했다.
“네가 생일 때 우울한 이유는 스스로를 잃어버려서가 아닐까?”
그 말에 만감이 교차했다.
“!”
그 순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노느라 핸드폰 알림을 신경 쓰지 못했다.
‘아.’
아빠와 약속했던 게 떠올랐다.
내 당황함을 눈치챈 소원이 말했다.
“얼른 가 봐.”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배려만 받는 것 같아 정말 미안했다.
소원은 남산 아래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조심해서 가!”
“그래. 지안이 너도.”
소원이는 내 등을 토닥였다.
귀가하는 길. 시계를 보니 내 생일은 아직 3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여전히 존재하는 생일석에 앉아 창가 너머 풍경을 감상했다.
늦게 퇴근한 터라 피곤할 텐데도 나를 슬쩍 보며 생일 축하 해주는 시민들. 버스에 붙은 내 사진. 오늘 하루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딸 왔어?”
집에 도착하자 아빠가 나를 반겼다.
“아빠! 뭐야 치킨 시켰어?”
식탁에는 방금 배달 온 치킨이 놓여 있었다. 요즘 애들은 뭘 좋아하는지 열심히 검색했다는 아빠, 감동이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자.”
서둘러 치킨을 먹었다. 아빠는 다리를 싫어한다며 내 그릇에 두 개를 놓았다.
“그래도 나눠 먹어.”
난 아빠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다시 두었다.
“오늘 뭐 하고 놀았어?”
난 오늘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떡볶이와 빙수를 먹고 남산 타워에 가서 야경을 보고 온 일. 친구랑 급식 먹는 게 소원이었던 나는 정말 행복했다. 말하다 떠오른 기억에 들뜬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일 소원이랑 무얼 할지 설렜다.
“졸리네….”
“그래, 오늘 지쳤을 거야. 얼른 자자.”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잠을 자러 가는 길과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 것조차 생소하게 만들었다.
잠을 자는 게 설렌 건 처음이었다.
내가 학교에 가고 싶어 하다니!
엄청 큰 변화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