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다음 날.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보니 날짜는 6월 1일 그대로였다.
내가 유일한 생일자라는 보도도 없었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는 같은 날 생일인 연예인들이 저마다 팬들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6월 32일도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어제 있던 모든 일은 그저 꿈이었던 걸까?
하지만 그 24시간은 정말 생생했다.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아빠…?”
집에 인기척이 없었다. 고요했다.
식탁 위에는 아빠가 보낸 편지와 석 달 치 생활비가 놓여 있었다. 편지봉투 겉면의 ‘같이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정신 차려! 애써 스스로 다독거렸다.
어제의 경험 때문에 난 계속 뭘 바라기 시작했다. 다시 나만 손해 보는 현실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어제의 결심은 빠르게 꺾였고 이내 공허함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학교 갈 시간은 무심히도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뭘 바라겠다는 생각은 자취를 감췄다. 칠판에는 은영의 생일만 적혀 있었다. 나는 또 투명 인간이 되었다.
이제 행복할 기회는 다신 오지 않겠지.
계속 교실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지안이?”
“어?”
소원이었다.
“늦잠 자서 좀 늦었네. 뭔 일 있어?”
‘이게 어떻게 된…?’
그사이 은영이 다가왔다. 분명 소원이와 날 이간질하려는 거겠지.
“소원아, 나랑 매점 갈래?”
은영은 팔짱을 꼈다. 주위로 수연과 승현을 필두로 한 무리가 호위병처럼 서 있었다. 소원이를 자기네 무리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아니 괜찮아.”
소원이의 대답은 좌중을 놀라게 했다. 반 아이들 같은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실은 잠깐 침묵에 휩싸였다. 수업 종이치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서둘러 제자리에 앉았다.
국어 마인드맵 활동이 시작됐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작품을 다루는데, 각 인물의 정서를 파악하는 수업이었다.
“수행평가다.”
또 혼자 해야 하나? 라며 한숨을 푹 쉬는데, 소원이 나랑 같이 하자며 말을 건네왔다.
“지안이 너는 글을 잘 쓰니까 내가 그림 그릴게?”
“응!”
소원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그림 실력이 훌륭했다.
친구와 함께하는 조별 과제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구나. 무언으로 야유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지안아, 오늘 생일이지?”
“응.”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야.”
“너도 생일이야?”
소원은 뜸 들이며 미소를 지었다. 끝까지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의미심장했지만, 더 물어보면 실례인 것 같아 그만뒀다.
국어 시간 다음은 체육이었다. 사물함에 넣어 놨던 체육복을 꺼내 교실 커튼 뒤에서 갈아입으려 하는데 김은영이 내 어깨를 쳤다.
“아, 미안. 킥킥.”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던 차 은영이 물었다.
“오늘 생일이냐?”
“응, 왜?”
“왜 태어났어?”
또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은영의 비웃음이 물꼬가 되어 하나둘씩 어색한 가담을 하기 시작했다.
너야말로 왜 태어났어?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과응보(因果應報), 권선징악(勸善懲惡). 그거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기를. 김은영, 너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거야.
얘기 날 싫어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에서 오늘 생일이 자신이어야 하는데 내가 끼었다는 점.
또 하나는 내가 발을 밟았기 때문이다.
당시 얘는 새로 산 비싼 조머를 신고 왔다. 한정판이라서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 충분했다. 그걸 내가 밟아버렸다. 그때 내가 신고 있던 신발은 그냥 저가형이었고 꼬질꼬질했다.
난 사과했지만, 소용없었다. 신발값 500만 원을 내놓으라고 하는 애들도 있었다. 난 그래도 정확한 신발값을 물어봤다. 그런데 됐다고 했다. 말 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엄마의 사망보험금. 그걸 요구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니 차마 그거까진 입에 올리진 못했다.
그 후로 비호감도가 서서히 올랐다. 어이가 없는 건 그동안 날 좋게 보던 시선도 이상한 색안경이 끼워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180도 바뀐 것이다. 철저히 무시당하기 시작했다.
“지안아, 괜찮아?”
소원이 내게 물었다.
“안 괜찮아….”
나는 은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은영은 감히 네가 기어올라?라는 시선을 보냈다.
“나가자, 상대할 가치도 없어.”
나는 소원의 어깨동무에 기대어 교실 밖으로 나갔다. 분명 나 없는 곳에서 뒷말하겠지. 차라리 안 듣는 게 약이었다.
“언제부터 그런 거야?”
“입학하고 나서부터 오늘까지 쭉.”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했다. 원래 잘 지냈는데 내가 손쓸 새 없이 따돌림이 심해졌다. 그 후로 6월이 싫어졌고 징크스가 됐다. 매년 6월마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질까 봐 지레 겁먹었다.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일단 내 탓을 먼저 하면 마음이 편안했다. 조금이라도 일이 틀어지거나 분위기가 안 좋아지면 자책하는 게 습관이 됐다.
삼인성호(三人成虎).
난 이 사자성어의 최대 피해자다.
만약 한두 명이라도 은영에게 ‘지안이가 모르고 그런 거잖아.’라고 말해줬더라면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은 없어도 좋아할 사람은 많을 거야.”
“야!”
소원은 화를 내며 말했다.
“네가 왜 죽어야 하는데?”
“그럼 내가 여기서 뭘 더 해야 하는데?”
나는 화가 나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지안아.”
소원이는 나를 안았다.
난 무서워. 어느 날 말없이 네가 사라질까 봐.
나는 자살을 여러 번 실패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이 찾아와도 몸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살려고 버둥거린다.
날 도와줄 어른은 없다. 애들 싸움은 애들끼리 하라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해? 내 생일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한 고통의 굴레다. 다른 날보다 더 큰 아픔이 찾아온다.
어제는 꿈이었다. 오늘은 원래 그대로다.
역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죽긴 왜 죽어…. 네 삶에 하나도 도움 안 되는 사람이잖아.”
소원이는 메말라가는 나에게 물을 줬다. 햇살처럼 그저 내게 다가와 품어주는 고마운 아이다. 하지만,
“너무 아파, 절대 무신경해지지 않는걸?”
소원의 투박한 위로와 현실적인 조언은 날 호전시키지 못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왜 소원이는 이렇게까지 날 도와주는 걸까?
‘지안이 친구’, ‘응, 너 김지안’
‘김지안’이라는 내 이름은 조롱이자 비속어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무의미한 짓거리다.
어느 정신 나간 애가 틀린 답을 적을까?
한 번은 설문지에 익명으로 내 처지를 풀어쓴 적이 있었다. 내가 아파서 결석했을 때 교장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내 이름을 대놓고 언급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지. 어른이라는 사람이 이렇게밖에 일 처리를 못하나? 일부러 날 곤경에 빠뜨리려고 그러는 건가?
내가 일렀다는 사실은 삽시간에 퍼졌고, 난 더 나락을 향해 추락했다.
117 학교폭력 신고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다. 당사자와 상대방이 1:1로 대화한 내용을 녹음하면 합법이지만, 다수를 대상으로 녹음하면 불법으로 간주해 역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
학교폭력위원회도 마찬가지다. 나 빼고 다수가 진실을 왜곡하면 답이 없다.
‘모두가 이상한데 나 혼자 정상이면 내가 이상한 건가 봐.’
“친구끼리 그러면 안 되지, 화해해”
그렇게 내 용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가해자들의 부모도 우리 애가 그럴 리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암묵적으로 ‘친해지기 싫은 아이’가 생기면 걔는 곧 사냥감이다. 반 아이들은 부정적인 분위기, 느낌을 귀신같이 빠르게 눈치챈다.
교내 주도권을 잡은 아이는 인맥이 넓거나 언변이 훌륭하다. 어중간한 계층에 있는 아이는 절대 따돌리지 않는다.
학교폭력은 힘으로 하지 않는다. 이름을 적지 않고도 누군지 훤히 알 수 있게 말을 만들어 SNS로 저격한다. 급을 나눠 잘 나가는 애와 못 나가는 애를 가른다.
친구는 대외적인 가짜 대우를 위한 단어다.
칸트는 “사람은 수단과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난 이 말의 ‘수단’에만 해당한다.
필요 없어지면 즉시 배척하는.
정작 자기가 당하면 울고불고하겠지.
옳고 그름을 따질 때는 지났다. 난 이미 치유하기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다. 날 괴롭힌 애들은 너무나도 잘 지낸다. 그 모습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어, 네가 인생의 주인공이잖아.”
소원이 강경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얘기하던 사이 지나가던 반 애들이 ‘야 봤어?’라며 조소했다.
싸한 느낌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소원의 품에서 벗어났다.
“너만큼은 나 때문에 피해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소중하니까, 놓아줘야 한다.
“너는 행복했으면 해.”
겁이 안 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소중한 걸 지키려면 김은영과 싸워야 해.
은영의 꿈이 ‘어린이집 교사’라지? 학교폭력 전과자가 그런 꿈을? 웃기네.
나는 절대로 김은영과 같은 반 아이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다.
가해자 소식은 부고 소식만 들려왔으면 좋겠다.
얘네는 내가 만난 최악의 악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