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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Oct 25. 2024

8. 내일

(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2019년 6월 2일.

야속하게도 아침이 밝아 왔다.

오늘은 소원이에게 먼저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학교로 갔다.

그동안은 내게 없는 것에 대해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나만 생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소원도 이뤄졌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소원도 이뤘다. 내 생일은 결코 의미 없는 날이 아니었다.

“강소원!”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소원을 찾았다.

“어?”

출석부와 사물함도 강소원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다급해서 은영을 붙잡았다.

“너 강소원 알지?”

김은영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흘겨봤다.

“뭐래 아침부터 꿈꿨냐?”

“어제 강소원이랑 싸웠잖아.”

“뭐라는 거야.”

김은영은 나를 밀쳤다.

어안이 벙벙했다. 소원이를 전혀 모르는 듯 행동하잖아?

은영은 이참에 잘 됐다며 내 팔을 강제로 잡아 교탁 앞에 세웠다. 그동안 나한테 서운한 걸 다 말하겠다며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 아이들도 주저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하나둘씩 나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이내 가담했다.

내가 자기를 쳐다봤다거나 선생님께 질문했다는 말 같지 않은 명분. 다음 수업 준비를 위해 사물함에서 책을 꺼낼 때 시끄럽다는 등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여기저기서 동조하며 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어지러웠다.

과호흡까지 와서 숨쉬기 어려웠다.

빨리 벗어나야 했지만, 몸이 무거웠다. 심장이 요동치며 토할 것 같았다.

누구든 좋으니 도와줘.

최대한 참아보려 주먹을 쥐고 가슴을 쳤다. 빈혈기가 있었는지 몸이 무너졌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지경까지 돼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선생님이 119에 신고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링거를 꽂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가 ‘김지안 환자, 의식 돌아왔어요!’라고 담당의를 불렀다.

이제 진짜 끝났어.

내일은 없어. 죽고 싶어.

그때, 가방에서 전화가 울렸다.

핸드폰을 찾으려 손을 뻗었을 때 집힌 것은 소원이가 줬던 Wish list였다.

펼쳐보니 모두 백지였지만, 맨 앞장에 지번 주소가 하나 적혀 있었다.

얼른 여기로 가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링거를 빼고 병실을 나왔다.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병원 내 편의점에서 밴드를 사붙이고 대문을 넘었다.

밖은 어두컴컴했다. 모바일로 병원비를 내고 택시를 잡아 목적지로 향했다.

“여긴?”

낯익은 건물이었다.

혼란스러운 나머지 머리가 하얘지던 찰나.

“학생 뭐 찾아?”

백발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내가 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찾는 게 신경 쓰이셨는지 가던 길을 멈춘 것이다.

“아니에요.”

“손에서 피나는데 괜찮아? 어디 아픈 거 아냐?”

할머니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다른 손을 내 이마에 대며 열 기운이 있다며 걱정해 주셨다.

더운 여름날 때문인지 또 쓰러지고 말았다.

“학생!”

점차 사람들이 몰려왔고, 눈을 떠보니 새로운 곳이었다.

“여긴…?”

골동품과 옛날 내음이 가득한 공간.

꽃이 가득 수 놓인 이불속.

옆에는 갖가지 상비약이 있었다.

“좀 괜찮아?”

아까 뵈었던 할머니였다.

물과 흰 죽을 주면서 내 상태를 살펴보셨다.

“네,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아질 때까지 쉬었다 가렴.”

아까 뭘 크게 찾는지 자신도 도울 수 있다면 돕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난 종이에 적힌 주소를 보여주었다.

그 주소를 본 할머니는 두 눈을 부릅떴다.

“여기 그 빵집이네. 위시의 베이커리 말이여.”

소름이 돋았다.

“거기 어디 있어요?”

이것저것 여쭤봤다.

할머니는 날 신기해하셨다.

“그 빵집 사장님이랑 잘 아시나요?”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찻잔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기다 말을 꺼내셨다.

“그럼, 착하고 성실한 처자였는데.”

할머니는 이 건물 주인이었다.

빵집 사장님은 싹싹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월세도 늦은 적 없고, 오래 자리를 지켰다.

“딸을 낳다가 목숨을 잃었지.”

할머니는 그 딸이 잘 컸다면 지금 학생 나이겠다며 혀를 찼다.

“혹시 그 사장님 이름은?”

침을 삼켰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이 강소원이지 아마?”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믿기지 않았고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위시와 소원은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다.

“안 그래도 잘못 온 우편이 있는데 학생 줄게.”

우편에는 강소원이라는 이름과 분향사 주소가 있었다.

할머니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에 돈을 쥐여주며 차비랑 밥값 하라면서 꼭 잡아주었다.

“늦었으니 얼른 가봐, 엄마 기다리시겠다.”

“정말 감사해요.”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택시 타고 서울 외곽으로 향했다.

분향사에서 ‘강소원’이 적힌 함을 찾았다.     

[1997년 11월의 어느 날, 18살 ‘송미와 함께’]     

학교에서 봤던 소원이의 모습이 있었다.

2003년부터 선정된 제과제빵에서 안경을 쓰고 빵을 굽는 모습이다.

옆에는 소원, 지안 우리 가족 사랑해라는 글이 있다.

“엄마….”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러보는, 너무나도 부르고 싶었던 ‘엄마’.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학교에서 처음 내 편을 들어주고 도와준 사람이 엄마였어.

위시는 ‘죽은 사람은 못 살린다’라고 했지만, 내 소원이 이루어졌던 것은 엄마가 준 사랑 덕분이었다.

그동안 내 모습을 지켜보며 남몰래 마음 아파했을 엄마에게 미안했다. 나만 엄마 없다고 소리치던 스스로가 미웠다.

“... 죄송해요.”

내가 뭐라고, 나를 살리려다가 죽은 엄마에게 죄송했다.

내가 커가는 모습을 봤다면 나보다 더 마음 아팠을 거라 생각하니 더 먹먹했다.

분향사에는 답 없는 메아리만이 흘렀다.

그때.

“지안아.”

“!”

내가 간절히 원했던 소원이 내 앞에 있었다.

“소원아….”

난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눈을 비비니 다리에서 나를 구해준 위시가 보였다.

안경을 벗은 그녀의 모습은 사진과 똑같았다.

“엄마?”

엄마는 나를 안아주었다.

“네가 잘 우는 건 날 닮아서 그래.”

“아니야, 아니야 엄마.”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

어떤 기적으로 이렇게 만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엄마의 품은 너무나도 포근했다.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엄마라고 부르는 네 목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엄마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우리 딸, 힘들었을 텐데 잘 커 줬구나. 네가 자랑스러워.”

태교 하면서 딸이랑 빙수도 먹고 남산 타워도 가고 싶었는데.

“덕분에 엄마도 소원을 이뤘어.”

“태어나서… 흑, 죄송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다시 과거로 가도 널 살렸을 거야. 넌 절대 잘못한 거 없어.”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이 꽃을 피웠다.

지안이 처음 걸음마 하는 걸 보고 자랑스러워 안아주고 싶었고, 유치원 운동회 때 지안이 남편에게 왜 엄마가 없냐며 말했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는 걸.

“이거 볼래? 가족관계 증명서에 모 강소원, 자녀 김지안이다?”

사망이라고 적힌 표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으려는 엄마의 모습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너무 보고 싶었던 만큼, 엄마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그동안 나를 지켜보며 중학생 때 첫 생리를 시작했을 때 곁에 없었음을 사과했다.

기술 가정 수업 때 배운 대로 침착하게 잘해줬고, 도와주신 영어 선생님에게 감사를 전했다. 딸이 어떻게든 혼자 헤쳐 나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돈 세는 법도 잘 배워서 마트 가서 물건도 잘 사고, 어른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하니 참 뭉클했다.

소원은 지안을 꼭 끌어안았다. 비록 자신은 이 세상에 없기에 산 자의 온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지안의 내음은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났을 때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내가 없기에 딸이 이런 일을 당하나 야속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애꿎은 딸의 뒷머리만 쓰다듬었다.

딸이 고등학교 들어가서 왕따 당할 때 김은영이 얼마나 얄미운지 한 대 쥐어박았다. 자신은 영혼이라 그 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엄마….”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게 그저 좋았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엄마라는 건 참 대단하구나, 처음으로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나를 살리게 됐는지 물어봤다.

엄마 말로는 내가 죽으려던 찰나 잡아 줄 수가 없어 간절히 소리를 질렀는데, 신이 소원을 들어주신 건지 가능했다는 말이었다. 정체를 밝히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목이 메 왔다며 일종의 금제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나를 품은 와중 케이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빵집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우리 아가부터 지켜야겠다는 일념만 있었다.

“엄마를 만난 것 자체로 제 소원이 이뤄졌어요.”

그때 그 케이크는 엄마가 태교 하면서 애정을 담아 구워낸 것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모성애로 인한 것이라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법이다.

“케이크 정말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아니야, 지안아.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때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소원은 본능적으로 지안 앞을 가로막았다.

“지안아!”

아빠였다.

“여보?”

아빠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여보! 미안해! 내가… 내 잘못이야!”

세월에 묻은 아빠의 손은 주름지고 거칠었다.

그에 비해 엄마는 연애 때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가 반했던 그때처럼, 두 사람은 재회했다.

“내가 너를 지켰어야 했는데.”

“힘들게 가게를 운영할 때 제일 많이 도와준 사람이 누구였지?”

엄마는 아빠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희망아.”

아빠의 눈은 비 오는 날의 호수처럼 젖어있었다.

아빠의 이름, 김희망.

희망은 그동안 억눌렀던 회한을 풀어놓았다.

“많이 보고 싶었어 여보.”

“나도.”

희망의 소원은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한 사람을 묻어야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1시 59분을 알렸다.

내년에도 엄마의 기일이자 내 생일이 찾아올 테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 같았다. 잠깐 슬퍼도 지금을 생각하며 환히 웃을 것이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사랑하는 남편에게 우리 지안이 잘 부탁한다며 손을 쓰다듬었다. 아빠는 정말 잘못했다며 나와 엄마를 끌어안았다.

“지안아, 비록 네가 태어난 날 나는 세상에 없지만, 우리 딸,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줘.”

“안 돼, 엄마. 가지 마!”

싫어. 또 헤어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세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 걱정하는 일 만들지 않을 테니 천국에서 우릴 지켜봐 줘.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생에도 꼭 제 엄마 해주세요.”

나는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내 존재는 곧 엄마다. 우리는 하늘이 이어준 인연으로, 가끔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배꼽을 보기로 했다. 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

엄마가 나를 지켜주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한 이 시간은 환상이 아닌 실재였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엄마의 형체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너도… 꼭… 엄마 딸로 와줘.”

하얀 연기만 남긴 채.

엄마는 없어졌다.

나는 향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사랑해, 우리 딸.”

희미해진 목소리의 잔향이 분향사에 울려 퍼졌다.

마지막으로 듣는 엄마의 따스한 음성이었다.

어느덧 지치게 되자 목도 마르고 쓰러져 버렸다.

아빠는 그런 날 끌어안았다.

난 무의식적으로 아빠의 목을 봤다. 굵은 동아줄 자국이 있었다.

아빠는 어제 자살하려 했다. 모아둔 돈을 다 내게 남기고 유서를 쓴 후 목을 맸다. 타는 듯한 고통이 자신을 삼키려던 그때, 엄마가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 딸 외롭게 하지 말고 잘 부탁해, 여보.”

슬퍼하는 엄마의 모습에 놀란 아빠가 정신 차려 보니 땅바닥에 있었다. 손바닥의 감각은 여전했다. 꿈이 아니었다.

나는 아빠의 목을 어루만졌다.

아빠도 혼자 컸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사주를 물려받은 건지, 나를 외롭게 자라게 해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제 우리 진짜 행복해지자.”

아빠는 내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앞으로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집에 오자 엄마의 함 속에 내 증명사진을 넣었던 게 생각났다. 그 덕분에 우리 가족 세 명이 함께 있게 돼 엄마의 소원도 이뤄졌다.

나는 소망과 희망이 사랑으로 만들어 낸 걸작품이었다. 어느 누구도 상처받아서는 안 될뿐더러, 고귀하고 소중하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지켜진 아이였다.

“학교 가기 싫어.”

아빠에게 그동안 김은영과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그 애들 다리몽둥이를 부숴버리겠다는 걸 담임 선생님이 말리셨다.

교장이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어른들의 개입은 학교폭력을 더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내가 결석한 날 반 아이들은 “김지안 자퇴하는 거 아니야?”라는 새로운 가십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피곤하지도 않은가 보다.

나는 원래 자퇴할 생각이 없었다. 대학 진학을 해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성하기는커녕 더욱 영악하게 괴롭히는 애들을 보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 결심했다.

“아빠는 우리 지안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 의견을 구하는 아빠가 정말 고마웠다.

이제 우리 집이 정말 내 집처럼 느껴졌다.

자퇴는 당장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달 동안 학업중단숙려제를 쓰고 기한 이후에 복학할지 자퇴할지 결정해야 한다.

나의 또 다른 목표는 ‘자퇴’가 되었다.

내 인생이 망했다며 조롱하는 애들은 개의치 않았다. 선생님은 극구 말렸지만, 내 의지는 확고했다. 저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싶지 않았다.

자퇴서를 쓰고 나오는 길.

후련하면서도 씁쓸했다.

행복하지 못했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교복을 입은 후배들이 팔짱을 끼고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있었다. 저 가운데 있는 아이가 나였다면 어땠을까?

슬픔으로 얼룩졌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미래는 행복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나는 감옥에서 벗어나 넓은 초원에 발을 내디뎠다.

학교 안에 있는 애들은 이 자유로움을 모를 테지.

나는 더 큰 세상에서 성장할 것이다.

자퇴는 걱정과는 달리 내 삶의 만족도를 높여줬다.

꿈드림 센터를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노래도 마음껏 불렀다.

“하아......”

즐겁게 지내다가도 그때가 생각난다.

학교폭력은 피해자가 죽거나 떠나야만 해결된다.

아직도 바뀐 게 없다.

목숨을 담보로 해야만 끝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내 인생에서도 썩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진실을 알려야 한다.

비록 지금은 그들의 잘못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기억하고 살아갈 것이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 성인이 됐다.

수많은 일이 있지만 대부분 별거 아닌 일의 연속이었다.

걱정했던 것만큼 곤혹스럽지는 않았다.

학교 밖에서 얻은 만족은 훨씬 컸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척이나 크다는 생각에 이들을 돕고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유튜브에 여러 가수의 노래 커버 영상을 올리다 우연히 학교 선배의 눈도장을 찍어 20살에 보컬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무척 좋았고 매번 노래하는 것이 좋았다. 어쩌면 엄마가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학우도 생겼다. 그의 이름은 ‘찬영’ 

내 남자친구가 되어 자기 친구들을 소개하는 자리에 갔다.

여전히 술집은 시끄럽고 복작복작하다. 어디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지만 기분 탓인가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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