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혹시 사랑여자고등학교 나오셨어요?”
순간 동공이 멈출 만큼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있어 고등학교 시절은 최악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주변에서 “뭐야 뭐야 둘이 동창이야?”라는 말이 들린다.
사랑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맞지만, 학교폭력으로 자퇴를 했기 때문에 졸업생은 아니다. 대답하기 난감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내 손목을 잡았다.
“너 김지안이지? 나 김은영!”
은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반갑다기보다 소름이 끼쳐 미칠 지경이었다.
“너 우리 반에서 잘 못 어울렸잖아!”
주변 사람들은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정적이 엄청나게 생겼다. 나도 너무 당황스러워 먼저 가보겠다며 자리를 박찼다. 찬영이 뒤따라왔지만 모른척했다.
“미안한데... 나 혼자 있고 싶어”
찬영의 손을 뿌리치고 하염없이 집에서 울었다. 내가 어떻게 노력해서 온 대학교인데 말이다.
공들여 만든 울타리와 소중한 꽃밭들이 무너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평소처럼 행동했다.
“너 우리 반 찐따였잖아”
은영이였다. 순간 너무 당황해 눈이 돌아갔다. 옆에 있던 내 친구 지윤이도 당황할 정도였다.
“너 뭐 하자는 거야?”
은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다음 날, 뉴스기사를 보게 되었다. 김은영이 우리 대학교 출신이라는 간판을 걸고 유명 기획사와 계약을 한 것이다.
나는 과거에 사과받지 못한 기억에 괴롭고 몸부림치다 예이트판에 학교폭력 피해자였다는 글을 올렸다. 예이츠판은 ‘엔터톡’이 구분되어 있어 연예인들의 일화가 자주 올라온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네티즌들은 “아무리 봐도 학교폭력이다”라며 신상을 묻기 시작했다.
울다 잠에 든 나머지 휴대폰을 볼 정신이 없었다. 화면을 켜니 내가 쓴 글이 ‘톡커들의 선택’에 올라갔다. 누구냐고 묻는 나머지 위로받고 싶어 02년생 여자 00 대학교 출신이라는 힌트를 남겼다. 해당 글은 대학교 커뮤니티인 ‘애니타임’에도 퍼졌다.
애니타임은 좋아요를 10개 이상 받으면 전교생이 볼 수 있는 ‘핫베스트 게시판’에 올라간다. 모두에게 알람이 갈뿐더러, 어느 날은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00 대학교 학교폭력 가해자 신상 석예원”이라는 제목이었다.
사람들은 정확한 사실 판단 여부없이 석예원 학우를 욕하기 시작했다. 석예원 학우는 우리 대학교의 응원단장 출신이다. 학교에 많은 선망을 받고 있는 학우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만났을 때도 착했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끼일 뻔했을 때 자신의 손을 희생해 도와준 사람이었다.
예원 학우가 배우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내가 남몰래 축하하고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모른 척할까?”
그렇기에는 또 다른 피해자를 생산할 것이 뻔해 댓글을 남겼다. “김은영 아니야?”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내 댓글에 휩쓸려 김은영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새벽, 애니타임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00 대학교 학교폭력 사건, 김은영입니다.”
자신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거짓말이라는 글에 나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제가 피해자 본인입니다. 왜 거짓말을 하시는 거죠? 당신은 고교 시절 저에게 가해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내 댓글에 답 댓글을 달면서 “진짜요?”라며 “뭐가 진짜야?”라는 댓글을 게시했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기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평화로운 일상이 깨진 것 같아 너무 무서웠다. 그럼에도 전화를 받아보았다.
“평안경찰서 김해진 경위입니다.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한 법률위반(명예훼손)으로 입건하오니 경찰서에 들러 조사받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왜 경찰서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방문했다. 경찰서가 주는 위압감은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다. 몸이 움츠러지던 찰나에 해진 경위님이 나오셨다.
“제가 인격모독은 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고 조사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해진 경위님과 조사실에 들어가 상황을 모두 녹화했다. 경위님은 조사 자료를 보며 예이츠판과 애니타임의 글을 언급하셨다.
“예이트 판 이 글, 김은영 씨를 생각하며 적으신 것이 맞나요?”
끄덕였다. 그다음 보여주신 글은 댓글이었다.
“석예원 씨가 제목인 글에 지안 씨가 은영 씨를 언급했더라고요.”
경위님은 ‘김은영’을 언급한 것이 공연성과 특정성 모두를 충족한다며 은영이 가한 일을 모두 물어보셨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대답했다.
“제게 패드립을 하거나, 무릎을 꿇으라고 했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입을 틀어막았다. 경찰 조사 때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에서 힘든 일들이 나오다 보니 생각하는 것조차 내게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너무 힘들어서 잠시만 울게요”
내가 울자 경위님께서도 안타까운 눈빛을 비추셨다. 그럼에도 나는 무슨 피해를 받았는지 사실대로 더 얘기했다. 급식을 엎은 것과 함께 내 사물함에 썩은 우유를 넣어둔 것 등 모든 것을 말이다. 경위님은 마지막으로 김은영의 애니타임 입장문을 보여주셨다.
“여기에 왜 피해자 본인입니다 라면서 적으셨나요?”
경위님은 해당 댓글이 상대방을 더 특정하게 할뿐더러, 김은영의 입장문조차 거짓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거짓말이 아니잖아요. 제가 얘 때문에 얼마나 상담도 많이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요.”
경위님은 안타깝지만 내게서 혐의가 나와 더욱 철저한 조사를 할 예정이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내게 한 가지 물어보셨다.
“김은영 씨와 합의할 의사가 있나요?”
나는 내가 범죄자가 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에 있다고 얘기하였다. 조사가 끝나고 학교생활기록부와 자퇴서 사본, 정신과 진단서를 모두 제출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관재구설수는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내가 억울하게 범죄자가 될 까봐 너무 무서웠다. 엄마라도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네 김해진 경위입니다. 상대방 측에서 합의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연락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르바이트 매니저님이 나를 보고 급하게 조퇴를 시키셨다.
“매니저님 죄송한데 저 너무 무서워요... 한 번만 안아주세요.”
매니저님도 한 아이의 어머니 셨기 때문에 정말 따스하게 나를 안아주셨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찬영의 전화가 왔다.
“지안아 나랑 제발 얘기 좀 하자”
나는 완강하게 주장했다.
“너랑 할 말 없으니까 제발 우리 헤어지자”
그렇게 찬영과 헤어졌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찬영은 이유 없이 나와 헤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는 하루하루가 무서워서 손에 힘을 줄 수도 없었다. 눈에 힘이 풀려 무언가 집중하기도 어려워졌다. 계속해서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그때도 찐따라고 하더니, 이제는 명예훼손 가해자야?”
나는 자살할까 고민했다. 내가 죽게 된다면 불송치(공소권 없음)로 결정이 날 테니까 말이다. 아빠를 생각하니 범죄자 자녀의 부모로 만들기 싫었다.
한편으로 엄마를 생각하니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미칠 것 같다고 말이다.
해당 이야기가 또 돌기 시작하자, 찬영이 다시 다가왔다.
“우리 엄마가 변호사야, 너 소개해줘도 될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찬영의 어머니를 뵈었다. 찬영의 어머니는 ‘이예주 변호사’이셨다. 공중파 방송에도 자주 나올 만큼 선임료가 비싸신 분인데 내가 어찌....
“변호사님, 저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요”
예주 변호사님은 나를 안아주셨다.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정말...”
돈 걱정은 나중으로 하고 사건을 맡기 전 우리 아빠와 함께 만나기를 바라셨다.
미팅 날이 다가오자 변호사 사무실 안에 있는 회의실에서 만담을 가졌다.
아빠는 제법 당황스러운 눈치였지만, 예주 변호사님이 나오시니 더 놀라셨다.
“아버님, 지안 씨는 현재 이런 상황입니다.”
나는 도저히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변호사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다. 아빠는 울면서 제발 우리 딸을 살려달라고 이야기했다.
“경찰 측에서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송치하려고 했을 것 같아요.”
변호사님은 무혐의, 불송치까지는 어려울 것 같으니 우리의 목표는 ‘기소유예’로 하자며 지인들의 탄원서와 각종 학교폭력 진단서를 받기를 바라셨다.
“혹시 증인이 되어 줄 사람이 있을까요?”
변호사님이 내게 물어보셨다. 나는 고민하다 찬영을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담임 선생님이셨던 분을 섭외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추었다.
“좋아요, 우리 정말 최선을 다해봅시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며 아빠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아빠... 잊는다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가끔은 고통 같아. 나라도 기억하고 있어야 덜 억울할 것 같은데... 말이야 기억하려니 괴롭고 망각하려니 슬퍼.”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며 아빠에게 말했다.
“나를 아프게 한 가해자들은 반성이라는 것을 하고 있을까? 단지 어린 시절의 미숙한 ‘장난’ 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아직도 괴롭고 이리 힘든데 말이야.”
이야기하면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김은영, 그녀의 오른팔과 간접 가해자들, 같은 반이었던 1학년 5반 애들을 비롯해 조금씩 가담한 같은 학년 모두.
“방관도 폭력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아빠는 나를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여주었다. 위로가 되어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보냈다.
“지안아, 난 기억 안 나는데?”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3년 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에 안 난다며 증인과 의견서를 써줄 수 없다는 말씀이셨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고 싶다고 5차례나 말씀드렸잖아요”
선생님은 완강하게 이야기하셨다.
“나는 기억 안 나고, 네가 겪은 일이 학폭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이제야 느끼게 됐다. 아... 정말 방관자이자 배후는 담임 선생님이셨구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는다는 생각은 내 삶을 옥죄어왔다. 너무 무서워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어느 날 내 휴대폰으로 연락이 하나 왔다.
“지안아, 영어선생님이야 통화 가능할까?”
당시 나를 지도하셨던 김두나 영어선생님이셨다. 두나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나와 담임선생님의 통화를 엿듣고 몰래 나를 도와주고 싶다고 하셨다.
의견서 양식을 보내드리며 혹시라도 저를 도와주실 다른 선생님들이 계실지 자문을 구했다. 통화를 마치고 고교 시절 다녔던 정신의학과에도 소견서를 부탁드렸다.
내 이름은 절대로 더 이상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범죄자가 되는 것이 싫었다.
변호사님의 도움 덕분에 수사 종결은 한 달 정도 유예됐다. 그 사이 지인들에게 선처 탄원서를 받고 다녔다. 정말 고맙게도 찬영과 옆에 있던 지윤이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검사 측에서 나를 기소할 것 같아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있었다. 힘들 때면 엄마의 사진을 보았다.
“엄마, 부디 나를 지켜줘”
그렇게 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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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니, 변호사님의 연락이 왔다.
“지안 씨, 은영 씨 측에서 합의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미친 듯이 기뻤다. 만약 합의가 되어 처벌불원서를 쓰게 된다면 나는 불송치(공소권 없음)가 된다. 범죄이력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 해 합의가 잘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합의 날이 되어 김은영 와 김은영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를 뵈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예주 변호사님은 당황하셨지만 나가서 휴지를 갖고 와주셨다.
좀 진정되자 김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김지안, 내가 가해한 사실을 다 거짓이라고 써줘”
합의 조건이었다.
“뭐라고?”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이 흔들렸다. 예주 변호사님은 상황을 보다 구두로 합의 진행 과정을 녹음했다.
“내가 가해한 모든 일을 다 거짓이라고 써달라고”
무서웠다. 예이츠판과 애니타임에 글을 쓰려니 얼마나 많은 뭇매가 생길지 나도 안다. 근데 그럼에도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다. 내가 범죄자가 된다는 사실이 더 싫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말을 꺼냈다.
“알겠어, 할게”
변호사님도 놀란 눈치였다.
“지안 씨 괜찮겠어요?”
나는 끄덕였다.
김은영은 만났을 때 자신의 가해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나는 소름이 끼쳐 미칠 지경이었다. 김은영의 어머니 역시 ‘가해하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써 달라’고 하였다.
“우린 이만 가볼게요, 지안 씨가 조건 이행 후에 연락하길 바라요.”
김은영과 어머니가 나가신 후, 변호사님이 개인적으로 자문하셨다.
“정말 괜찮아요 지안 씨?”
“사실 무서워요, 하지만 제가 범죄자가 되는 것이 더 싫어요.”
예주 변호사님은 나를 안아주시며 위로를 건넸다.
“지안 씨, 진실은 변하지 않아요.”
나는 무서웠지만, 예주 변호사님처럼 한 명이라도 진실을 알고 있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예이츠판과 애니타임에다 글을 적기로 했다. 이 모든 과정은 김은영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올려줬으면 좋겠어”
김은영이 원하는 대로 글을 적어 두 사이트에 게시를 완료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관련 없는 사람이 피해를 봤다는 데 사실 진짜 피해자는 다름 아닌 나일 것이다.
제삼자들이 재생산하며 만들어내는 글들은 내게 2차 가해를 할 정도였다. 너무 무서워서 우는 와중에 지윤에게 전화가 왔다.
“지안아, 너 괜찮아?”
지윤은 울며 내게 위로를 건넸다. 유일한 진실을 아는 내가 너를 위해 입장문을 써도 되겠느냐고 말이다.
나는 울면서 괜찮다고, 너도 고소당하면 안 된다며 지윤을 위로했다. 내 친구가 나와 같은 상황을 겪게 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서야 지윤이 자필 손 편지를 놓고 간 것을 알게 됐다. 편지를 열어보니 “절대로 너의 거짓된 입장문에 속아 질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에 동요하지 마, 그럴 필요도 없어”라는 위로가 왔다.
그다음 날, 김은영 측에서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두 사이트에서는 내 신상을 추궁하며 일반인인 내 얼굴까지 띄울 정도였다. 나는 사람이 너무 무서워 방에서 숨죽여 울 뿐이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변하지 않는다.
“지안아”
“지안아”
“지안아”
찬영이 찾아왔다.
나는 너무 많이 울어 지친 기력을 비추었지만, 겨우겨우 몸을 추슬러 1층으로 나갔다. 찬영도 당황했는지 나를 안아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너무 무서워, 동명이인만 봐도 치가 떨릴 정도야”
찬영도 엄마에게 모든 상황을 들었는지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합의서에 적힌 발설금지 조건으로 인해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하더라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너의 입이 되어줄게 진짜로”
애니타임은 정말 무분별한 글들이 계속 생겨났다. 나에 대한 여론이 나락 수준으로 떨어져서 학교 생활까지 걱정될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해명하고 싶지만 발설금지 조항 때문에 어떤 것도 얘기할 수 없었다. 인어공주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떻게든 학교를 다시 나가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자퇴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 피해봤으니 이번에는 부딪쳐보기로 했다. 사실은 그냥 행복하고 싶었다.
“지안아”
잠시 멍을 때리다 찬영을 바라봤다.
“우리 도망갈래?”
찬영은 자신의 누나 찬희와 함께 내게 단양에 가자고 했다. 나는 무서워서 의심의 눈초리를 비추었다.
눈치챘는지 나를 안아주며 다독여줬다. 너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며 찬희언니와 준비했다고 한다.
나는 당장 죽어도 아깝지 않은 목숨이었기에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찬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를 생각해, 너 지키려고 하셨었잖아.”
이제야 모든 퍼즐이 딱 맞아떨어진다. 내가 예원을 지키려 했듯이 우리 엄마도 나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찬영과 찬희 언니, 그들의 어머니이신 예주 변호사님도 마찬가지실 거다.
다음 날 단양에 갔다. 남매는 내게 ‘패러글라이딩’을 준비했다며 마음껏 뛰고 오라고 하였다.
“나 무서운데...”
찬희 언니는 “죽으려고 뛰어 본 애가 뭐가 무섭겠니”라며 투박한 위로를 건넸다. 맞다. 나는 죽으려고 했었다.
찬영은 나를 꼭 안아주며 이야기했다.
“김지안, 너는 너 생각 이상으로 강한 사람이야.”
두 남매는 차를 타고 먼저 내려갔다. 나는 무서웠지만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착용하자 갈 수 있는 길은 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뒤에 보호자님도 계실뿐더러, 멋진 글라이더가 나를 띄워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안 씨 준비 됐어요?”
뒤를 돌아보니 아빠를 닮은 패러글라이더 아저씨가 보인다. 나는 도움닫기로 20m를 달렸다. 사실 장비가 무거워 나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했지만 말이다.
눈을 떠보니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무섭다고 느낀 순간 나는 이미 날고 있었다. 아주 자유롭게, 달려갔다.
“엄마...”
하늘을 훨훨 나니, 단양군의 모습이 보인다. 크게만 느껴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하염없이 작아 보인다.
내가 태어나 살아가기로 다짐한 순간까지, 우리 엄마도 자유롭게 하늘을 날며 많은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계신가 보다. 그녀의 이름처럼 말이다.
“불편하지는 않아요?”
글라이더님이 물어보셨다.
“네, 편안해요 덕분에요”
나는 어느덧 패러글라이더님께 기대어 바람을 느끼고 마셔본다.
“안 좋은 기억은 모두 바람에게 줘 버려요, 지안 씨”
나는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동안 겪어 온 시련들이 무척이나 미웠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장통이었음을 안다.
하늘에서 들리는 어느 한 고등학교의 종소리
고등학교만 보면 망각에 묻었던 지옥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떤 날은 심장이 사무치게 아렸다.
중요한 건, 과거의 불행은 오늘의 행복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내 삶에서 ‘과거의 불행’이었던 김은영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사람일 뿐이다.
“꽃이 폈네”
패러글라이더님의 말씀이다.
옆을 돌려 바라보자 언제 그랬듯 차도에는 꽃들이 가득 피어 있다.
이제야 나는 나를 찾았고, 진짜 나를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애니타임과 예이트판에는 나에 대한 논란의 글이 끝없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 종결되었다는 생각에 과거를 모두 잊을 것이다.
“나는 축하받아 마땅한 아이”
이제는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인정하고 아껴주기로 마음먹아ᅠ갔다.
어린 날을 위로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어느덧 천천히 지상에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찬영과 찬희 언니가 “김지안~빨리 와”라면서 손을 흔든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고 행복을 빌어준다는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들을 보며 개명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멈추었다.
장비를 정리하며 아까 보았던 고등학교를 다시 쳐다본다. 쉬는 시간 10분이 지났는지 다시금 수업 종이 은은하게 들린다.
교실 안 어딘가 여전히 슬퍼 보이는 한 아이.
“제 이름은 나 지안입니다. 저는 오늘 죽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잃은 채 파리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이들.
또 다른 어딘가에 존재할 가해자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옆으로 치워버리고 쓸데없는 욕망과 자극적인 가십거리에만 몰두하는 현대 사회.
시간의 힘에 따라 조용히 묻히기를 기도하며, 흐지부지되기를 바라는 걸까
여전히 누군가는 죽음만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