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자, 어른
대학원 동기 언니가 졸업 후 3~4년 만에 연락이 왔었다. 그 전화를 받은지도 벌써 5년 전 일이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왜냐하면 그 전화통화 내용 중 한 부분 때문이다. 둘이 같이 대학원에 다닐 적 얘기를 하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삶을 끌어갈 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무언가 목표가 있고(목표를 이루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꿈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때도 아마 언니에게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에 대해 설명했을 것이다. 그걸 들은 언니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예전에는 너 같았었어. 그런데 40살이 넘어가니까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바로 나이 먹는다는 거야. 그냥 내가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고 내 꿈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 그런데 그게 바로 나이 먹는다는 거, 현실적인 사람이 된다는 거 같아. 나는 이제 돈 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어. 결혼도 안 했고 초라하게 나이 먹고 싶지 않거든. 이런 게 철드는 건가 봐. 너도 40 넘으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언니의 이 얘기를 듣고, 원래는 나와 같았다는 언니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현실을 받아들였고, 그건 꿈꾸던 자신을 내려놓았다는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반신반의했다. 나도 나이가 40이 넘으면 정말 언니처럼 변하는 건가? 원래는 나랑 같았다잖아. 그럼 나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그게 나이 먹는 것일까??
아니 언니랑 나는 다를 수도 있지. 내가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다들 그렇게 나이 먹어 가는 걸까? 그러면 조금 슬픈데. 살아가는 의미가 퇴색되어버릴 것 같은데..
꿈이 없이 살아가는 삶이 어떨지 생각해보았는데, 내 성향상 그렇게 되면 너무 우울하고 살아가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이것에 대한 생각은 40이 넘으면 생각해보자 하고 묻어두었던 것이다.
나를 돌아보면 항상 크고 작은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는 여러 종류인 것 같다.
학창 시절에 잠깐 꾸었던 꿈은 모의고사 1등이었다.
내 성적은 중상위권이었는데 친구에게, “야, 나 이번에 학년 1등 해야겠어.”라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이 난다.
나의 그 말을 들은 친구가 어이없어하며 이야기했다. “..... 야... 먼저 반에서 1등이나 하고 그 말하시지?”
그래도 나는 기죽지 않고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공부했다. 1등을 못했지만 그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성적은 원래대로 10여 등 정도 나왔지만 좌절하거나 속상해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 공부하게 해 주었던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정말 만에 하나 1등 할 수도 있지 하는 상상도 하면서..
30대 중반 넘어서는 굉장히 예뻐 보이는 집이나, 좋은 동네를 지나갈 때 "언젠간 저기에서 살아야지!"하고 마음에 담아두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 그 꿈을 이룰지 아니면 영영 이루지 못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희망을 가지고 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위의 목표들과 달리 작고, 비교적 단기간 도전할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목표도 많았다. 운동해서 살 빼기, 수필공모전에 도전하여 상 받기, 인스타그램에 올린 웹툰 천 팔로워 모으기, 출판해서 책 내기, 이모티콘 만들기 등. 이 꿈과 목표들은 실제로 내가 요즘 이루기 위해 이런저런 도전을 하고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듯,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고 그 희망찬 기분 덕에 힘겨운 삶을 지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도전하고 꿈을 꿀 때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이제 40을 약간 넘은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꿈을 꾸고 있다.
꿈이 없이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면 나라는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가끔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40 중반이 넘어가면 달라지려나?
하지만 아직까지는 꿈을 꾸고 싶다. 아니 사실 나이를 먹어도 계속 목표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현실적으로만 보면 나는 싱글맘에, 외벌이이고 지병도 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그것들이 다 나의 족쇄가 되고, 그 와중에 내 직업과 다른 어떤 도전을 하고 꿈을 꾼다는 게 막연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크 쿠스토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논리적일 때 미래는 사실 암담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논리적인 것 이상이다. 우리는 인간이며, 신념이 있으며, 희망이 있다.
인간은 수학처럼 1+1=2라는 공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모든 상황과 능력은 수치화할 수 없으며, 계산식처럼 무언가를 넣으면 일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기적이라는 것도 일어나고, 갑자기 나를 도와줄 지인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운을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상황 중심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가진 희망과 믿음은 힘든 상황에서도 힘이 나게 해 주고 버티는 것을 넘어서, 힘들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