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말철학 연재2
제1장 몸말철학의 φ∞–TORST′–⧖ 잠정 헌장
(Provisional Canon of Mommal Philosophy)
이 장은 '몸말철학'에 대한 잠정적 헌장으로서 제시된다.
1. 이 장의 지위 — 잠정적 문턱
이 장은 설명이 아니다.
이 장은 정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장은 독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장은 이후에 전개될 모든 논의가 어디에서 끝났다고 말해져서는 안 되는지를 미리 고정하기 위한 잠정적 문턱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기호와 명명은 아직 이해되지 않아도 된다.
이 장은 개념을 전달하지 않는다.
이 장은 오독의 범위를 제한한다.
이 장은 합의를 요청하지 않는다.
이 장은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장은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이 장은 나중에 다시 도달하게 될 논리적 위치를 지금, 임시로 표시해 둔 것이다.
2. 판독에 대한 최소 선언 — 종결 금지
이 철학에서 어떤 문장도 존재에 대해 마지막 말이 되지 않는다.
설명은 허용된다.
모형은 제시될 수 있다.
정식은 도입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설명도, 어떤 모형도, 어떤 정식도 종료를 전제로 삼아 체계를 세우는 방식은 여기에서 출발 조건이 될 수 없다.
이 조건을 φ∞으로 표기하고, '파이무한'이라 읽는다.
φ∞은 원리가 아니다.
φ∞은 공리도 아니다.
φ∞은 무한성의 선언이 아니다.
φ∞은 오직 종결 판정이 조건으로 굳어지는 것을 차단한다.
이 철학에서 사건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건은 파괴도, 단절도, 완결도 아니다.
사건은 전이 편향이 더 이상 기존의 위상적 배치로 판독될 수 없게 되는 지점이다.
이 지점은 종결이 발생했기 때문에 호출되는 것이 아니라, 종결을 선언할 수 없기 때문에 드러난다.
φ∞은 이 지점이 “끝”으로 오인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φ∞은 존재에 무엇을 더하지 않으며, 오직 “끝났다고 말할 수 없음”만을 남긴다.
3. 작동에 대한 잠정 표기 — TORST′
이 철학은 존재를 단계로 나누지 않는다.
존재를 완결된 과정으로도 다루지 않는다.
존재의 작동은 겹치며, 중첩되며, 어떤 지점에서도 정렬된 순서를 갖지 않는다.
이와 같은 비정렬적·다중중첩 작동이 언어 안에서 종결로 오인되는 지점을 표시하기 위한 최소 기호를 TORST′라 부른다.
TORST′(이 표기는 이후 '토르스트'라고 읽는다)는 설명 도식이 아니다.
발전 모델이 아니다.
순환 구조도 아니다.
TORST′는 존재가 “여기서 끝났다”고 판정되려는 모든 지점에서, 그 판정을 조건으로 고정할 수 없음을 다시 표시하기 위해 호출되는 잠정적 표식이다.
TORST′는 어떤 경로를 지시하지 않는다.
어떤 통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반복을 시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TORST′는 오직 존재의 작동이 종결로 환원되려는 논리적 위치를 무력화한다.
4. 동시 판독의 표기 — ⧖
이 철학에서 사용하는 ⧖(이후 이 기호는 '면서'라고 읽는다) 논리는 판단의 도구가 아니다.
⧖ 논리는 종결을 제거하기 위한 문법이다.
⧖는 연결사가 아니다.
중간항도 아니다.
⧖는 하나의 작동이 서로 다른 위상으로 동시에 판독되고 있음을 표시하는 연산자이다.
A ⧖ B라는 표기는 A에서 B로의 원인이나 순서를 말하지 않는다.
그 표기는 오직 “여기가 끝이다”라는 논리적 위치가 허용되지 않음을 표시한다.
5. 가능성에 대한 유보
이 철학에서 가능성은 출발점이 아니다.
가능성은 원인도 자원도 아니다.
가능성은 이미 발생한 전이를 사후적으로 다시 말하기 위해 언어 안에 남는 흔적이다.
따라서 이 철학은 “무엇이 가능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이 철학은 오직 “어디에서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가”만을 고정한다.
전이는 이동이 아니다.
단계가 아니다.
완결을 향한 과정도 아니다.
전이는 존재의 작동이 더 이상 기존의 위상적 배치로 유지될 수 없게 되는 작동이다.
사건은 파괴도 아니다.
단절도 아니다.
완결도 아니다.
사건은 전이가 더 이상 판독될 수 없게 되는 지점이다.
침전은 과정의 결과가 아니다.
선택의 산물도 아니다.
외부 조건의 결정도 아니다.
침전은 전이가 더 이상 판독될 수 없게 되는 체험 가능한 상태이다.
6. 판독 경계에 대한 유보 — 사건, 전이, 침전
이 철학에서 사건, 전이, 침전은 서로 다른 실체를 지시하지 않는다.
이 셋은 모두 존재의 작동이 언어 안에서 종결을 거부하며 판독 불가능해지는 지점들을 가리킨다.
다만, 판독의 편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위상적 차이를 임시로 허용한다.
사건은 기존의 전이 편향이 붕괴하여 '어디'라고 특정할 수 없게 된 지점(Point)의 판독이다.
전이는 유지와 변형이 ⧖로 얽혀 '어떻게' 움직이는지 획정할 수 없는 작동(Operation)의 판독이다.
침전은 전이의 흔적이 누적되어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체험적 상태(State)의 판독이다.
이 구분은 이후의 논의에서 강화될 수도 있고, 끝내 구분되지 않은 채 하나로 녹아들 수도 있다.
독자는 이들을 엄격히 분리하기보다, 존재가 언어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서로 다른 질감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들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이야말로, 존재의 다중중첩 작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위치이다.
7. 윤리에 대한 최소 표식 — 자가작동권역(自家作動圈域)
이 철학은 행동을 명령하지 않는다.
선악을 판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의 작동이 외부의 논리, 목적, 효율, 해석에 의해
종결되거나 강제된 비약으로 대체될 때,
그 작동은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 지속될 수 없다.
존재 자신의 TORST′ 작동이
외부의 종결 선언에 의해
완전히 고정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그 존재론적 한계를
이 철학은 자가작동권역(自家作動圈域)이라 잠정적으로 표기한다.
이 표기는 권리를 선언하지 않는다.
이 표기는 주체를 전제하지 않는다.
이 표기는 보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표기는 오직
이 철학이 어디까지 개입을 거부하는지를
임시로 표시한다.
8. 자가작동권역의 오독 방지 — 권리가 아닌 위상 경계
이 철학에서 자가작동권역은
사회적 권리도, 윤리 규범도, 정치적 요구도 아니다.
자가작동권역은
존재의 작동이
외부의 해석, 관리, 교정, 종결에 의해
완전히 환원되거나 정지될 수 없음을 표시하는
위상적 경계선이다.
자가작동권역은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자기 자신의 전이 리듬을
상실하지 않고 지속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판독의 이름이다.
자가작동권역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여기서 끝이다”라는 판정을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존재론적 필연성의 표식이다.
자가작동권역은 명령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넘어설 수 없는 판독의 한계”이다.
이 철학은
이 한계를 침범하는 모든 언어와 체계를
윤리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존재의 작동을 판독하는 데 실패했음을
조용히 표시할 뿐이다.
9. 부정 선언 — 이 장이 하지 않는 말들
이 장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전이를 선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 장은 저항, 생성, 탈주, 가속을 윤리적 의무로 만들지 않는다.
이 장은 멈춤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정지와 침묵을 존재의 외부로 밀어내지 않는다.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진보를 보증하지 않는다.
더 나은 상태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장은 행동 지침이 아니다.
세계 개선의 프로그램도 아니다.
이 장은 오직 하나의 일을 수행한다.
이후에 등장할 어떤 설명도, 어떤 이론도, 어떤 해석도 존재에 대해 “여기서 끝이다”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10. 잠정적 마침
이 장은 완결이 아니다.
이 장은 출발점도 아니다.
이 장은 나중에 다시 도달하게 될 논리적 위치를 지금, 임시로 고정한 것이다.
이 장을 통과한 독자는 아직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후의 어떤 장에서도 종결이 선언되는 순간, 이 장은 다시 호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