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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Nov 30. 2022

2022년, 지영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Ep.03_Editor_혜나



오후 끝, 허무함과 억울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베란다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다 "엄마~ "하는 아이의 칭얼거림에 그 짧은 상념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돌아서는 여자의 모습으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대학 진학이 당연해지고, 커리어에 대한 기대나 의미가 남성과 다를 바가 없어진 첫 여성 세대. 아이러니하게도 그 축복의 결과로 일과 양육 사이에서 역사상 가장 깊은 고민에 빠진 첫 세대가 되어버린 이들에 대한 르포, [82년생 김지영]이 오늘 우리가 선택한 영화이다.


2016년, 원작 소설은 지영의 정신과 상담이 끝난 뒤 그녀를 상담했던 남자 의사의 독백으로 끝이 난다. '여성의 일'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이 담긴 독백을 통해 여전히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현실을 보여주며 냉소적인 결말을 맺는다. 2019년, 각색된 영화는 지영이 글쓰기를 통해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려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원작 소설보다는 한결 희망찬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


2016년 지영이는 넘어졌고, 2019년 지영이는 도전했다.

지금 2022년, 지영이 들은 세대의 숙명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요일 밤 10시, 네 명의 80년대생 엄마들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시 컴퓨터 앞에 모였다. 소모적인 현실비판이나 식상한 위로들이 오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정체성' '일'에 대해 누구보다 오랜 시간 적극적으로 탐색하던 엄마들이 모였기에, 우리 세대 엄마들이 일과 양육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과 현실의 개선을 위해 기울일 수 있는 주체적인 노력들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일하는 엄마가 될 예정이거나, 이미 엄마가 되고 난 뒤 일과 양육 사이 혼란에 빠져있는 당신을 대화로 초대해 본다.





Q1.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감부터 나눠보자.


혜나  소설로 먼저 접했다. 소설 속 김지영은 주체적인 노력 없이 당한 피해만 줄줄 읊다가 미쳐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런 피해의식에 찌든 캐릭터가 내 세대 여성의 대표적인 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처음 영화를 보던 날 '나는 김지영이랑 다른 사람이야'라는 방어적인 마음으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만 5년 정도 키운 지금 시점에 같은 영화를 보게 된 건데, 영화가 끝난 후 '내 이야기를 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말을 잃었었다. 영화의 톤이나 여성에게 편중된 관점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한 세대의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겪었을 경험과 감정들을 잘 간추려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  나도 비슷했던 것 같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미 엄마였지만 일로 너무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랑은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육아 우울증이 온 친구가 있었어서 '그 친구의 삶이 저렇겠구나.'라는 생각만 하며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 자신이 사회랑 한 발자국 떨어진 상황이 되고 나서 다시 영화를 보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지영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지영이 엄마들 모임과 기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모임,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 지금 내 모습과 겹쳐 보여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고운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에 육아휴직 중이었기 때문에 지영이의 일상생활에 많이 공감을 했었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지영이의 모습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해서, 이 영화가 마치 무조건 복직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처럼 와닿았었다. 지금은 복직을 했고 아이도 좀 더 컸으니 지영이와는 달라진 상황에서 객관적인 제 3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러자 지영이보다는 지영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의 주변인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영화 속에서 남편도 지영의 삶에 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더라.


은애  책으로 한 번, 영화로 두 번 봤는데 눈길이 가는 포인트가 매번 달랐다. 첫째 육아휴직 중 책을 봤을 때는 지영이라는 캐릭터에 몰입을 했었고, 복직 후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지영의 엄마 캐릭터에 눈이 갔다. 지영이가 외할머니에 이입해서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할머니-엄마-지영이 3대에 걸쳐 거의 100년을 걸쳐 내려오는 굴레가 느껴져서, '내 딸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게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다시 영화를 봤을 때는 지영이 겪는 일들이 어떤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 아닌데, 개인이 극복을 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Q2. 영화에서는 어린 지영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도 나온다. 메이트분들이 바라본 엄마의 삶은 어떠했고, 그것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내 딸에겐 엄마로서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 지 이야기해 보자.


지혜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딱히 '엄마의 역할, 모습'에 대한 뚜렷한 관념이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를 향한 온전하고 전적인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고 나니,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많은 힘을 주는 사람인 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가 엄마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향한 큰 사랑을 이유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희생한 엄마로 남지 않기 위해서 지금 나의 일을 계속해서 탐색하고, 이 사회에 가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고운 엄마는 늘 일을 하셨다. 나에게 결혼은 선택이며 아이를 낳더라도 일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분이다. 엄마가 일을 하셨지만 딱히 외롭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학교에 와야 하는 날인데 오지 못한다던가 그런 섭섭함의 기억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과거의 감정들 보다는 엄마가 같은 여성으로서 현재 내가 마주한 상황에 대한 조언을 해줄 때 더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나의 아이에게 나는... 잘 완주해 내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자라면서는 여자들도 배우고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는데, 사회에 나오니 나에게 주어지는 질문이나 역할들이 모두 일보다는 결혼과 육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경험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 혼란들이 있었음에도 흔들리거나 치우치지 않고 내가 선택한 일과 육아라는 두 가지 레이스를 모두 잘 완주해 내는 엄마이고 싶다.


은애 전업주부인 엄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어서 좋았는데, 엄마가 없으면 어떤 기분일까? 내 아이가 외로워할까?'라는 생각에 휴직과 복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았었다. 최대한 그런 염려를 걷어내고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를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아이에게 모든 선택을 함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엄마는 이래야 된다'라고 으레 기대되는 역할들이 있지만, 그것들에 등 떠밀려 선택하는 삶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도 만약 엄마가 된다고 하면 어떻게 살아나가든 간에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선택을 하며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혜나 엄마는 나를 100일 무렵부터 할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하셨었다고 한다. 고운님과는 달리 나는 엄마가 일을 하느라 집에 없는 것이 너무 싫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를 필요로 하는 성향의 아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한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에 대한 경험과 감정들이 나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지금 엄마와 반대되는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필요한 만큼 옆에 있어주겠다는 선택. 아이에게는 ‘어떤 엄마’라기보다는 내 인생에 오롯이 책임을 지고 때로는 순응하고 감정을 감내해내는 성숙한 한 어른의 모습이고 싶다.


지혜 여태까지는 엄마가 일을 하는 아이들과 전업주부인 아이들 둘로 나누어 그 영향을 생각했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같은 상황이더라도 아이의 기질별로 받는 영향이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Q3. 영화에서 여성의 일-양육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언급하지만,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아마 여성이 출산 후 사회로 복귀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이 아니었나 싶다. 첫 아이를 낳고 복직 또는 다시 일하고 싶은 때가 됐을 때 어떤 고민이 있었고 어떤 결정을 했는가?


은애 첫 아이를 낳고는 워킹맘이냐 전업맘이냐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 당시에 하고 있던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이 크던 차여서, 어차피 일이 너무 좋아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보니 고민이 더 됐던 것 같다. 결국 워킹맘을 안 해 보고 포기하기보다는 해보고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복직을 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없고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뒤이어 육아휴직을 하기로 하고 내가 복직을 했었다.


지혜 디자인 회사 특성상 한 명 한 명의 위치가 중요해서 퇴사를 고려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세 아이 모두 100일도 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냈고 출산휴가 기간에도 집에서 일을 했었어야 했다. 첫 아이 때는 ‘이 어린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상황에 있는 엄마들에게 아이가 어릴 때 기관에 보낸다는 것 만으로 애착형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내 경우에는 몸은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아이와 내가 연결되어있다는 믿음으로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고, 다시 아이와 만났을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주었다.


혜나 아이가 돌이 지나면 다시 무엇이든 내 일을 다시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 됐는데도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이의 눈빛으로, 나의 직관으로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기관에 맡길 수가 없더라. 아이가 언제 준비될 거라는 기약이 없으니, '언제쯤이면 다시 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좌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유연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되든 나는 나를 잘 알고 있고, 이만큼 성취도 해 봤던 사람이니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로 한 거다. 그렇게 결론을 내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몰입했다.


지혜 지금은 어느 정도 그 육아의 끝이 보이는가?


혜나 아이가 크면서 내 시간이 늘긴 하지만, 내 시간이 언제쯤 충분해질 수 있을지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goal 보다 더 추상적인 vision을 가지고 그냥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나에게 허락된 시간 안에서 행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모한 생각이겠지만 내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인 듯하다. 이런 프로젝트 기회가 왔을 때 냉큼 하고, 요즘은 애기 잠들면 과외도 해보고 있고, 글은 꾸준히 쓰고 있고.


고운 일과 양육에 있어서 엄마의 선택과 개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복직이 디폴트였다. 육아휴직 당시에 다니고 있던 직장이 지방으로 이전할 예정이었어서, 출산 후 3개월 만에 복직을 해야만 서울에 남아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많은 고민 끝 결국 '1년 동안은 아이를 키우자'는 선택을 내렸다. 지금은 또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시간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조직에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도를 활용하려고 생각 중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든 내가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든 말이다. 임신했을 때 급여를 반만 지급받고 반일 근무를 했던 최초의 케이스였다. 한 번 내가 제도를 찾아서 쓰니 후배들도 그 뒤로 그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하더라.



Q4. 영화 속 지영이는 남편의 육아휴직이 요원해지고, 시터 구하기에 실패하면서 자신의 복직을 포기하고 만다. 결국 스트레스로 미쳐버린 지영이를 보며 지영의 엄마는 본인의 일도 포기하고 아이를 대신 봐줄 테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황혼육아를 자처한다. 일로 인한 돌봄 공백, 황혼육아가 최선일까? 후배들에게 어떤 방법을 추천하겠는가?


지혜 첫 아이를 기관에 맡기려고 할 때, 주변에서 모두 엄마나 시어머니에게 맡길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나는 그러기가 싫었다. 그분들의 삶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 싫기도 했지만, 황혼육아의 방식을 택하게 되면 내가 주양육자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첫 아이를 3개월이 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었다. 첫 아이를 그렇게 보내보고 나니 둘째, 셋째 아이까지도 같은 방법으로 키우게 됐고, 지나고 나서도 후회가 없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주양육자로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는데,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러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은애 이 문제는 사실 어떤 방식이 가장 좋다고 추천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게, 본인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여건상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은 들지만… 나머지는 어떤 것을 추천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내 마음속 1순위는 황혼육아였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남편과 고군분투하는 방식을 택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복직한 이후에는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져서 지금은 돌봄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게 가장 좋아서 선택했다기보다는 어찌하다 보니 결정하게 된 상황이라 어떤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가 없겠다.


고운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사람마다 상황과 성향, 신념에 따라서 달라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시댁은 멀었고 친정부모님은 가까이 사셨지만 황혼육아에 대해서 완고하게 반대하시는 입장이셨기 때문에 아예 황혼육아가 옵션에 없었다. 이전 직장은 3년까지도 육아휴직이 가능했기 때문에 거기에 있었다면 2년까지도 육아휴직을 썼을 것 같은데 이직을 하게 되면서 1년여밖에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제도적 도움이나 여러 가지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육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10개월부터 어린이집과 돌봄 선생님의 조합으로 양육해왔고 지금은 4명의 돌봄 선생님들이 요일별로 오신다. 그렇게 한 것은 모든 요일에 돌봄이 가능한 선생님을 찾기가 어렵기도 하고 한 분이 계속 돌보는 것은 아이에게도 지루함의 스트레스가 있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니 아이도 날마다 환기가 되고, 돌봄 선생님 입장에서도 지치지 않아 좀 더 좋은 돌봄이 가능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지혜님 말씀에 공감하는 게, 어린이집이 엄마인 나보다 훨씬 더 노련하고 안정적으로 아이를 케어해준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황혼육아를 1순위로 두기보다는 비용이 들긴 하지만 사회적인 제도가 전보다는 많이 마련되어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최대한 활용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혜나 저는 팩트를 짚고 넘어가야 부모들이 돌봄에 있어 어떤 선택을 하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모의 일을 이유로 기관에 아이를 일찍부터 보내는 것이 당연해지는 사회 분위기에 주눅이 든 것인지 영유아기 육아의 중요성은 별로 언급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아이가 (부모와 분리될) 준비가 될 때까지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은 사실 유명한 아동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팩트이다. 그리고 황혼육아도 마찬가지로 나이 먹은 부모에게 맡기기에는 얼마나 육아가 체력적, 정서적으로 고된 일인지, 아이의 발달과 정서적인 부분에서 어떤 것들에 대한 리스크를 지게 되는 것인지 팩트를 불편해도 분명히 짚어줘야 부모들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아기만이라도 잠시 커리어를 접어두더라도 육아에 몰입하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좋은 걸 안다 한들 당장에 그런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조언할 때는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고 네가 직접 키울 수 있으면 직접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고,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최대한 좋은 기관을 찾아서 맡기는 수밖에 없다"라고 (하지만 좋은 기관은 많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Q5.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 이슈가 있었다. 영화가 여성의 불편에만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은데, 아빠가 된 현실 남편들의 고충도 한 번 생각해 보자.


은애 영화에서 보면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명절에 시댁에 내려가지 말자고 하면서 본인이 힘들다는 핑계를 대는데, 아내는 이를 듣고 속 편한 소리 한다며 면박을 준다. 현실에서도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한 말이나 행동임에도 아내 입장에서는 그 마음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아내만큼이나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편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회사에서 보면 그런 남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아빠들도 회사 안에 가정과 일 모두를 잘 해내는 롤모델이 부재하는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 같다.


지혜 아직까지 사회적인 분위기가 엄마에게 양육의 책임을 더 묻고 있듯이, 남자들에게 경제적인 책임을 더 묻고 있다. 경제적으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남자가 더 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 고충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에서 만난 아빠들을 보면서 외벌이 가정과 맞벌이 가정의 남편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외벌이인 가장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에 도망칠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런 남자들을 보면서 나는 꾸준히 경제활동을 해서 남편에게 도망칠 구석을 만들어 주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지금 잠깐 멈춰 서서 나의 일을 탐색할 수 있듯이 남편이 위기를 맞았을 때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운 남편들 대화가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데, 남편이 이 정도 신경을 쓰면 굉장히 훌륭한 남편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지혜님 말씀대로 남자들도 선택지가 없고 일을 하다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시도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책임감 때문에 버티고 있는 상황은 비슷할 것 같다. 그런 부분은 남녀 상관없이 동일한 것 같다. 그래서 제도의 유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제도가 일단 있으면 고려할 여지가 생기고 그 제도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문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혜나 영화에서 남편이 지영이에게 아이를 갖자고 설득하면서 남들 다 낳는데 별로 힘들지 않을 거라고 아이 낳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들도 가장의 무게를 모른 채로 아빠가 되고, 일단 가장이 되고 나면 그게 좋든 싫든 견뎌야만 하는 게 가장 힘들지 않을까? 우리 남편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와이프와 맞벌이를 해서 경제적으로 어떻게 이끌어가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낳고 보니깐 경제적인 것을 이유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보다는 집에서 키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더라. 그렇게 외벌이가 확정될 때, 난생처음 가장의 무게를 느끼게 되면서 급 어른이 되는 그 시간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Q6.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복직 자체도 그렇고, 복직 후의 삶도 그렇고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직업의 형태는 육아와 병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그렇다면 엄마에게 어울리는, 잘 맞는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일까?


고운 가끔 커리어 관련한 워크숍을 가거나 하면 50대 된 어머니분들도 계신다. 어느 정도 아이들을 키운 후 일을  다시 시작하시는 경우인데 안타깝지만 커리어에 공백이 생긴 여성이 돌아갈 수 있는 직업군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너무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졸업 후 직업을 찾던 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려면 선생님이나 공무원이 최고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야 했다. 그 말 자체도 싫었지만, 여성이 그 여건을 고려해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인식이 싫었다.


지혜 엄마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부부 중 한 명이라도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양육자의 일의 형태나 시간이 좀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다.


은애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직업보다는, 기왕이면 내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거나 정해진 시간만 근무하면 되는 직업이 좋은 것 같다. 흔히들 엄마가 갖기에 좋은 직업으로 선생님이나 공무원을 뽑는 이유도 정시 출퇴근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직업이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인 것 같다.


혜나 일을 찾아보다가도 시간에서 다 탈락이 되고 만다. 아이가 자는 동안 할 수 있는 쿠팡 플렉스를 해 본 적도 있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간이 맞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의 본질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일이어야 하더라. 지난 시간에 은애님이 '엄마가 일을 하려면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라고 하신 말씀을 자꾸 곱씹게 된다. 엄마에게 어울리는 직업보다는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지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시간적으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옵션이 하나 더 붙으니깐 찾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요새 드는 생각이 육아기에는 차라리 직장을 다니는 게 더 수월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프리랜서가 되고 내 일을 하면 더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직장을 다닐 때는 직장에서는 일만 하고 집에 와서는 아이만 보면 됐는데 그 틀에서 벗어나니 시간의 분배 측면에서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혜나 그런데 답변을 하고 생각해보니, 나는 엄마도 직업이라고 생각하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질문에 답변하기가 어려웠던 거 같기도 하다. 워킹맘은 사실 투잡을 뛰고 있는 것이다. 투잡이 가능한 직업군은 흔치 않다.


고운 그러면 질문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가 출산 후에도 계속 일을 유지하고 싶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요?"라고. 출산과 육아로 사회로의 복귀가 쉽지 않다면, 일과 양육을 병행하고 싶은 사람들이 애초에 일을 그만두지 않도록 방지하는 제도가 절실하다.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유연한 근로시간 등 여러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Q7. 제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유연근무제도처럼 일-육아의 병행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도움들이 있는 것 같다. 꼭 제도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들을 돕기 위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엄마들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일까?


지혜 현실적으로 엄마들이 필요로 하는 건 경제적 지원 아닐까? 육아휴직을 해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시터 같은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거의 받는 급여만큼의 비용이 발생한다. 엄마들이 유연하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도 필요하지만, 일을 해서 그게 다 시터 비용으로 지급되는 것에 대해서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들이 모여서 커뮤니티이든 글쓰기이든 서로 연대하고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워킹맘 리포트도 그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 엄마들 간 연대의 일에 내 역할을 보태고 싶다.


은애 강점 검사를 통해 나의 강점이 사람 한 명 한 명을 뾰족하게 구분해내는 ‘개별화’ 임을 알게 됐고, 그 강점을 활용해 창고 살롱이라는 곳에서 ‘나만의 해시태그’라는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직업, 자녀, 결혼 유무 같은 것들 말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의 고유한 해시태그를 찾아보는 모임이었다. 엄마만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다움’을 잃어버리기 쉬운 상황에 놓여있는 엄마들에게 특히 이런 활동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육아를 함에 있어서 ‘엄마는 이래야 해’라는 사회적인 기대에 휩쓸려서 행하는 일인지, 아니면 스스로 진짜로 원해서 하는 것인지를 구분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엄마들에게 나를 찾기 위한 시간과 활동이 필요한 것 같다.


혜나 가정보육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카페에서 ‘엄마가 된 나찾기’라는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 모임을 기획했을 때 목표했던 것은 엄마들이 육아로 인해 커리어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 엄마가 된 후 변화한 나의 욕구에 근거한 선택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사회에 만연한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무덤'같은 피상적인 말들 때문에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는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래서 불행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아이를 생각해서 일을 포기하는 것도 주어진 현실과 내 욕구 사이에서 내가 나다움을 반영해 내린 결정일 텐데, 이런 주체적인 결정을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수동적인 상황으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참여했던 엄마들도 출산 전 일에 굉장히 욕심이 많은 분들이셨다. 그분들에게 10년 뒤 평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 혼자가 아닌) 전체 가족의 일과를 상상해 적어보게 했다. 10년 뒤에도 여전히 엄마인 내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맞이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더라. 여성들이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의 축복을 온전히 느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엄마가 된 후의 나도 나로 받아들이는 통합의 작업이 엄마들에게 필요한 도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혜 고운님도 포포포 매거진에 글도 쓰시고 엄마들과 관련된 활동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다.


고운 그런 활동은 나 자신이 일과 양육을 계속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엄마들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사회적 편견이나 잣대에 비교하기보다 전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개인의 경험은 유한하기 때문에, 서로의 선택을 통해 이런 경우에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공유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이 개인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들이 일과 육아의 병행에 있어 어떤 선택을 내리면, 그 선택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도 스스로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후회 없이 '이 선택이 옳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노력 말이다.


Q8. 2018년생 김라율이라는 영화가 제작된다면 우리 엄마들은 어떤 세대적 숙명을 살아낸 엄마들로 묘사될까? 아니면 묘사되고 싶은가?


지혜 우리는 딱 과도기에 걸려있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육아만 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는데, 지금은 여성들도 남성들과 거의 같은 비율로 사회에서 역할을 하고 있고, 세상도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지 않은가. 과도기에 있는 만큼 우리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무언가를 바꿀 기회가 많은 세대라고 생각한다. 이 과도기 동안에 정말 좋은 레퍼런스들을 많이 만들어서 우리 딸 세대 때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세상이 있었어?"라고 상상도 못 하는 환경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고운 그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아마 시작은 이럴 것 같다. '알파걸 세대로 자라난 우리 엄마들은 역사상 가장 많은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다음 세대가 된다고 해서 ‘그런 세상이 있었어?’라고 할 만큼 세상이 확 바뀌어있지는 않을 것 같다.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출산을 감당해야 하기도 하고 비슷한 고민은 여전히 있을 것 같다. 다만 여러 시도를 했었던, 개인의 의지만 있으면 어떤 선택이든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세대로 남았으면 좋겠다. 별개로 그 영화 속에서는 주변인들도 변화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다음 세대에는 구시대적인 것들을 답습하거나 딸과 며느리에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시어머니도 없고, 동료이자 상사인 주변인들의 시선도 보다 성숙하게 바뀌어있기를 바란다.


혜나 세대가 가진 숙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숙명이자 업적은 정치와 경제의 엄청난 성장을 위한 희생,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가능하게 만든 것 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부모로서 겪어야 하는 숙명과 이뤄내야 하는 업적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을 때, 개인의 삶에 발생할 시행착오를 감수하더라도 일과 육아의 병행을 위한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나처럼 아이가 크는 동안은 일을 쉬고 온전히 양육에 집중하다가 사회로의 복귀를 시도하는 부모도 있어야 하고, 고운님처럼 직장 내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일-육아 병행과 관련한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게 활용을 하는 부모들도 필요하고, 다양한 일의 형태나 제도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필요할 거고. '시행착오를 감수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부모들'로 묘사됐으면 좋겠다.


고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자녀 세 대 때는 생물학적으로 출산과 임신과 수유는 엄마가 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엄마는 이래야 돼’ 하는 전형적인 엄마 상이 깨져있는 상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애 안 그래도 영화를 보다가 ‘만약 우리 아이들이 본다면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영화에는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든 일이다’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게 억울하고 섭섭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게 아이들의 잘못은 아닌데, 혹여나 그렇게 생각할까 봐 이 영화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모님 세대와 달리 우리 세대가 가진 숙명이 있다면, ‘글로 배운 사회와 현실에서 마주한 사회가 달라서 혼란스러운 세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세대는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면,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배우며 자라왔던 것과 달리 마냥 나의 욕구를 추구하며 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현실을 마주하며 깨달은 세대가 아닐까 싶다.


지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작게나마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2022년 이야기를 나눠 본 지영이 들은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일과 육아 사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한 지점을 선택해서 살고 있었다.


충분한 선례가 없기에 그 선택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선택을 미루며 수동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각자의 가치와 가설을 가지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시도 중에 나에게 소중한 아이나 커리어에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사회나 남의 탓으로 돌리고 불평하기보다는 리스크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분석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2016년의 유약하던 지영이의 모습보다 훨씬 주체적이고 어른스러운 듯하다.


우리 부모세대가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그 시대 당연했던 말에 의문을 제기하고 맞서며 딸들을 교육시켰듯이, 우리 세대 또한 지금의 사회가 당연한 듯 속삭이는 일과 양육에 대한 클리셰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모순을 발견하면 기꺼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는 일과 양육 사이에서의 고민을 지속하기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가치 있는 고민을 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 공통의 사명을 위해 오늘도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말과 싸우며 고군분투하는 지영이들과 그 가족들의 모든 다양한 시도에 응원을 보낸다.





표지사진 출처: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이미지 / 봄바람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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