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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가 된 엄마 그리고 다시 나로

나의 하루

by 모모제인

나는 요즘 너무 바쁘다.


방과 후 가기 전에 잠깐 집에 왔더니 엄마가 드라마를 보고 있다. 요즘 엄마가 낮에 운동을 안 가네? 나는 이렇게 정신 없는데 엄마는 좋겠다. 학원 가기 전에 뭐라도 허겁지겁 먹어야 한다. 숙제 다 못했는데 어떡해. 학원 시간이 아직 남았지만 숙제 핑계를 대고 일찍 집을 나왔다. 엄마 잔소리를 피해야 되니까. 엄마랑 집에 있으면 너무 피곤하다. 학원 선생님이랑 짜고 나를 득달같이 감시한다. 시험기간이라서 영어는 매일 보강이 있다. 영어 끝나면 수학을 가야된다. 가기 전에 잠깐 짬이 나면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이나 김밥 한줄을 먹는다. 집에 오면 밤 10시반. 피곤하긴 한데 지금이 제일 자유롭다. 이 시간에 아빠는 항상 자고 있다. 엄마도 요가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잘 준비를 한다. 잔소리 안 듣는 유일한 시간. 누워서 폰 할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


엄마의 바쁨, 아빠의 피곤함.

부모님의 무관심이 행복한 나이.




<뱀파이어 문제 >
선택의 불확실성과 그 이후의 가치관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개념

세 아이를 키우며 나는 뱀파이어가 되었다.

전업주부의 인생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싫다, 주의였다. 아이 때문에 커리어를 버리는 일은 더욱 더. 근데 아이는 사람을 변화시켰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이. 아이는 모든걸 바칠 수 있는 존재이자, 자아가 투영된 또 다른 내가 되었다.

뱀파이어는 햇볓도 못 보고 인간의 피만 먹어야 한다. 뱀파이어 문제, 인간일 때는 원하지 않았지만 뱀파이어가 되고 나면 그 삶을 오히려 좋아하게 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내가 나를 버리고 오매불망 뱀파이어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인생에 가장 중요한.

난 뱀파이어 엄마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데..

뱀파이어 몸 깊숙한 곳 어디서부턴가

쫄쫄쫄 치유약이 흐르더니

다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저녁 5 to10 로 일을 하게 되면서 낮 동안엔 여지없는 백수이자 전업주부다.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애들 학원 가기 전 돌아와서 간식을 챙기고, 숙제 잔소리를 하고, 저녁을 차린다. 수업을 다녀와서 바로 잠자리에 든다. 나의 하루는 꽤 조촐하고 단순하다.


정해진 수업만 하고 온다. 사람들과 부딫힐 일은 거의 없다. 대신 낮에 하루종일 아이들이랑 붙어있는게 점점 불편하다. 첫째가 중딩이 되고부터다. 매일이 잔소리 다툼, 반항하는 아이 길들이기. 차라리 낮에 일하는 게 낫겠다 싶다.


아이를 내 욕심에서 놓아주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아이가 1순위인 뱀파이어 엄마로는 아이와 엄마 모두 불행하게 하는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수 있는 기회를 주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울타리의 역할이 되어주는 것.


엄마로서가 아닌, 다시 나로서의 시간을 찾는 일. 그치만 나의 하루는 아직도 뱀파이어 시절의 일과로만 가득차 있다.




내가 학교나 학원에 가 있을 때 엄마는 뭘 할까,

난 궁금했던 적이 없다.

엄마는 그냥 엄마,

필요할 때 밥을 주는 사람,

필요할 때 부르면 오는 사람,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회사라는 울타리를 놓고 싶지 않았었다.

엄마는 집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15년은 너무 짧았나보다. 아이들은 엄마의 치열한 워킹맘 시절을 벌써 다 잊었을것만 같다. 그래서 난 지금 불안하다.


나의 40대.

나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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