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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air Nov 17. 2019

나만 힘든 게 아니야

- 시뽀 트레킹

여행자들이 만달레이 북쪽의 작은 마을 시뽀(Hsipaw)에 오는 이유는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껄로 트레킹 이후에 트레킹에 재미를 붙인 나는 세 번째 미얀마 여행의 핵심 일정으로 시뽀를 잡았다. 트레킹은 1박 2일부터 일주일 코스 등 다양하다. 나는 시뽀 마을을 출발해 산족이 사는 고산지대 마을에서 자고 돌아오는 1박 2일 코스를 선택했다. 우리 팀은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온 젊은이들과 나 그리고 길잡이로 꾸려졌다.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고 길을 나섰다. 


설렘이 넘칠수록 발걸음은 가벼운 법. 출발은 산뜻했다. 한적한 시골 풍경과 순박한 미소가 우리를 반겼다. 구령을 넣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한 발 한 발 맞춰 걸었다. 그리고 1박 2일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목소리도 높아만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출발한지 한 시간 만에 뒤쳐진 채 뒤를 쫓아가는 신세가 돼 있었다. 굽어진 길이 나오면 일행이 보이지 않을 정도. 솔직히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셋 중에 한 명은 키가 족히 190cm가 넘었고, 다른 녀석도 모델 수준의 기럭지 보유자다. 나머지 한 명은 이 두 녀석을 리드하고도 남을 정도로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이다. 즉 그들의 한 걸음은 최소 나의 두 걸음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나이를 들어보니 그들은 고작 스물, 그리고 스물다섯이었다. 신체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지는 게임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그늘 없는 오르막길이 등장한 게 조짐이 안 좋았다. 건기여서 햇살은 집요하고 바람은 온데간데없으며 흙먼지는 춤바람이라도 난 듯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면 마을로 돌아갈 수 있어?” 뒤쳐져 걷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길잡이 산조에게 내뱉었다. 그는 심드렁하게 오토바이 타면 10분이면 마을에 갈 수 있으니 걱정말란다. “그래도 여기서 돌아갈 순 없어. 작년 껄로 트레킹에서는 선두에 섰는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툴툴대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채 10분이 지났을까? 다시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오토바이는 금방 오나?” 그리고 다시 걸었다. 포기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서둘러 걷지도 못하는, 한 마디로 진상 고객이다. 


그렇게 꾸역꾸역 점심을 먹기로 한 마을에 도착했고, 배를 채운 후 한 숨 자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오후에는 오르락내리락 산을 타거나 도저히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을 걸어야 하기에 그야말로 한 팀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평지에 이르면 어김없이 나는 뒤쳐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따라가 다시 간격을 좁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숲길이라 해를 피해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족 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그제서야 앞서 걷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은 이미 땀으로 홀딱 젖어 있었고, 큰 키로 덤불을 헤쳐 나가면서 긁혔는지 팔과 다리는 상처투성이였으며, 흰 피부는 햇빛으로 인해 벌겋게 타오르다 못해 알레르기처럼 붉은 반점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그 때 190cm의 스무 살이 외쳤다. “쏘 타이어드!” 장단을 맞추듯 맨 앞에 있는 산조가 뒤따라 소리쳤다. “퍽유!” “쏘 핫!”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너희도 힘들었구나.


때로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 힘들다는 게 위로가 된다. 돌이켜보니 나 혼자 뒤쳐져 있고 나만 힘들다는 패배감, 소외의식, 조바심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들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면서 내 처지를 합리화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걷다 보면 가쁜 숨을 내쉴 수밖에 없듯이,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고통과 결핍의 순간이 온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고통은 의지가, 결핍은 동기부여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핑계가 된다. 그럴 때는 누군가도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분연히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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