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 벌거벗고 다닌 것 같아"
2019년에 썼던 글을 다시 보게 됐다.
아이들 간식 한 번 주문하려다, 결국 내 물욕의 끝을 보게 된 날의 기록이었다.
한창 클 나이의 아이들이 학원 사이사이마다 배가 고프단다.
곁에서 챙겨줄 수 없으니 나름 건강과 맛을 고려해 '비(非) 인스턴트 간식'을 종류별로 한아름-
정말 한아름 주문했다.
거의 매일이 미세먼지로 난리인 터라 쟁여둔 마스크도 바닥나버려 또 사고,
차 두대의 미세먼지 필터도 교체하기 위해 샀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된 쇼핑이었는데,
어느새 내 목록도 하나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흰 남방 하나, 화장품도 좀 담고...
순식간에 수십만 원이 결제됐다.
그런데 말이다.
아직 삼남이 봄옷도 안 샀고,
둘째 턱 교정도 시작해야 하고,
신랑 옷과 신발도 사야 한다.
난 또 이 와중에,
안경도 바꾸고 싶고,
이쁜 머그잔도 텀블러도 갖고 싶고,
하얀 버킷백도 자꾸 눈에 밟힌다.
샤방샤방한 봄 원피스 하나쯤 입고 싶고,
여태 관심도 없던 목걸이와 팔찌까지 눈에 들어와 내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분명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고자 쇼핑을 시작했건만,
어느새 내 욕심으로 바뀌는 걸 보며
'역시 나다'싶어 웃음도 났다.
그렇다고 이 물욕이 밉기만 한 건 아니다.
결국 이 물욕은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한 달을 다시 근면성실하게 일하며 버텨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고,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작은 사치가 되어준다.
'이번 달도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해줘야지!'라며.
나이가 들어도, 현실이 아무리 무거워도
절대 꺼지지 않는 나의 물욕.
내 인생 최대의 과제이자,
오늘을 살아내게 해주는 가장 솔직한 힘일지도 모른다.
여자들 최대 고민 중 하나가,
'작년에 벗고 다녔나? 어쩜 이렇게도 입을 옷이 하나도 없지?' 아닐까.
6년 9개월이 흐른 지금도,
난 여전히 '작년에 벗고 다닌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긴 하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결제하기 전에 옷장도 한 번 더 뒤적여보고,
정말 필요한 것만 고르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달라졌다.
내가 무엇을 입고 걸치느냐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달까.
그래서 다행이다.
아주 조금은 성장했음을, 이렇게라도 확인하게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