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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모 Sep 27. 2021

꼬리뼈가 부러졌다

미추 골절 리포트

 추 골 


받아든 진단서에 박힌 네 글자는 어느 하나 익숙하지 않았다. 기대어 있던 식당 파티션이 무너져 타박상을 입었을 때도, 공사장 옆을 지나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눈 위를 가격해 열네 바늘을 꿰맸을 때도, 인도에서 턱 아래로 내려서다 발목이 접혔을 때도, 채칼에 손가락이 잘렸을 때도 골절인 적은 없었는데. 골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경함에 꼬리뼈가 찌릿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문자 그대로 꼬리뼈가 부러졌다.



소파에 걸터앉는 습관이 있었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푹신한 소파에 장시간 앉게 되는 일이 많다 보니, 나름대로는 몸을 곧추세워 바른 자세를 유지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걸터앉아 있었을 뿐인데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미끄덩- 꽝!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단 잠자리에 들었다. 통증이 있기는 했지만 늦은 시각이었고, 무엇보다 뼈에 이상이 생겼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문제는 다음 날 일어났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엉덩이를 중심으로 허리에서 허벅지까지가 뭉근하게 아파 이게 대체 뭐지 싶었고, 몸을 가누려 바로 눕는 순간 미친 통증이 덮쳐 감전된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ㅡ공교롭게도 최근 전구를 갈다 짧고 약한 감전을 겪은 바 있는데 놀랍도록 비슷한 감각이었다ㅡ. 비몽사몽 중에 통증의 근원을 찾으려 엉덩이 여기저기를 눌러 봤다. 어느 한 지점을 눌렀을 때, 아까와 비슷한 고통에 숨이 턱 막혔다. 아, 여긴가 보다. 근데 여기가 어디지? 대상포진 때와는 다른 통증인 걸로 보아 신경은 아닌 것 같고.. 설마 뼈?


일단 통증을 꾸역꾸역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서고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업무를 시작해야 했기에 노트북 전원을 켜고 여느 때와 같이 소파에 앉는 순간 다시 그 통증이 아까의 몇 배로 엉덩이를 관통했다. 큰일났다 싶었다. 급한 대로 그나마 높은 아일랜드 식탁 위에 노트북과 모니터를 올려, 선 채로 오전 업무를 마무리했다. 서 있는 동안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메신저로 동료에게 상황을 전하고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다. 허리를 굽힐 수도, 다리를 들어올릴 수도, 쪼그려 앉을 수도 없어 옷을 벗고 입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특정 자세를 취하면 통증이 폐부를 찔러 육두문자가 절로 터졌다. 겨우 택시를 잡아 탔다. 눕다시피 앉은 채로 정형외과에 도착했다.


엑스레이를 두 장 찍고 진료실로 향했다. 작고 둥근 진료실 의자를 보자마자 오전 내 마주했던 통증이 떠올라 서서 진료를 받겠다 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아버지뻘의 의사 선생님은 어쩌다 그랬냐, 상태는 어떠냐 물으며 촬영한 사진을 띄웠다. 초면인 꼬리뼈는 전문가가 아닌 내 눈에도 두 동강 나 있었다. 아이고 부러졌네.. 여기 이 선 보이죠? 멀쩡한 덴 선이 없는데 요 두 번째 뼈에만 이렇게 선명하게. 많이 아프겠네. 선생님, 금이 간 게 아니라 부러진 건가요? 그렇지, 골절이지. 여기랑 갈비뼈는 깁스를 못하니까 그냥 붙길 기다려야 돼.


진찰실에서 나와 주사를 맞고, 몇 가지 물리 치료를 받았다. 처방전을 기다리며 갑자기 눈 위를 다쳤을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들어 둔 상해보험이 생각나 진단서도 한 부 뗐다.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병원 옆 마트에서 도넛 모양의 방석을 샀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대다수는 현재 진행형이다.



1. 앉으면 아프다. 종일 서서 일하고 서서 밥 먹고 서서 TV를 본다. 장시간 서 있다 보니 종아리가 붓고 발바닥과 발목이 아프다. 3주쯤 지나고부터는 도넛 방석 위에 꽤 긴 시간 앉을 수 있게 됐다. 출렁임이 있는 부드러운 의자나 소파보다는 딱딱한 의자에 방석을 놓는 편이 덜 불편하다. 그나마 걸을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 옆으로, 그것도  방향으로만 누울 수 있다. 등을 바닥에 대고 바로 눕거나 엎드리면 뻐근함이 밀려온다. 옆으로만 누우니 바닥에 닿는 쪽 어깨와 팔이 저리고, 저도 모르게 베고 자는 손목에 통증이 생겼다. 파스를 사 왔다.


3. 허리를 깊이 굽히거나 쪼그리고 앉는 자세가 불가능해 낮은 곳에 있는 물건을 집을 수 없다. 자주 사용하는 것들은 모두 손이 닿는 곳에 뒀다. 실내에서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발가락으로 줍는 스킬이 생성됐다. 외출했다 휴대폰을 떨어뜨리는 돌발 상황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밖에서 떨군 휴대폰을 지인이 주워 준 일이 있다. 휴대폰이라면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줍게 될 것이라며 건넨 농에 웃을 수 없었다.


4. 재채기하면 꼬리가 송곳에 찔린 듯 아프다. 최대한 참다 통증 최소화를 위해 삼키듯 재채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재채기 소리가 달라졌다. 기침은 말할 것도 없다. 기침하는 상상만 해도 꼬리 아프다.


5. 배에 힘이 들어가게 웃으면 아프다. 웃음까지 참아야 한다니 너무해.


6. 병원에 갈 때마다 택시를 타는데, 도넛 방석 위에 앉아도 차가 크게 출렁여 꼬리뼈를 건드릴까 조마조마하다.


7. 같은 이유로 버스 탑승도 꺼리다 한 번 탄 적이 있는데, 하필 터프하게 운전하시는 기사님을 만났다. 완치될 때까지 버스는 타지 않기로 했다.


8. 도넛 방석은 내 운명. 집에서는 물론 외출 시에도 필수품이다. 앉은키 커지는 효과가 있다. 양해를 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간혹 부끄러워하는 지인들이 있는 것 같다. 미안하다 할 수 없다.


9. 어쩌다 그랬냐는 물음에 답하기가 어렵다. 처음엔 소파에서 미끄러졌네, 걸터앉아 있다 그랬네, 거실 바닥이 나무라 충격이 컸던 것 같네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랬더니 집에서? 아니 어쩌다? 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묻는 입장에선 전혀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모두를 이해시킬 수도,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 세상의 다른 많은 일들처럼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도 몰랐으니까.


10.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불안. 4주가 지났지만 아직 아프다. 통증이 사라지기까지 세 달이 걸렸다는 사람도 있고, 칠 년이 지난 지금까지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고, 비 오기 전날이면 꼬리가 저리다는 사람은 수두룩하다. 붙긴 붙는 건가.



그 사이 1차 백신을 맞았다. 희한하게도 근육통, 약간의 두통이 있는 동안 꼬리는 괜찮은 척을 했다. 마치 통증이 다른 부위로 옮겨간 듯. 그리고 접종 증상이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꼬리 통증이 슬며시 고개를 디밀었다. 통증은 돌아오는 거야...



최애 뮤지션의 콘서트와 벼르고 벼르던 뮤지컬도 한 차례씩 관람했다. 콘서트장에 갔던 날, 체감상 거의 백팔계단처럼 느껴지던 급경사를 오르내린 뒤 번뇌가 찾아왔다. 밤부터 통증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엑스레이에 조금 틀어진 꼬리뼈가 찍혔지만 의사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며 괜찮다 하셨다. 뮤지컬을 보러  날은 자리가 불편했다. 멀쩡한 몸이었다면 훨씬 편했을 의자였는데, 도넛 방석 위에 앉아 뒤로 젖혀진 등받이에 기대니 꼬리가 어딘가에 닿았는지 찌릿했다. 이쪽으로 기댔다 저쪽으로 기댔다, 엉덩이와 방석 사이에 손을 끼워 넣었다 뺐다 작은 부산함으로 혼자 난리도 아니었다. 다리에도 저릿한 기운이 몰려 관람이 끝난 후 녹초가 됐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드문드문 안부를 전했다. 제대로 앉거나 눕지 못하는 날들 동안 뜻밖에도 가장 서러웠던 것은 '쯧쯧 이제 뼈도 잘 안 붙는 나인데 어쩌다 그랬어'라는 말이었다. 저도 딱히 그러고 싶었던 건 아닌데요..


나이에 대한 서글픔이 아니라 뉘앙스의 문제였던 것 같다. 물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저렇게 말한 이들도 내가 걱정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말이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건 자신도 모르는 새 말 속에 생각과 마음이 담기기 때문이겠지.



4주가 모두 흘렀지만 아직 꼬리는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젠 평범한 인사처럼 꼬리 안부를 묻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나를 꼬리라 부르는 이도 있다. 얼른 붙어 줘 응? 나 앉아서 일하고 싶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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