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누가 대치동을 오해하게 만들었나
1) 학군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대치동을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종종 숨이 가쁜 단어들을 꺼낸다. ‘광기’, ‘7세 고시’, ‘엄마들의 경쟁’, ‘비정상적인 조기교육’ 마치 이 동네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모든 부모가 일탈한 열망을 품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이곳에 오기 전에는 비슷한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학군지로 이사오기로 결정한 건 남편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남편 주변의 지인들은 대부분 '학군지 찬양론자'들이었고, "학군지는 어릴수록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초등학교 때 올라와서 이사했더니 너무 늦었다며 후회하는 지인, 중학교 때 옮겼다가 적응을 못 했다고 말하는 지인. 선배 부모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유치원 때부터 학군지에서 루틴을 잡는 것이 '대치 키즈'로 성장하는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5살이 되는 시점, 유치원 입학에 맞춰 이곳으로 이사 왔다. 그러나 이사 오기 전까지도 나는 의문이 가득했다. "학군지가 뭐가 얼마나 다르길래?" "혹시 유별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아닐까?"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오랫동안 ‘될놈될’이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었다. 어디에서 자라든 될 아이는 되고, 안 될 아이는 안된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깨달았다. 대치동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쉽게 덧씌워지는지. 오히려 이곳의 부모들은 유별나기보다 현재의 한국 교육 제도에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성실한 부모'들이었다. 그리고 그 성실함의 바탕에는 '더 잘 시키고 싶다'보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제대로 알고 싶다' 는 마음이 훨씬 컸다.
2) 미국에서도 조기교육은 한다. 그런데 왜 대치동만 조롱받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최상위 학군지들은 대치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 보스턴 인근의 렉싱턴, 버지니아의 페어팩스 등. 이 지역 부모들은
• 유치원 이전부터 STEM 조기교육을 하고
• 수학 경시대회 준비를 준비하고
• 영재 트랙(Gifted Program)에 공을 들이고
• 적극적인 튜터링을 활용한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의 부모들은 ‘열정적’, ‘주도적’, ‘진취적’이라는 단어로 설명된다. 똑같은 행동을 하는 한국 부모만 ‘과한 욕망’, ‘불안의 화신’으로 규정된다. 그 간극은 늘 나를 멈춰 서게 만든다. 조기교육은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데, 왜 유독 한국만 ‘광기’로 프레임을 씌우는 걸까.
3) 대치동은 풍경이 아니라 이야기로 소비된다
아마도 대치동이 지나치게 ‘개인화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학군지는 도시 구조로 설명되지만, 한국의 학군지는 ‘엄마 캐릭터’로 설명된다. 대치맘, 7세 고시맘, 제이미맘… 이름이 붙는 순간 사람의 복잡한 사정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희화화된다. 제이미맘이 왜 그 무수한 과외를 아이에게 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 구조에 놓여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녀가 걸치고 있던 명품 아이템은 기사 제목의 소재가 되고, 그녀의 선택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한 인물의 욕망만 과장되면 뒤에 있는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교육 제도, 지역 격차, 공교육의 한계, 돌봄의 부재, 부모의 노동…이 모든 맥락은 사라지고 ‘열정 과잉의 엄마’라는 단순한 캐릭터만 남는다.
최근 쏟아지는 7세 고시 비판 기사들도 같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공교육이 지금 시대의 영어를 감당하고 있는가? 현재 초등학교는 3학년부터 영어가 정규 과목으로 시작되지만, 시험은 치르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시험이 없다는 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초부터 천천히 배우면 된다’는 말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7차 교육과정의 첫 세대였던 약 30년 전, 내가 초등 3학년 때 배우던 영어와 지금의 초등3학년 영어가 비슷하다는 건 어딘가 멈춰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뒤다. 중학생이 되는 순간 영어 난이도는 수직 상승한다. 아이들은 공교육의 속도에 맞추어 살 수 없고, 부모는 변별력을 확인할 수 없어 더 불안해진다. 만약 공교육이 확실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했다면 정말 7세 고시가 필요했을까?
나는 그 답이 한국 교육이 만들어낸 ‘간극’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교육 제도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대치동이라는 공간이 대신 떠안고 있을 뿐이다.
4) 왜 한국은 교육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가
한국에서는 교육 문제가 생기면 늘 가장 먼저 지목되는 대상이 '엄마'다. 사교육이 늘어나면 엄마의 불안 탓, 조기교육 열풍이 불면 엄마의 광기 탓. 하지만 교육 제도라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부모 개인의 감정과 선택만 비판하는 방식은 너무나 익숙한 프레임이다. 이 방식은 편리하다. 엄마 한 명을 문제의 중심에 놓으면 그 뒤에 있는 복잡한 맥락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공교육의 영어 난이도 변화는 묻힌다
• 지역에 따라 교육 지원 격차가 존재하는 문제도 사라진다
• 돌봄 인프라 부족, 맞벌이 가정의 현실 같은 구조적 문제도 흐려진다.
•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사회적 압박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이 모든 혼란은 간단하게 정리된다. "대치동 엄마들이 너무 과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이를 키워보면 알게된다. 부모들은 광기를 품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무게를 조금 더 일찍 감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5) 대치동이라는 공간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단서
대치동은 종종 비난받는 공간이지만 나는 이곳을 '한국 교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현미경' 이라고 느낀다. 이 동네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마주한 사회의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 사교육이 공교육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
영어, 수학, 논술, 영재교육까지 공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이 생기면 그 공백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지역이 바로 대치동이다. 아이들의 학습 속도와 난이도는 매년 빠르게 변화한다. 하지만 공교육은 그 속도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그 간극을 부모가 메우게 되고, 대치동이라는 공간은 그 부모들의 선택이 모여 '대체 구조'처럼 작동하게 된다.
• 정보의 속도가 곧 기회가 되는 구조
대치동의 가장 큰 강점은 사교육의 다양성보다 정보의 밀도와 속도다. 어떤 학원이 좋고, 어느 선생님이 잘 가르치고, 어떤 교재가 요즘 난이도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지. 이 정보는 빠르게 돌고, 빠르게 업데이트된다. 난 고3 여름방학 때 수능을 100일 남겨놓고, 대치동에 있는 논술학원 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나의 '대치동 첫 경험'이었다. 비학군지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난 그 3박4일 합숙하며 논술수업을 듣던 경험이 너무 큰 충격이었다. 나름 동네의 큰 논술학원을 다니고 있었던 나로서는 대치동 학원의 고퀄리티의 예상문제와 수업 방식이 신세계처럼 느껴졌고, 한편으론 내가 수능을 100일 남겨놓고 이런 학원의 존재를 알게된 것에 '너무 늦었다'라는 절망감이 들기도 했다. 정보가 곧 기회가 되는 시대에 내가 '대치동의 학원을 더 먼저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 효율성을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
학군지 부모들은 사실 '선행'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줄이고
아이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며, 가능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선택. 그 효율성을 극대화한 동네가 대치동일 뿐이다. 이 효율 중심의 사고는 한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공기이기도 하다.
6) 결국, 대치동은 한국 사회가 만든 결과물이다.
대치동이 비판받는 이유는 이 동네가 너무 특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한국적'이기 때문이다.
•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사회
• 시험을 중심으로 평가되는 구조
• 정보 격차가 곧 기회 격차인 현실
• 부모가 돌봄과 교육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환경
이 모든 요소가 누적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대치동이다. 대치동을 비난한다는 건 한국 사회가 스스로 만든 구조적 문제를 '특정 지역'에 떠넘기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대치동은 한국 교육의 모든 복잡함이 한 지점에 응축되어 드러나는 ‘거울’ 같은 곳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거울이 불편할 때마다 대치동이라는 이름에 책임을 덮어씌운다. 하지만 현실은 늘 더 조용하고, 더 복잡하고, 더 인간적이다. 난 이 동네에서, 아이들이 숙제를 하면서 행여나 스트레스 받을까 수시로 체크하고, 주어진 시간에서 최대한 즐겁게 뛰어놀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부모를 더 많이 보았다. 오히려 아빠의 육아 참여도는 훨씬 높아 보였고 혹시나 쌓일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주말에 시간 날 때 마다, 산으로 바다로 여행도 가고 캠핑가는 집도 굉장히 많다. 나는 그 모습에서 '광기'가 아닌 아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부모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열정은 조롱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