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매우 우울한 날입니다.
궂은 일을 보러 서울에 지금 올라와 있는 것도 그렇고 또...
20년이 좀 안 된 듯합니다.
어제 떠난 분을 서대문 영천시장 안의 헌책방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책방 주인 말에 의하면 자주 오신다고.
나는 지나가다 처음이었습니다.
그 분이 인사를 먼저 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는 유명한 분이라 오히려.일부러 피했는데...
내가 사려고 들고 있는 책을 흘끗 보더니...
"시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하는 일본의 하이쿠를 모은 작은 번역책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다시 보더니...
"어디서 많이 본 분인데... 기억이 안 나네요."
취재 현장에선 여러번 봤지만 한 번도 정식 인사를 한 적이 없기에 나는 머뭇거리며 내 이름을 댔습니다. 그저 누구나 처음 통성명 하듯 인사하는 정도로지요. 나는 그 분 이름을 잘 알고 있으니.
"아 그 분? 사진기자였던?"
나는 과거는 다 지우고 살기로 했기에 그냥 웃으며...
그가 내게...
"봐도 될까요?"
그 하이쿠 책을 받아 훑어보더라고요.
돌려주며...
"그 짧은 싯구 안에 감정을 다 담아내면서도 계절을 꼭 담으려 했다지요?"
하이쿠에 대한 그의 간단명료한 설명이었다.
그 때 어떤 젊은 여성이 다가왔고 반갑게 그를 껴안으려 했습니다. 서양인들 하듯이요. 그저 인사로.
근데 그가 뒷걸음을 치며 손등으로 그 분의 손등을 톡 치며 포옹으로 대신하더라고요.
잘 아는 여성인가 봅니다.
그 여성은 바로 자리를 떠났고
나도 헤어지면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꼭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
이 말과 함께
"정치는 못하실 분 같네요. 아까 그 여성분이 오해하겠어요. 그냥 반가워서 한 행동인데 지나치게 경계?"
그는 나보다 한 살이 위인데 일을 많이 해선지 나보다 늙어보였습니다.
그 얼굴이 웃는데 얼마나 해맑던지...
이땐 속으로
'진짜 정치하지 못할 분이시네.'
헤어지려니,
"하이쿠도 좋은 시지만 조선 말기의 김병연 시도 아주 뛰어납니다. 그의 삶도... 서양에서, 적어도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세계적인 시인이며 기인이며 위인이셨을 분이지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김삿갓입니다.
"그래요? 꼭 그 분의 시들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려는데 내게 아까 그 여성분에겐 경계하던... 포옹을 내게 해주시더군요.
"힘들지요?"
그런 분이...
그런 분이었는데...
그후 정치를 하고... 끝내 어제 북악산에서...
그가 그 헌책방 앞에서 헤어지며 내게
"안녕"
했는데
유언장의 마지막도
"모두 안녕"
이라 남겼더군요.
소년 같은 분이 앞으로 겪을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 였을까?
매우 아까운 분이라 너무나 아쉽습니다.
ㅡㅡㅡ
고양이들을 보면 내가 더 소년이 되기에 오늘 문득
소년 같던 주름 많은... 그 분...을 떠올리며...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