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시어 국립공원
그랜드 테턴에서는 블랙베어를 세 마리나 만났다. 차 안에서 본 것도 아니고 하이킹 길에서 삼 미터나 될까 하는 숲 속에 있는 곰을.
엄마곰과 아기곰이 같이 있는 걸 봤을 때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설만큼 무서워서 사진도 찍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 바빴다.
그런데 자연에 있는 그리즐리베어는 왜 보고 싶은 건지. 절대 하이킹하는 길에서는 말고 차 안에서나, 저 멀리 있는 그리즐리 베어를 망원경으로 본다는 전제 하에서만 말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망원경까지 샀으니 쓸모가 있길 바랐다. 하지만 그리즐리 베어는 글래시어 국립공원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까지 보지 못했다.
그리넬 글래시어 하이킹을 마치니 저녁 7시였다. 메니 글래시어 캠핑장에서 하는 레인저 프로그램은 7시 반이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날의 레인저 프로그램은 ‘곰’이었기 때문에 꼭 듣고 싶었다. 게다가 그날은 글래시어 국립공원에서의 마지막 밤이었고, 다음날에는 9시간을 넘게 차로 달려 솔크레이트 시티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비지팅센터가 문 열 시간에 올라와 주니어레인저 배치를 받을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은 국립공이나 역사적 명소에 갈 때마다 배치를 모으고 있는데 배치를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레인저 프로그램이 끝난 후 레인저에게 레인저 북을 확인받고 배치를 받을 셈이었다.
우리는 긴 하이킹으로 배가 고팠다. 하지만 남은 음식은 핫도그 빵 몇 개와 소시지가 전부였다. 편하게 자리를 잡고 먹을 시간도 없어서 빵에 소시지를 끼워 핫도그를 만들어 우적우적 먹으면서 캠핑장으로 갔다.
캠핑장은 작은 마을 같았다. 둥글게 캠핑장을 감싸는 도로에 가로 세로로 뻗은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가 마을처럼 한 블록씩 이웃을 만들었다. 한 블록마다 몇 채의 캠핑 사이트가 있었다. 다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이웃 텐트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 다음에 또 글래시어 국립공원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캠핑장에서 묵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다정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 길을 빙빙 돌았지만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사 저녁을 먹고 있는 한 남자에게 길을 물었다. 기분 좋은 웃음이 얼굴에 밴 머리색이 짙고 수염색도 짙은 백인 남자였다.
“혹시 캠핑장 극장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 알려주었지만 캠핑장 지도가 없는 우리는 한참을 헤맨 끝에 시작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블랙베어랑 그리즐리 베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세요?”
레인저가 물었다.
“어깨에 큰 굴곡이 있는 게 그리즐리예요.”
“맞아요. 블랙베어랑 그리즐리를 색이나 크기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나는 그리즐리는 회색에 어마어마하게 크고 블랙베어는 그리즐리보다 작고 검은색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차피 다 작게 태어날 텐데 얼마큼 커야 그리즐리인지 기준이 없다. 게다가 곰도 사람이 인종별로 피부색이 다르지만 같은 인종 안에서도 모두 피부색이 제각각인 것처럼 털 색이 다르다고 한다. 블랙베어도 조금 갈색빛인 것, 회색빛인 것 여러 종류가 있고 그리즐리베어도 그렇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곰 발자국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블랙베어는 손바닥을 선으로 그으면 엄지가 선 아래에 있고 그리즐리 베어는 모든 손가락이 선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니 발자국을 봤다면 어떤 곰이 근처에 사는지 알 수 있다.
또 블랙 베어는 새끼나 성체나 모두 나무를 잘 타지만 그리즐리 베어는 새끼일 때는 나무를 타지만 성체가 되면 나무를 못 탄다고 한다. 그래도 그리즐리 베어에게 쫓길 때 나무 위로 도망가는 게 안전한 건 아니란다.
레인저가 한 번은 망원경으로 그리즐리 베어를 관찰할 때의 일이라고 한다. 새끼가 나무 위로 점점 더 높이 올라가자 어미가 그게 마음이 안 들었는지 나무를 마구 흔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새끼가 내려오지 않자 나무를 주욱 땅까지 내려오게 휘어서 새끼를 잡았다고 한다. 웃으며 들었지만 내가 나무에 있다면이라고 가정한다면 정말 아찔한 일이다. 심지어 사람은 나무를 잘 타는 것도 아니니까.
한참 이야기를 듣는데 기침이 그치지 않아 나 혼자 차로 돌아갔다. 레인저 프로그램은 45분 동안 진행되니까 남은 가족들은 10분 정도 후에 차로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보온병에 남은 따뜻한 물을 마시고 홀스 사탕도 먹으니 기침이 좀 진정됐다. 그런데 9시가 넘도록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거다.
9시 15분이 되어서야 돌아와서는 레인저가 한 시간이 넘게 말을 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 엄수 아닌가요? 그 야밤에.) 배치를 받아서 기분이 좋게 돌아왔다.
남편 말로는 한 가지 후회되는 건 글래시어 국립공원 동쪽에 숙소를 잡지 않았다는 거라고 했다. 동쪽에 볼 게 많고 하이킹도 거의 동쪽에서 했으니까. 며칠간 오가는데만 10시간을 썼으니.
숙소에 돌아가니 밤 11시 반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늦은 시간이라 뭘 먹을 수도 없었다. 배도 고프고 피곤했지만 침대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밤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필라델피아로 돌아온지 며칠 후에 이런 기사가 떴다.
그리즐리 399는 꽤나 유명인가였나보다. 숲에서 나와 붐비는 잭슨홀로 가서 먹을 것을 찾으러 어슬렁 거리는 일이 잦았나보다. 새끼까지 데리고 먹을 것을 찾으러 내려와 어슬렁 거려서 결국 레인저들은 어미곰과 새끼곰을 분리시켰다고 한다. 사냥을 하거나 풀이나 베리를 먹지 않고 인간 음식을 먹으러 심심하면 마을로 내려오는 습관을 새끼곰이 배울까봐서 그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