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막스가 경고하는 치명적 결함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시장, 우리는 안전한가?
최근 금융 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입니다.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이제 AI는 우리의 자산을 관리하는 ‘펀드 매니저’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1~2년 사이 수많은 AI 기반 펀드들이 저비용 인덱스 펀드(S&P 500 등)의 수익률을 상회하는 성적표를 내놓으며 투자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알고리즘과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채 초과 수익을 달성한다는 설명은 매우 논리적이고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물러나 냉정하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수익률이 과연 AI의 ‘운용 실력’인지, 아니면 그저 거대한 ‘강세장의 조류’에 올라탄 결과인지 말입니다. 많은 투자자가 AI라는 이름이 주는 막연한 신뢰감에 기대어 소중한 자산을 맡기지만, 역설적으로 AI 펀드는 그 구조적 특성 때문에 예상치 못한 시장의 변곡점에서 가장 취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AI 펀드의 장밋빛 전망을 경계해야 하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한계와 심리적 위험성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하워드 막스가 경고한 '과거의 배신',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투자 거장 하워드 막스는 그의 저서 『투자와 마켓사이클의 법칙』에서 시장의 주기성을 강조하면서도 한 가지 중요한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일어난 일이 미래에 똑같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장을 구성하는 주체인 인간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 양식을 수정합니다. 즉, 과거의 패턴이 대중에게 학습되는 순간, 그 패턴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됩니다.
AI 펀드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는 '과거 데이터의 학습'에 기반합니다. 수십 년간의 주가 흐름, 거시 경제 지표 데이터를 분석해 통계적으로 승률이 높은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하워드 막스의 지적처럼 시장 참여자들이 과거의 패턴을 인지하고 대응을 바꾸기 시작하면, AI가 학습한 과거의 정답지는 순식간에 오답지로 변합니다. 미래는 과거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며, 인간의 적응력이 만들어내는 '비반복적 변수'는 오직 데이터만으로 무장한 AI가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운용의 실력인가, 테마의 수혜인가? 수익률의 착시 현상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구분을 해야 합니다. 최근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 ‘AI가 종목을 잘 골라서(AI Managed)’인지, 아니면 단순히 ‘AI 관련 기업(AI Themed)’들의 주가가 올랐기 때문인지 말입니다. 엔비디아와 같은 AI 하드웨어 기업의 폭등은 AI 테마 펀드에 기록적인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이는 AI의 운용 지능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AI가 직접 종목을 선정하는 운용 펀드들의 상당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 지수(S&P 500)를 지속적으로 상회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변동성 장세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즉, 최근의 성과는 강세장이 만든 ‘착시 현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모든 배가 조류를 타고 떠오르는 시기에는 가장 공격적으로 돛을 올린 배가 가장 빨리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AI는 특정 섹터의 쏠림 현상이나 모멘텀을 포착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능숙하지만, 이것이 하락장에서도 자산을 방어해 줄 ‘방어 지능’인지는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조류가 빠질 때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드러나듯, AI의 진짜 실력은 시장이 돌아설 때 비로소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정보의 민주화와 사라지는 '알파', 더 이상 숨은 꿀은 없다
과거와 현재의 투자 환경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수익의 원천이었습니다. 소수의 전문가만이 고급 정보를 독점했고, 대중은 정보 없이 투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의 홍수 시대입니다. 개인이든 AI든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방대해졌고,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극도로 높였습니다. 과거에는 통했던 사소한 통계적 패턴들이 이제는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되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이런 환경에서 AI가 찾아낸 미세한 틈새(알파)는 금세 다른 수많은 알고리즘과 스마트한 개인들에 의해 메워집니다. 과거에는 정보를 먼저 획득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같은 정보를 보고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한다 해도, 이미 시장에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다면 그 결과값 역시 이미 가격에 선반영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결국 정보의 민주화는 AI가 과거처럼 손쉽게 초과 수익을 내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벽이 되고 있습니다.
체제 전환의 시대, 고성장 데이터로 저성장 미래를 예측하는 오류
우리가 처한 경제적 환경의 변화도 AI 펀드의 치명적인 위험 요소입니다. 과거 수십 년간의 데이터는 대부분 인구 구조가 젊고 생산성이 폭발하며 세계화가 진행되던 '고성장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미래는 저출산 고령화, 탈세계화, 그리고 저성장이 고착화된 '체제 전환(Regime Shift)'의 시대입니다. 과거의 데이터는 저금리와 낮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의 성공 방정식만을 담고 있습니다.
AI는 과거의 고성장 패턴을 학습하여 투자 결정을 내리지만,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지점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예를 들어, 저금리 시대에 유효했던 성장주 중심의 알고리즘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경제 활동의 패턴 자체가 바뀌면 과거의 데이터는 오히려 독이 됩니다. AI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가본 길을 복기하는 능력을 갖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으로 과거와 다른 미래가 펼쳐질 때 AI 펀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블랙박스'의 공포, 확신 없는 투자가 부르는 심리적 파멸
AI 펀드의 가장 치명적인 취약점은 역설적으로 그 '고도화된 복잡성'에 있습니다. AI가 왜 특정한 종목을 사고팔았는지, 어떤 논리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는지 인간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를 소위 '블랙박스(Black Box)' 현상, 혹은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의 부재라고 합니다. 상승장에서는 이유를 몰라도 수익률에 취해 즐거워할 수 있지만, 진짜 문제는 하락장에서 발생합니다.
주식 시장에서 폭락장이 찾아왔을 때 투자자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자신이 투자한 자산에 대한 확신'에서 나옵니다. 내가 투자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고, 왜 이 가격이 저평가되었는지 스스로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공포를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에게 모든 것을 맡긴 투자자는 하락장에서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AI가 오류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 "이 알고리즘이 바뀐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걸까?"라는 의문에 답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모르는 투자는 확신을 가질 수 없기에, 심리적 싸움인 투자 세계에서 결국 최악의 저점에 손절매를 하는 악수를 두게 됩니다.
기술에 대한 맹신보다 인간적 통찰이 필요한 때
인공지능은 분명 훌륭한 도구입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하고 인간이 놓치기 쉬운 세부적인 수치를 계산하는 데 있어 AI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하지만 투자는 단순한 산수의 영역이 아닙니다. 투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철학의 영역이자, 수많은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얽혀 만드는 복잡계의 산물입니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는 참고서가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인생을 건 투자의 정답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AI 펀드가 보여주는 화려한 수익률에 가려진 '과거 의존성'과 '블랙박스의 위험'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금 AI 펀드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면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이 펀드가 수익을 내는 논리를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시장 분위기가 반전되었을 때도 나는 이 알고리즘을 신뢰하며 밤잠을 설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기술은 보조적 수단일 때 가장 빛납니다. 자산 관리의 주도권은 항상 데이터가 아닌, 변화를 읽고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인 당신에게 있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