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워렌 버핏, 존 보글
어느 날, 재무제표상 흠잡을 데 없는 기업을 발견했습니다. PER(주가수익비율)과 PBR(주가순자산비율)이 경쟁사 대비 현저히 낮았고 차트는 바닥을 기고 있었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이 보석을 못 알아보고 있구나"라는 확신에 차서 비중을 크게 실어 매수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주가는 지하를 뚫고 내려갔고, 한참 뒤에야 그 기업이 대규모 소송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의 분석에 따르면, 단순히 PER/PBR이 낮은 주식은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부도율이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소위 '가치 함정(Value Trap)'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겉보기에 싸다는 이유만으로 덜컥 매수했던 그 주식은, 결국 "왜 싼지 이유를 모른다면, 그 이유가 바로 리스크다"라는 뼈아픈 교훈만을 남겼습니다.
과거 벤자민 그레이엄 시대에는 '담배꽁초 투자'가 유효했습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했기에, 장부보다 싼 기업을 찾아내기만 해도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클릭 한 번이면 전 세계 기업 정보를 볼 수 있는 투명성의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저평가된 것처럼 보이는 주식을 발견했다면 당신이 알지 못하는 악재로 인해 합리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주식, '가치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JP모건 자산운용의 연구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 PBR이 낮은 주식 그룹은 무형자산 가치를 반영하지 못해 지속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하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간파한 워렌 버핏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적당한 기업을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훨씬 낫다(It's far better to buy a wonderful company at a fair price than a fair company at a wonderful price).
-버크셔 해서웨이 1989년 주주 서한-
맹목적인 저평가 찾기는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이제는 싼 가격보다 기업의 퀄리티 자체가 중요한 안전마진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싼 기업을 찾아 헤매기보다,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우량 기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뱅가드 그룹의 설립자 존 보글은 그의 저서 『모든 주식을 소유하라』에서 "장기적(10년 이상)으로 주식 수익률의 90% 이상은 기업의 이익 성장과 배당에서 나온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매수 당시의 저평가 정도(PER 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4년경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시 주가는 수정주가 기준 약 8,000~10,000원 사이였습니다. 현재 16만 원에 달하는 주가를 고려할 때, 20년 전 8,000원에 샀느냐 9,000원에 샀느냐 하는 1,000원의 안전마진 차이는 최종 수익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위대한 기업과 동행한다면, 초기 진입 시점의 극단적인 가격 할인 여부는 거대한 '시간의 복리' 앞에서 무의미해집니다.
그렇다면 안전마진은 필요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만 그 정의를 '무조건 싼 가격'에서 '리스크를 상쇄할 완충재'로 확장해야 합니다. 하워드 막스는 『투자에 대한 생각』에서 "최악의 대출은 최고의 시기에 이루어진다"며 경기가 과열될수록 리스크가 커진다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워렌 버핏은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Risk comes from not knowing what you're doing)"고 말했습니다. 즉, 내가 기업을 잘 모를수록, 시장이 과열될수록 더 큰 가격적 안전마진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제러미 시겔 교수의 『주식에 장기 투자하라』 연구에 따르면, 주식 보유 기간이 20년 이상으로 늘어날 경우 역사적으로 손실 확률은 0에 수렴했습니다. 내가 기업을 깊이 이해하고(지식), 오래 보유할 수 있다면(시간), 가격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아도 안전마진은 충분히 확보된 셈입니다.
결국 현대적 의미의 안전마진은 [기업의 퀄리티 + 투자자의 지식 + 시간의 인내]가 결합된 입체적인 방어막입니다. 토마스 펠프스는 저서 『주식 시장의 100배 주식』에서 100배 수익을 낸 투자자들의 공통점은 '싸게 산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기업을 팔지 않고 오래 보유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위대한 기업을 발견했고, 그 비즈니스를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시장이 주는 '적당한 할인'에 감사하며 과감하게 방아쇠를 당기십시오. 투자의 대가 찰리 멍거가 남긴 다음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큰돈은 사고파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나온다(The big money is not in the buying and selling, but in the waiting)
-찰리 멍거-
진정한 투자의 승리는 싼 매수가격이라는 숫자 하나가 아니라, 위대한 기업과 함께 흐르는 시간의 힘을 믿는 인내심에서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