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치 May 12. 2024

해가 드는 집

행복의 기준


 해가 많이 드는 남향의 집은 이상적이게 보일 수 있다. 

밝고 쾌적한 집에 살았다. 그러나 늦잠을 좋아하고 해가 싫은 나는 그런 집이 싫었다. 


원하지 않은 쾌적함을 얻는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밝은 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커튼을 달고, 세상과의 단절을 해야만 행복해지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집은 가장 편안한 상태여야만 했다. 그러나 원한다고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집은 가족이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완벽한 집처럼 완벽한 가족의 형태를 지녔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너희 집은 행복하지 않아? 완벽하잖아."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해가 잘 드는 집처럼 완벽한 우리 가족이 싫었다. 그 모든 것이  행복하지 않았고, 불편했다. 내 방안에 커튼을 달아야 했다. 커튼을 달을 때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정말 맞는 선택일까? 집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의 행복을 위해 딱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커튼을 달아야지. 용기 냈다.



 그리고 커튼을 치자 바깥에서 드리우는 햇살이 아닌, 맑은 하늘이 아닌 나라는 사람이 보였다.  

방안에 있는 작은 화장대에 거울에 비춘 나의 모습은 다소 충격이었다. 꾀죄죄하고, 감지 않은 머리와 흐리멍덩한 눈을 가진 여자가 서있었다. 화목해 보이던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위해 싫어하는 햇빛을 견디면서 나라는 사람을 포기하고 살았던 것이었다.



 나는 나를 잃고, 보이는 것에 끌려다녔다. 착각했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집과 좋은 차 그리고 명품등으로 자신을 높인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자신이라 착각 한다. 그것이 나쁜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닌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로 인해 나 자신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항상 좋은 것들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 보이는 것에 목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인생에 동기부여는 될지 언정 인생에 자기소개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향의 해가 잘 드는 집이 싫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옆집남자-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