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5년 중순에 처음으로 비트코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군 전역 후 유럽 여행을 갔던 2015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직도 그때가 기억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의 어느 카페에서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와 처음 비트코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비트코인이라는 게 있는데, 누군가 몇 십 개를 지불해 피자를 사 먹었다면서
지금 그 가치가 몇 백 달러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그걸 듣고 몇 천만 원짜리 피자라는 농담도 했었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200~300달러 수준이었다.
2025년 4월 13일 현재, 비트코인의 가격은 약 8만 5천 달러다.
한국 거래소에서는 약 1억 2천만 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불과 4달 전만 해도, 10만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내가 만약 15년으로 돌아가 비트코인을 샀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부모님을 설득해 몇 십 개만이라도 샀더라면?
비트코인을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보는 그런 류의 한심한 망상이다.
코인 - 가상화폐는 2015년까지만 해도 몹시 낯선 개념이었지만,
이제는 기술 자체보다는 투자 수단으로써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코인 선물 거래 자체는 해외 거래소에서만 가능하기에, 개념과 방법을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주 간단한 내용뿐이다.
코인 선물은 현물 거래와는 다르게 내가 가진 돈을 증거금으로 레버리지(배율)를 사용할 수 있으며,
가격이 오르거나(롱) 내리는(숏) 시장 움직임을 예측하여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고백하자면 나 역시 여전히 이 정도의 개념만 가지고 선물 거래를 시작했고, 여전히 그 이상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상을 안다고 코인 선물 거래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5년 코인을 처음 알게 된 이후, 간간히 코인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처음으로 코인 투자를 시작한 것은 2021년이었다.
이 때는 어디까지나 현물 투자였다.
아직 직장을 가지기 전이었고, 그때는 이른바 불장이라고 하는 시기였다.
코로나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되던 때,
돈은 코인 거래소로 몰렸고 나 역시 업비트에서 소소하게 용돈 벌이나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때는 아무 코인에나 돈을 넣어두기만 해도 돈이 벌리는 시기였다.
이때의 나는 코인 선물에 대해서 아주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패가망신의 지름길. 도박과 비슷한 무언가.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인생 역전의 기회가 되어주었다는 것까지.
코인 선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더 많았던 것 같지만
나는 코인 선물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코인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미친 듯한 급등과 급락. 그 사이에서 ‘존버’를 외치며 버티면서 2021년부터 3년이란 세월을 보내왔으니까.
하루에 적게는 10%에서 어느 날은 100%까지.
급등과 급락 속에 인간사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코인 트레이더들을 벌벌 떨게 했던 21년 3월의 붓다빔이나,
22년의 루나 사태 당시에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폭락이 나오는데 떨어지는 이유도 모른 채 온몸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오르면 오르나 보다, 떨어지면 떨어지나 보다.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멍하니 서있는 꼴이었다.
사두었던 코인의 가격이 떨어지면 월급날 조금씩 물을 타기를 반복했던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광명도 찾아왔다.
그 길고 긴 존버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나는 코인 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자신의 소중한 돈을 넣어두고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지켜보기만 했다.
오르겠거니 싶어서 내가 구매하면 거짓말 같이 하락이 시작되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인터넷에 나오는 최고점에 물린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일례로 나는 도지코인이 2021년 800원을 찍었을 때 구매하기도 했다.
그 후 연일 폭락을 거듭한 도지코인이 100원 대로 떨어졌을 때는 얼마나 아찔했는지.
손실이 -50%가 넘어갔지만 나는 손절도 하지 못했다.
그저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도하며 계속 물을 타면서 버텼다.
한동안 거래소 앱 화면의 마이너스 숫자와 파란색은 변하지 않았다.
분노도 아니고 허탈감에 가득 차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잊은 채 지냈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고 파란색이었던 숫자도 빨간색으로 변해갈 즈음,
마이너스였던 수익률도 플러스로 바뀌었다.
나는 안도감에 가득 차 전량 매도를 하고 한숨을 내쉬며 좋아하곤 했다
그렇게 탈출했던 코인이 또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올라서 당황스러웠는가.
그런 초보자의 눈에도 코인이 기회가 되어줄 것이란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이 미친듯한 변동성에 잘만 올라탄다면 아파트 자금 마련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물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 3년 간의 역사가 증명하듯, 내가 급등 코인을 맞춘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시드가 절대적으로 적었다.
21년부터 코인을 시작해서 적금 붓듯이 넣었던 돈이 약 3천만 원 남짓.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묻지 마 존버 투자는 몇 번이나 나를 살려주었던 것이다.
21년부터 물려있던 코인들에 물을 타서 살아나고, 다시 물려있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24년도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찾아온 펌핑 덕분에 운 좋게도 시드는 6천만 원까지 불어났다.
처음에 말했던 원금 3천만 원이 그렇게 6천만 원이 되었다.
나는 순전히 운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또 급등 코인을 찾아 전액을 배팅한다는 건 꿈에도 꾸지 않았다.
심지어 6천만 원 전부를 배팅한다고?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런 상식적인 사람이 코인 선물에 생각이 미쳤다니, 미치지 않고서는 낼 수 없는 결론이었다.
나는 무슨 용기인지는 몰라도 24년 11월 초, 대뜸 코인 선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냥 시작할 수는 없었다. 코인 선물에 관련된 책이나 투자 관련된 서적을 그때부터 찾아봤다.
인터넷에서도 코인 선물로 성공했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루 1% 수익만 나더라도 이걸 복리로 굴리면 몇 년 후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는 말이 얼마나 멋지게 들렸던지. 내 시드가 지금 6천만 원이니까 여기에 하루 1%라면 그 수익도 적지 않다.
어림잡아도 60만 원, 일주일이면 거의 400만 원 돈이다. 내 월급을 우습게 넘어선다.
심지어 수익을 계속해서 재투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6천만 원은 1억이 되고, 그 1억은 어느새 몇십억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목표금을 넘어서서 경제적 자유까지 이룰 수 있을 거란 말이 얼마나 달콤하게 들렸던지.
누구도 평생직장을 다닐 수 없고, 경제적 불안에 떨어야 하는 시대에
아파트 문제도 해결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아파트 대출 이자를 낼 수 없다.
200을 번다면 이자로만 200을 모조리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서
코인 선물은 한줄기 희망으로 비쳤다.
1%의 마법이 나를 구원해 주리라.
실제로 복리의 마법이라는 그 말은 여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정작 벌 생각만 했지, 얼마를 잃을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랜 코인 현물 투자 기간 동안 마이너스 상태로 1년 넘게 있었던 적도 있다는 걸,
나는 그 순간에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그저 실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았던 것이지
기회비용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누적 손해를 보았는지 전혀 생각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코인 선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인의 월급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아파트 문제와, 파이어족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