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이 살아갈 세상

by 몽글몽글

손주들이 살아갈 세상

손주가 생겼다. 생후 75일째다. 며느리가 밴드를 만들어 친정과 우리 부부를 포함해 총 7명을 초대했다. 며느리는 생전 처음 해보는 육아 하느라 심신이 피로할텐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생후 첫 날부터 밴드에 아가의 성장 사진을 올린다.
뭉클하고 경이롭고 신기한 순간이 매일 순간순간 연출된다.

올라왔어?
남편은 아가 사진이 언제 올라왔는지 실시간으로 묻곤 한다. 크게 볼거라며 테블릿PC로 확대해 가며 볼륨을 키워 가며 한참을 들여다 본다.
보고 보고 또 보고 수시로 보곤 한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다라는 표현을 맨 처음 한 이는 이런 마음이었을까?

신생아 장난감이며 물품이 예전에 내가 육아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종류도 월령별로 다양하고 촘촘하게 만들어져서 젊은 엄마들을 유혹하고 있다.
나의 손주는 생후 75일째. 누워서 다리를 움직여 발로 차서 음악 소리를 나게 하는 일명 체육관 놀이를 즐겨 한다. 새 입 모양을 만들어가며 옹아리 비슷하게 하면서 양팔을 아래 위로 흔들며 버둥대는 모습이 깨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다.
신생아였을 때 포대기에 꼭꼭 싸여 있다 어쩌다 나온 자기 팔에 화들짝 놀라던 때와 비교하면 엄청 발전한 것이다.
신생아 3,2킬로그램으로 태어났을 때 너무나 작아서 만지면 부서질 것 같던 그래서 만져 보기도 힘들었던 아가가 이렇게 크고 있다니 분명 기적이다.

손주는 모유를 먹는다. 분유을 먹이는 것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의 면역을 위해서 며느리가 모유를 고집한다. 모유 수유는 모체가 섭취하는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며느리는 매운 것도 날 것도 카페인도 삼가는 식생활을 하고 있다. 숭고하고 기특하고 고마운 희생이다.

어여쁜 손주 자랑을 어디라도 하고 싶어 친정 가족 톡방에, 직장 동료들 톡방에 들이대면서 자랑하고 싶어 하는 내게 남편이 한사코 제지한다.
유난스럽게 하지 말아라. 내 눈에 예쁘다고 다른 사람 눈에도 예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보다는 그 아이가 사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더 나은 세상?
그렇지. 우리 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해야지.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들다고들 한다. 경쟁이 너무도 치열한 대한민국.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경쟁이 치열해서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회자되는 시대다.
이렇게 예쁘고 고운 아이들이 사는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할까?
할머니가 기원해 본다.
나는 아이들이 사교육 현장에 맹목적으로 내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있다. 4세 고시는 명문 유치원 입시, 7세 고시는 명문 초등학교 입학을 뜻하는 것 같다. 물론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떠들고 외치다 보면 그것이 일반화되어 버리는 그래서 그 기류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외감과 패배자라는 인식을 은연 중에 심어 주게 된다.
나는 세상이 그렇게 값싸게 휘몰아 치는 광풍에 어른들이, 사회가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소질과 개성을 존중해 주며, 기본을 잘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맑고 건강한 아이들로 자랄 수 있도록 사회가 기다려 주고 용기를 주며 격려해 줬으면 좋겠다.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1등을 위해서 함께 뛰었던 사람들을 포용해 주고 격려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정원 가꾸듯 사회를 일구어 나갔으면 좋겠다.

우리 나라 출생율이 0.7명이라 한다. 세계 최고이다. 인구 소멸 직전이다. 5,000년을 은근과 끈기로 이어온 민족이 스스로 소멸해 가는 과정으로 진입하고 있다. 전쟁 상황에서의 출생율보다 더 낮다고 하니 위기는 위기이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경쟁의식이 사회에 만연하다 보니 괜히 아이 낳아서 경쟁의 폭풍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 젊은이들이 부모가 되기를 미리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되짚어 볼 일이다.
교육비도 비싸고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만한 주거 안정에 대한 불안감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못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동물들도 자기 주거가 안정이 되어야 종족을 보전한다고 하니 청년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관심을 주고 제도적으로 장치를 먀련해 줘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우리 손주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사는 사회가 되는 선순환의 삶이 이어질 것 같다.

며칠 전 선배와 통화했던 적이 있다.
손주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입시 미술을 한다고 했다.
‘’우리 손주가 학원에서 방금 왔어요“
그 때 시각이 밤 10시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