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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chi Apr 04. 2019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람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청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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