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많이 울었다. 처음엔 그에게 화가 너무도 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내'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었어도 나처럼 화를 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나를 바꾸고 싶었다.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가 일치하는 순간의 나는 그랬다.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선을 건드리는 순간, 나는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생각하지 않게 되고, 내가 화난 것을 최대한 드러내려 했다. 화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그러고서 항상 후회했다. 그 순간에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었더라면.. '보여지는 나'를 인식하고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많이 울었다. 왜 나는 여전히 아무와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걸까. 나는 결국 평생 아무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내가 너무 속상했다.
다음 날,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를 정말 바꾸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신과 상담 경험이 있는 동료에게 나도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는 속내를 비추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다 할 용기는 안 났다. 정말 나를 변화시켜 줄지 확신이 안 섰기 때문이다. 나는 동료에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문제의 원인을 너무 자신에게서만 찾지 말라고 했다.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가 건드렸다면, 그건 정말 그가 잘못했거나 나와 결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후회의 늪에 빠졌다.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더 깊어졌을 사이에 대해 상상을 했다. 가보지 못한 길을 후회했다. 그전에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의 좋았던 기억들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면 화가 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임에 나갔다. 이 친구들에게는 그날의 이야기를 모두 했다. 나를 위해서 그런 건지, 모두 나처럼 화를 냈고, 잘 걸러냈다며 전혀 아쉬워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그날로 돌아갔다. 모든 우연들이 겹쳐 그날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날의 우연들이 흩어졌더라면.. 누구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먼 훗날 그날 그렇게 된 걸 감사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니 분명 올 것이다.
정말 내가 아쉬워하는 건 뭘까? 그와 가보지 못한 길? 좋았던 기억에 대한 아쉬움? 나는 그날 그에 대한 화,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화를 냈다. 결국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닐까. 내가 그날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날 예민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다른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화를 낼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으니까. 내가 정말로 아쉬운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내 감정에 최선을 다했더라면, 내가 아쉬워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 결론이었다. 내가 그에게 화를 낸 것도, 그에게 호감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좋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호감이 있었고, 섭섭함에 화를 냈지만, 그는 아마 내가 그냥 화를 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나는 내가 호감 있는 그에게 마음 표현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렇게 끝난 것에 대해 후회를 한 것이다. 문제는 역시 나에게 있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끌릴 때 그 사람이 나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에게 이끌리고, 내가 더 크게 이끌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상대방도 나에게 더 강하게 이끌린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어도, 그 사람이 나에게도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상처받기 싫은 사람의 방어기제겠지. 하지만, 둘 다 호감이 있는데, 둘 중 아무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둘의 만남은 아쉽게 끝이날 것이다.
그래서 표현을 해야 한다. 감정 표현을 하지 못했다면, 나에 대해 또 후회하고 그에 대한 미련만 남을 것이다. 내가 정말 바꾸고 싶었던 것은 예민하고 화를 내는 내 모습이 아니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아 나에 대해 하나도 드러내지 못한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정리된 이후로 나는 '후회 없이 행동하기'가 내 삶의 모토가 되었고, 나의 방향성이 되었다. 주된 행동은 당연히 감정표현하기. 물론 아직까지 실천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되새김질하고 되뇌어서, 억지로 떠올리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행동하는 것이 내 몸과 생각에 베여있기를 바란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상황 똑같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다. 내가 그 속에서 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감정에 상관없이(상대방이 먼저 호감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