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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Mar 06. 2019

할머니의 탕수육

늦은 아침을 먹고 난 일요일 오후 아빠는 조금 출출하다며 엄마에게 수제비나 끓여서 먹자고 했고 옆에 있던 난 기다렸다는 듯이 "나도, 나도!"를 외쳤다. 아빠는 떡국이나 만둣국보다 수제비가 훨씬 더 좋다고 했다. 김가루를 솔솔 뿌린 시원한 멸치육수 국물에 쫄깃한 수제비 한 점을 조심스레 건져서 잘 익은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는 그 맛이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수제비만 후루룩 먹고 있던 엄마가 아빠를 휙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몇 년 전 한 중국집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우린 짜장면, 볶음밥, 짬뽕 그리고 탕수육 대자를 시켰고 인상 좋으신 사장님이 서비스로 군만두를 주겠노라고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집은 특히 군만두가 맛있기로 유명했다. 

언제부터인지 만날 때마다 매번 한 뼘씩은 작아지는 것만 같은 할머니는 음식을 기다리며 가만히 나를 바라보셨다.

할머니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 아빠의 얼굴이 조금 굳었고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멋쩍게 이마를 긁적이며 웃었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고 아빠는 바삭한 탕수육을 가위로 자그마하게 잘라서 할머니 앞 접시에 올려놓았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라 조금 낯설었다. 할머니는 탕수육 한 점을 입에 넣고는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던 우리가 정신없이 입 속에 음식을 밀어 넣는 동안 할머니는 여전히 입 안의 탕수육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할머니가 말했다.

"난 오래오래 살 거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데"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분주하게 할머니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며 말했다.

"당연하지. 오래 건강하게만 사이소. 맛있는 건 내가 다 사드릴게..."  


밥을 다 먹자마자 할머니는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있어야 했다.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문 앞에서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하는 수 없이 문 앞에 서서 몇 번씩이나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게 마지막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 후 내가 독일로 돌아오고 나서 할머니는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셨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나셨다.   


서울에서 일하면서 가끔 부산에 내려올 때면 할머니 한번 뵙고 가란 말에 왜 그토록 귀찮아하며 아, 다음번에...라고 미뤘을까 하는 죄송한 마음이 계속 일렁인다. 가끔 내 한쪽 손을 꼭 잡고 날 올려다보며 슬며시 웃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각날 때가 있다.  


'다음번' 이란 게 더 이상 없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볼 걸 그랬다. 그때 할머니의 작고 고왔던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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