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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Apr 24. 2019

언제 마음이 따뜻해지나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작년에 가장 핫했던 말 중 하나이다. 요즘 나에게 행복이란 이렇게 사사로운 것들이다. 굳이 행복하다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참 편안하다, 따뜻하다, 예쁘다 그리고 정말 맛있다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순간들. 무엇보다도 독일에서 유독 마음이 따듯해지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간만에 제이미가 부엌에서 넉넉한 냄비에 몇 시간씩 볼로네즈 소스를 끓일 때 집안 가득 향긋한 토마토소스 냄새가 가득 해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잘게 다진 양파와 마늘을 중불로 볶는다. 이때 양파가 맛있는 노란색으로 변할 때까지 충분히 볶아줘야 특유의 달콤하고 깊은 맛이 더해진다. 그런 다음 후추와 소금으로 밑간을 해놓은 간 고기를 넣고 센 불로 볶다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레드와인을 붓는다. 이어서 홀토마토와 잘게 다진 당근, 샐러리 그리고 월계수 잎을 넣고 약불로 한 시간 정도 푹 끓여준다. 이때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한 번씩 꼭 저어줘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30분만이라도)  마지막으로 파슬리와 (매운맛을 좋아한다면) 페페론치노나 청양고추를 넣고 조금 더 끓이는데 이때쯤 다른 냄비에 굵은소금 한 숟갈을 넣고 끓는 물에 파스타면을 8분 정도 삶는다. 이제 불을 끄고 소스에 적당히 소금, 후추 간을 한 후 파스타면 위에 먹고 싶은 만큼 부어서 먹으면 된다.


이렇게 한 냄비 끓인 소스는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해뒀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 통씩 꺼내어 면만 후다닥 삶아서 간단히 먹을 수 있다. 냉동실 한 칸을 가득 채운 소스통들을 볼 때면 비상시를 대비해 식량을 잔뜩 비축해 놓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사실 볼로네즈 파스타는 독일의 어떤 음식점에 가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저렴한 파스타 종류 중 하나이다. 하지만 밖에서 먹을 때면 접시 위에 한가득 쌓여있는 파스타면 위에 정작 볼로네즈 소스는 한수저만큼의 작은 양이 살포시 올려져 있다. 더군다나 전형적인 한국인 입맛인 나에게는 매운 고추와 알싸한 마늘향으로 깊은 풍미를 더한 제이미의 파스타가 어느 레스토랑보다 맛있는 것이다.

흔히 집밥이라고 하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쌀밥과 얼큰 한국물이 담겨있는 뚝배기 그리고 신선한 재료로 만든 갖가지 밑반찬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정작 머나먼 타국에서 매번 정갈하게 차려진 한 끼 식사를 먹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속을 든든하게 데워주는 따듯한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차오를 즈음 이 볼로네즈 파스타를 포크에 돌돌 말아 한 입 먹으면 어느새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다.

아,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도는 게 아무래도 오늘 저녁엔 냉동해놓은 볼로네즈 소스를 꺼내 파스타를 해 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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