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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gjoon Jan 29. 2019

영화 ‘극한직업’, 어떠세요?

스포일러 없는 영화 이야기



 다들 이런 경험 있으실 겁니다. '시간 되면 한 번 볼까?'싶었던 영화가 있습니다. 개봉일이 어느 정도 지나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죠. 심지어 오랜만에 본 친구들까지 입을 모아 그 영화 칭찬을 해댑니다. 서서히 영화에 대한 실체 없는 기대감이 부풀죠. 그렇게 기대감이 터지기 직전까지 팽팽히 커졌을 때 안달이 난 채로 영화관에 들어섭니다. 팝콘도 콜라도 없이요. 그렇게 재밌다는 이 영화,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어서요. 불이 꺼지고, 익숙한 캐릭터들이 화재 시 대피 요령을 알려줍니다. 관심도 없는 여러 배급사들의 로고가 휘리릭 지나가고 드디어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됩니다.  기대 이상입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확실히 잡아주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영화의 제목이 등장하는 타이밍까지 완벽한 이상적인 오프닝입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아주 사소한 점이 거슬립니다. 비중 있는 조연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야아악간 어색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본 영화였다면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요. 풍선처럼 부푼 기대감은 허무하게도 한 순간에 펑 터지고, 남은 러닝타임 내내 터진 풍선이 이리저리 휘날리는 것처럼 짜증이 납니다. 과한 기대가 낳은 결과죠.


 '극한직업'이 훌륭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입소문을 듣고 엄청나게 기대하고 본 영화였는데도 엄청나게 재밌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인데도 딱히 생각나는 단점이 없습니다. 분명히 단점은 꽤 있을 텐데, 2시간 내내 웃느라 바빠 지금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코미디 깎는 장인 이병헌 감독이 지치지도 않고 내놓은 신작, '극한직업'을 봐야 하는 이유를 최대한 스포 없이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드디어 돌아온 류승룡, 그리고 진선규



 배우 류승룡이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 뭘까요? '고지전', '최종병기 활'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수컷 그 자체의 모습 역시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아내의 모든 것'이 정답이겠죠. 이 영화, 다 잊어도 류승룡이 한겨울에 난닝구 차림으로 우유통을 메며 페로몬 뿜는 장면, 현란한 핑거 발레 기술로 젖소 콧김 뿜게 하는 장면은 잊기 힘듭니다. 누구보다도 진중한 얼굴에 묵직한 톤으로 침착하게 내뱉는 뻘소리. 이처럼 현기증 나는 매력으로 마니아들에게 인정받는 배우에서 국민 배우로 발돋움한 그는 '7번 방의 선물'로 연타석 홈런을 날립니다('광해'는 이병헌이니까요). 억지 설정에 뻔한 플롯인데도 이 영화가 천만 대열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오롯이 그의 연기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어서 '명량'의 구루지마까지. 창창할 것 같던 그의 필모그래피에 먹구름이 떼로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도리화가', '염력', '7년의 밤'…. 혹시라도 이 영화들을 보시지 않으셨다면,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도리화가는 수지 화보 영상이라도 남지, 나머지 둘은 좀… 그렇습니다. 아무튼 류승룡은 믿고 보는 배우에서 믿고 거르는 배우로 작년 초 비트코인마냥 떡락을 거듭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류승룡과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이병헌이 만나 홈런을 쳤습니다. 능글맞고, 찰지고, 안쓰럽고, 쓸데없이 시크하고 아주 그냥 다 합니다. 그동안의 한을 푸는 듯 치는 대사 하나하나 찰떡같이 소화해냅니다. 그동안 관객들이 기다려왔던 황제의 귀환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아마 류승룡 씨도 각본을 받아 들고 '이거다!'싶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폭주하는 류승룡의 곁에서 진선규, 이하늬, 이동휘, 공명(임팩트 순입니다)이 함께 미쳐 날뜁니다. 다들 손에 손잡고 비속어 학원이라도 다녔는지 내뱉는 욕 한마디 한마디가 찰지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범죄도시'에서의 임팩트나 너무 강해서 진선규 씨가 코미디 영화에 어울릴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 초반에는 약간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걱정, 20분 지나면 싹 사라집니다. 초반의 어색함이 의도된 것인가 싶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웃깁니다. 다음 작품이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사바하'라고 알고 있는데, 또다시 새로운 모습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깔끔하고 순수한 코미디



 영화가 그냥 웃깁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엔딩까지 주구장창 웃겨댑니다. 이병헌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개그가 강강약중강약중강약, 끝도 없이 날아옵니다. 심지어 명중률도 높아요. 노렸다 싶은 장면에서는 무조건 영화관 전체가 터지고, 지나가는 자잘한 대사에서도 쉬지 않고 터져댑니다. 아마 영화관 평균 데시벨을 측정하면 역대 한국 영화 중에 가장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어디 얼마나 웃기나 두고 보자'라고 생각하며 관람했을 텐데 사방에서 깔깔대는 소리에 손뼉 치는 소리에 난리도 아닙니다. 그렇게 감동 코드도 신파도 없이, 마지막 웃음이 가시기도 전에 영화를 끝내버립니다. 


 그래도 명색이 마약 범죄 영환데, 진지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사투 끝에 조직 보스를 체포하는 장면이라던가, 혹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상처를 치료받는 장면이라던가요. 그때도 이 미친 영화에 예외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개그를 꽉꽉 쑤셔 넣습니다. 억지스럽지도 않게요. 그리고 쌓여온 갈등이 폭발하면서 해소되는 과정도 뭐라 해야 할까요, 참 뻔뻔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툭 던진 느낌도 들어요. 근데 이런 억지스러움을 액션과 개그로 감쪽같이 덮어버립니다. 참 재주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참아야 할 것 같네요.


 이처럼 순수하게 웃기기만 하는 코미디, 저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작년에 마니아들 사이에서 흥했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뽑을 수 있겠네요. 그래도 그 영화는 초중반까지는 조악함과 괴이함에 실소만 터지다가 반전이 밝혀지면서 크레셴도로 펑펑 터지는 구조인데, 극한직업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너무나도 반가운 영화입니다. 뚝심 있게 잘 밀고 나가다 막판에 고꾸라지는 영화가 대부분이거든요. '부산행'에서 공유가 갑자기 샤랄라한 배경에서 눈물 한줄기 또르륵 흘릴 때 대부분 감동받기보다는 "엥?" 했듯이요. 감동 코드도, 신파극도, 정치색도 싹 배제한 순수한 코미디. 하도 웃어제껴서 온 몸의 독소가 싹 빠져나간 듯이 상쾌한 영화였습니다. 


사실 죄다 웃기진 않습니다



 고백하자면 그렇습니다. 세상 뻘쭘한 상황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노리고 친 개그인데 아무도 웃질 않는 상황요. 온갖 별종 찌질이들이 모여서 슈퍼맨이 약한 악당 때리는 거 구경하는 영화, '저스티스 리그' 혹시 보셨나요? 에즈라 밀러, 그러니까 플래시가 한마디 할 때마다 관객들은 마른세수를 하며 탄식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 영화에도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악당들이 나누는 만담이 생각만큼 웃기지는 않더라구요. 근데 이런 어색함이 느껴질 때쯤 바로 다음 유효타가 날아옵니다. 그래서 사실 단점이라고 적어놓긴 했지만 무시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편안히 앉아서 맘껏 웃으시면 됩니다.




 이토록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이 영화, 당장 영화관으로 달려가서 보셔도 정말 즐거우실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최고로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나중에 VOD가 나오면 친한 친구들끼리 자취방에 모여서 빔 프로젝터로 보세요. 관객들과 함께 깔깔대며 보는 것도 충분히 재밌었지만, 옆에 앉은 친구 어깨를 찰싹찰싹 때리며, 정신없이 웃어대느라 방바닥에서 굴러다니면서 봤다면 얼마나 더 즐거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장 보시고 싶으시다면 큰 상영관에 가서 많은 관객들과 함께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옆에서 크게 웃으면 왠지 모르게 더 웃기고 재밌는 게 코미디니까요!


tjli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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