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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Nov 17. 2020

비트코인의 근본적인 아이러니

[Bubble or Revolution?]


IT 를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암호화폐 & 블록체인 입문서. 블록체인이 "버블인가 혁명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보기에) 가장 균형잡힌 대답을 제시한다. 



암호화폐의 이상은 교환비용이 없는 탈집중화된 거래 시스템이다.



저자들은 암호화폐를 설명하기 위해 Rai stone 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예를 든다 (p.19). 마이크로네시아에 있는 Yap이라는 섬에서는 사람 키보다 큰 stone ring이 화폐의 역할을 했다. 돌이 너무 크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 돌을 거래단사자에게 직접 건네지 않았다. 대신, 거래가 이루어지면 돌의 소유권은 마을 주민들의 머릿속에서 바뀌었다. "대장간 집 첫째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마을 동쪽에 있는 돌을 넘겼다더라" 이런 식으로. 심지어 어떤 돌은 그 돌을 운반하던 배가 좌초되어 바닷속에 잠겨버렸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바닷속에 잠겨 있는 돌"의 소유권을 계속 기억해나갔다.


암호화폐는 실체성tangibility 와 중앙집권성centralization의 측면에서 Rai stone과 닮았다. 우리는 가치교환을 주로 "현금" 혹은 "신용카드"로 해결한다. 신용카드는 비실체적intangible하지만 중앙집중적centralized이다. 거래를 주관하는 신용카드회사가 없이는 신용이 거래될 수 없고, 따라서 카드회사가 많은 수수료를 가져갈 수 있다. 현금은 집중배제적decentralized이지만 실체적tangible이다. 실체성이 있는 현금의 교환에는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든다. 암호화폐는 (Rai Stone과 마찬가지로) 신용카드의 비실체성과 현금의 집중배제성을 결합한 가치저장장치이다. 암호화폐가 일반화된 세상에서는 교환비용이 거의 없이, 또 정부나 거대기업의 간섭 없이 분산화된 시스템을 이용해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암호화폐를 창시한 사람들의 이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에너지소비는 심각한 문제이다.


2020년 비트코인 (또는 다른 암호화폐들)의 상황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꿈꾸었던 이상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느린 transaction speed, 고정된 통화총량등의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트코인의 과도한 에너지 소비이다. 비트코인의 proof-of-work 시스템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아주 높은 수준의 computing difficulty를 요구하는데 (p.24), 이는 곧바로 computing에 드는 에너지의 소비로 이어진다.


2020년 현재 비트코인 채굴에 드는 에너지는 국가로 치면 세계35위에 해당하고, 스웨덴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기술혁신으로 인해 에너지생산비용이 낮아지거나 단위 에너지당 computing 속도가 증가한다고 해도, 비트코인 채굴을 위한 에너지 소비는 그에 맞추어서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bitcoin difficulty도 이에 맞추어서 조정될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bitcoin의 가치의 증가율이 GDP증가율을 앞지른다면, bitcoin에 쓰이는 에너지가 전 세계 에너지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난다.


만약 지구의 에너지가 100% 재생에너지라면, 최소한 환경오염에 의한 외부효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치가 더 높아진다면, 채굴업자들은 한계비용이 높은 에너지를 계속 찾아 쓰게 되고 결국 석탄에너지의 비중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Decentralization이다.


Blockchain은 혁신적인 기술이지만, decentralization에 내재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철저하게 탈중앙화된 사회에서 신용이 거래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할 지라도, authority의 존재가 없다면 coordination을 달성하기 어렵다 (p.168). 또 한편으로는, 권력이 완전히 배제된 탈집중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활성화되는 범죄조직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디지털상거래 플랫폼 OpenBazaar에서는 마약거래와 hitman 고용이 가능하다 (p.88). 실제로 아직까지 "성공적"이라고 여겨지는 블록체인기술의 응용은 대부분 private blockchain에서 이루어졌다 (p.104).


문제를 더 근본적인 지점에서 바라보자. 모든 contract은 결국 incomplete할 수밖에 없다. authority의 존재는 계약의 incompleteness를 해결해주는 상위기관이 있다는 것으로 정당화된다. 블록체인 같은 기술은 계약을 complete하게 만드는 것으로 authority를 불필요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진보한 기술로 계약을 complete하게 만드는 것, 이로써 권력의 개입을 줄이는 것. 이는 market design community의 목표, 그리고 아마도 (아직 읽진 않았지만) <Radical Market> 에서 Glen Weyl의 핵심 메세지와 비슷할 것이다. 이 이상이 이루어질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의 가치는 점점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특히 비트코인)이 앞으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암호화폐는 창시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거의 정반대의 길을 거치게 될 것이다. "Thus, the ultimate irony of crypto, and perhaps the central theme of this book, is that crypto is succeeding by doing exactly the opposite of what it was originally intended for." (p.172-173)


2020년 현재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여겨진다. 국가와 거대기업에서 자유로운 가치교환의 역할을 꿈꾸었던 암호화폐는,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으며 자산으로 거래된다. 냉철하게 말해서, 현재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안전한 가치의 저장"에서 비롯된다. (사실 안전하게 가치를 저장하기에 비트코인의 통화총량 고정등의 여러 좋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비트코인 옹호론자들은 "암호화폐가 창조할 혁신적 미래"를 강조하지만, 내가 보기에 암호화폐는 철저하게 기존 금융질서 안에서 "또 하나의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여러 부작용 (범죄조직, 에너지소비) 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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