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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un 02. 2020

남의 도움 받는 것을 좋아해요.

번외- 칠레가는 길에서

나는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아주 싫어하지만, 도움을 받는 것은 좋아한다. 

조그만 동양 여자애가 자기 상반신보다 큰 배낭을 앞 뒤로 메고 있으면 다들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특히 혼자 끙끙대며 짐을 옮기거나,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하고 있으면 그 모습이 몹시나 불안해 보이는 것이다.


어제도 이 곳 오소르노로 오기 위해 8시 30분에 산티아고에서 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나는 이 도시의 버스터미널이 2개인 줄 알았지 3개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티켓 산 곳 근처 45번 버스 플랫폼에서 기다리다가 뭔가 찜찜해서 바로 옆에 서 있던 예쁜 두 자매에게 이 곳이 맞느냐고 물어봤는데 이럴수가. 4블럭이나 떨어진 다른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티켓을 사버린 것이다. 

남은 시간은 25분. 이 때는 그렇게 먼 곳인지 모르고 아하 다른 곳이구나 하며 여유부리고 있었는데 이 두 자매는 나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같이 가줄까?' 라고 물어봐 준다. 이들이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할 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럼 나야 고맙지!' 하고 만다. 

나는 사실 누군가의 호의를 굳이 거절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렇게 두 자매는 20분 가량을 나와 함께 뛰어주었다. 혼자서는 절대 못 찾았을 길이었으며 심지어는 언니로 보이는 소녀가 앞에 메는 내 배낭을 자신이 들쳐 메고 뛰었다. 나라면 그렇게 도와줄 수 있을까 싶었다. 버스 바로 앞까지 같이 가서 확인해 주고 배낭도 잘 챙기라며 신신당부했다. 어리버리해 보이는 내가 걱정이 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여정의 끝은 역시 정이 가득 담긴 포옹과 뿌듯함이 베어나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들이 좋아서 도움 받는 걸 참 좋아한다. 나에게 도움을 주고 돌아가는 이들의 미션 성공에 대한 기쁨과, 내가 이 어린애 하나 살려줬다는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진 그 뿌듯함이 가득한 미소. 나는 그 미소가 참 좋다. 마치 아직 정의는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자매는 아마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자신들이 오늘 어떤 대단한 일을 했는지를 그 뿌듯한 미소를 보이며 침 튀도록 이야기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방문한 버스 터미널에서 또 나같은 어벙벙한 여행자를 보면 자신만 믿으라며 그 때의 나를 상기시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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