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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Oct 30. 2020

걱정 마세요. 로사맘이 있잖아요.


'로사 씨~지 메주고리예에 있어요? 우리 좀 있으면 메주고리예 순례 갈 것 같아요~'

어김없이 <순례자의 흔한 일상=별 다른 일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에 엄마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끔 한국순례팀들이 들어오긴 하는데 아는 분이 들어온다니 반가우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엄마는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시다.

"가만있어보자. 우리가 가져온 재료가 뭐뭐 남았더라~당면 좀 남았고, 간장도 이만큼... 또 장 봐 둔 건 뭐가 있었지? 어휴... 마트 좀 다녀와야겠다. 근대랑 쪽파 좀 있으면 미사 끝나고 오는 길에 사 오자~"



메주고리예 마트


엄만 늘 그러셨다. 집에 손님이 오시면 따뜻한 차 한 잔에 맛있는 빵이랑 과일을 넘치도록 내오셨고, 가끔 고장 난 물건 고치러 수리기사님들이 오실 때는 시원한 피로회복제를 수고하셨다며 드렸다. 특별한 날 집에 잔치음식을 하는 날이면 경비실 아저씨께 전도 가져다 드리고, 어린이 미사를 갈 때면 주머니에 사탕을 가득 넣어 만나는 어린 꼬마들에게 하나씩 주곤 하셨다. 그런데 한국도 아닌 메주고리예에 아는 분들이 오신다니 가만히 계실 엄마가 아니다.

드디어 D-day. 엄마는 지인분들을 우리 숙소로 초대했다. 밥 한 그릇에 아껴두었던 메밀국수, 메주고리예표 김치, 몇몇 반찬거리로 한 상 가득 차렸다.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 줄곧 유럽 음식만 드시고 오신 터라 오랜만에 한식을 맛 보신 지인분들의 반응은 어마어마했다.


아 침 고인다

"어머나~ 세상에 너무 맛있어요!"
"어휴, 나 이거 양념 장 좀 싸가면 안 될까?"
"아니 여기서 김치도 담갔어요?"
"이게 웬일이래.. 세상에!"

로사맘 : "맘껏 드셔~밥 많이 해 놨어요~"


갑자기 한인민박(?)이 돼버린 우리 숙소는 한 동안 떠들썩했다. 지인분들은 고맙다며 한국으로 가시기 전 남은 라면과 과자를 주고 가셨다. 덕분에 한인마트며 한식당 한 군데 없는 메주고리예에서 버틸 수 있는 식량이 확보됐다.




엄마의 세례명(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은 로사.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함께 순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엄마는 로사 맘(rosa+mom)이 되었다.

어딜 가나 정과 사랑 넘치는 로사맘의 활약은 그야말로 메주고리예에서 정점을 찍었다.


정수기 나눔 - 우연히 혼자 순례 오신 분들을 만났다. 유난히 석회 물인 메주고리예에서는 정수기 없이는 그냥 물을 못 마신다. 걱정되는 맘에 엄마는 정수기를 사서 나눠주셨다.

비상약과 슬리퍼  - 한 번은 여행사로 오신 아주머니가 계셨다. 산에 오르다가 발을 다치셨다. 크게 부어 올라 운동화도 못 신고 비행기 타는 것조차 걱정스러운 상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엄마는 신고 계신 슬리퍼를 벗어 주셨고, 가져온 약을 챙겨 보내셨다.

닭백숙과 김치 - 혼자 순례 온 청년이 맘에 걸려 닭 한 마리 사다가 푹 고아서 가져다줬다. 이 뿐이랴 일회용 용기를 사다가 닭을 맛있게 양념해서 바로 먹을 수 있게 포장해서 순례 중인 몇몇 한국분들께 나눴다.

홍삼사탕 - 기차며 버스, 옆자리에 누가 탔다 싶으면 주머니에 사탕 들고 다니다가 나눠 주신다. 유럽 사람들이 홍삼 사탕 받으면 생각보다 많이 좋아한다.

청소 아주머니께 드려요 - 주방에서 애쓰는 아주머니께 무릎에 파스 붙이라고 드리고, 숙소를 떠날 땐 작은 메모와 함께 한국 라면이며 믹스커피를 선물로 주신다.(유럽 분들이 엄청 좋아하신다.)


귀하디 귀한 한식. 귀하니까 나눈다는 로사맘


"아유 엄마, 우리 아직 순례 한참 남았는데 괜찮겠어요?"
"어유 괜찮아 다 살게 마련이야."
"참, 엄마도."
"내가 두 개 가졌는데 누가 하나 달라면 한 개 주면 되지."
"만약에 한 개 있으면?"
"뭐 그러면 한 개 주면 되지."
"엄마가 아끼는 건데도? 예쁜 컵인데도?"

(컵을 좋아하신다)
"... 그래도 필요하다면 줘야지~깔깔깔깔"


'맞다. 엄마는 주는 사람이었지. 퍼 주는 사람. 정도 사랑도 웃음도 넘치는. 그래 맞아. 엄마 때문에 우리가 살았지....'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버지로 인해 우리 집 경제상황은 늘 위기였다. 불안함에 어린 나는 잔병치레로 자주 아팠고, 동생은 너무 어렸다. 엄마도 그렇게 건강하신 편은 아니었다. 엄마가 홀로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어린 내 눈에도 매우 커 보였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웃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전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지만 엄마는 극한의 상황에서도(아버지의 술주정으로 도망칠 때처럼)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빛을 발했다. 말할 수 없이 무섭고 두려운 밤늦은 시간. 갈 곳 없이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한없이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슬퍼질 때 엄마는 늘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 아버지 미워하지 말자. 미워하면 안 돼. 아버지잖니. 불쌍한 분이야."

엄마 마음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엄마 말씀만으로 우리 마음을 달래기는 힘들었다. 그러기엔 너무 심각했기에. 그런데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 꼭 잡은 손,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어릴 때부터 잘 때 늘 동화책을 읽어주셨다)를 해주시며 웃으면 우리는 신기하게도 한 순간에 안정을 되찾곤 했다. 아버지가 밉지 않을 만큼.

덕분에 도움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었던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는 심각하게 우울하거나 슬픈 날이 많지 않았다. 엄마가 웃으면 우리도 따라 웃었고, 한번 웃으면 어느새 금세 번지는 웃음 특유의 성질 덕분에 우리는 늘 웃었다.




"아유, 로사 씨~웃음소리 들으니까 이제야 실감 나네! 깔깔깔깔" 

순례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엄마 지인분들과 안부인사차 통화를 하실 때면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이었다. 엄마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으셨다고!


‘엄마’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유머러스함’, ‘호탕한 웃음’. 우리 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지인분들이 가시고 셋이서 주방을 정리했다.

"엄마, 우리도 덕분에 맛있는 거 먹었네 ㅎㅎㅎ"
"그르게 말이다~참 신기하다~여기서 이렇게 식사대접을 다하고 깔깔깔깔"
"나는 우리 집이 한식당인 줄~"
ㅋㅋㅋ ㅎㅎㅎ


엄마가 계셔서, 셋이 함께여서 할 수 있었다. 순례도. 그 동안 산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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