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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Oct 30. 2020

나에겐 10살 어린 동생이 있다


야고보 성당을 나와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맛있는 빵집이 있다. 저녁 미사를 마치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허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주 들른다.

피자 1조각. 3마르크 (=1.5유로, 약 2천 원)
식사용 빵 1 덩어리. 1마르크 (=0.4센트, 약 600원)

즐겨 먹는 메뉴다. 특히 피자에 케첩을 막 뿌려 먹으면 최고다.

줄 서서 먹는 메주고리예 빵집


"이거 진짜 맛있지?"
"응~"
"한국 가면 생각날 것 같은데..."
"나도..."

동생과 나란히 한 조각씩 오물거리며 걸었다.




루칠라는 평소 말수가 적다.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타입. 마음은 여리지만 강단이 있고, 말 보단 행동파다.

하루는 지인분들과 식당에 갔다.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담당 웨이터가 어느 자리에 앉겠냐고 물었다. 이야기 나누기 좋고, 다 같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로 안내를 부탁했다. 그런데 저~쪽에 있던 작은 테이블 두 개를 가리키며 따로 앉으라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면서 웅성웅성 논의를 하는데 갑자기 웨이터가 바쁜데 빨리 결정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매우 불친절하게 대꾸했다. 화가 났다. 순간 무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속사포 영어가 들렸다. 루칠라였다.

(해석하자면 대충 이런 얘기)
"당신이 무슨 말 하는지 알아요. 그런데 우리는 같이 앉고 싶어서 지금 어떻게 할지 얘기 나누고 있잖아요!! 됐어요. 우리 나갈게요!"

한 마디로 노 땡큐!

당황한 웨이터는 루칠라의 노 땡큐 한마디에 태도가 달라졌다. 처음 가리킨 곳과 반대 방향에 있는 널찍한 자리를 보여주며 안내를 하는 게 아닌가. 처음부터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는 얘기. 화가 났지만 지인분들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를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안내한 자리로 앉았다.

화가 나거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루칠라의 영어 실력은 레벨 업된다. 엄마와 나는 옆에 있다가 깜짝깜짝 놀란다. (아마도 루칠라 없었으면 순례 다니면서 꽤나 곤혹을 치렀을지도 모른다.)

"언니 영어 할 때 좀 당당하게 해 봐. 우물쭈물하니까 아까처럼 웨이터가 그러지."
"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걸 어째. 뭐... 노력은 해볼게. 영어가 참 어렵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아까 꽤나 속상했는지 루칠라가 한 소리 늘어놓았다. 요즘 들어 잔소리가 는다. 어릴 때 내가 잔소리를 많이 했나. 똑 부러지게 야무지게 옳은 말만 딱 꼬집어 말하니 반박도 못하겠고 참. 그래도 내심 마음은 웃고 있었다. 할 말 딱하고 밝고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네.




루칠라와 나는 10살 차이가 난다. 동생이 태어난 순간 그 행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나는 학교에서도 동생 얘기, 친구들하고도 동생 얘기뿐이었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같이 동생 키웠다는 말이 나올 정도 ㅎㅎ) 

루칠라는 손재주가 좋다. 언어 감각도 좋다. 끼도 많다. 날개가 있다면 커다랗고 고운 빛깔의(팅커벨 같은) 두 날개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것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루칠라 그림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 집이 참 따뜻해진다
루칠라가 그려준 실물보다 예쁜 모니카(나). 생일선물로 그림을 주곤 한다.


나는 동생이 태어나고 줄곧 엄마 다음으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뭐든지 도와주고,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언니가 되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동생이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무작정 <어른>으로 대했다. 동생을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어른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바뀐 것이다. 동생이 어떤 줄도 모르고.

아버지의 술주정이 유난히 심각한 날엔 나는 내복 차림의 동생을 얼른 데리고 나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가려줬다. 험악하고 포악한 상황에서 충격받지 않게,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길 바라는 어린 마음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눈과 귀가 가려 들리지 않았고 보이지 않아 오히려 그 침묵과도 같은 시간들이 동생에겐 두려움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항했다. 막아섰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맞서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동생은 반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마냥 힘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부당함에 대항 한 번 못해보고 숨을 수밖에 없는 답답함과 화가 쌓였다. 그렇게 소극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동생과 함께 우리는 아버지의 부재 후 오랫동안 일상을 벗어나 있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상처를 되짚었다. 우리 자신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용감하게.


헤지고 멍들고 딱지가 져서 건들수록 도지고 눈물 나게 아픈 상처들. 하나씩 돌보는 데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눈이 퉁퉁 부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밤새 울고 또 울었다. 엄마는 동생에게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를 대신해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셨다.

"지애야(루칠라) 엄마가 미안해. 아빠 엄마가 다 미안해. 너를 아프게 해서, 너를 너무 힘들게 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 용서해주겠니. 아빠도 우리도..."

무조건 떠나고 싶다는 동생의 말 한마디에 시작된 우리의 순례 여정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최고의 치유제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진심을 다해 안아 주었다. 눈물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따뜻한 사랑이 서로에게 흘러 들어갔다.


작은 발걸음으로 수십, 수백킬로의 순례길을 걷고 또 걸었던 시간. 용서와 사랑으로 점점 채워져갔다.


나에겐 언제나 사랑스러운 열살 어린 내동생


피자 한 조각을 다 먹을 때쯤 숙소에 도착했다. 관절염으로 고생 중이신 엄마는 지팡이 삼아 짚고 온 장우산을 현관 입구에 놓셨다.

"아유 배고프다. 오늘 뭐 먹을까?"
"아침에 먹던 거 좀 남았나?"
"밥 남았으면 그냥 라면 끓여서 먹자~"

어휴. 오늘도 순례 잘 마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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