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Oct 29. 2016

홍콩 표현기_#4.

홍콩의 밤(2)_심포니 오브 라이트.

  벌써 일 년 남짓 지나간 홍콩 여행. 그럼에도 홍콩이 그리운 이유는 침사추이의 네온사인들과 음식들. 그리고 심포니 오브 라이트 때문이다. 특히나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기대하지 않았던 탓에 더욱 깊이 새겨진 추억이었다.  


  사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할 때부터 스멀스멀 올라온 ‘청개구리식’ 내 심보에서라도 시들먹한 홍콩 일정이었다. 하물며 음료수 한 잔에 한 시간을 투자한 직후라면 더더욱. 여덟 시부터 시작된다던 시작은 이미 오분 전이었다. 그럼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왠지 오늘이 아니면 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다지 기대하던 일정이 아니라. 흐릴 내일 날씨 예보도 한몫하고. 절대로 허유산에 마음이 풀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침사추이를 헤매던 어딘가에서의 필름 사진.


  왔던 길을 힘겹게 더듬어 여덟 시 십 분을 가리키고 있는 침사추이 시계탑이 찾았다. 애초에 꼬인 루트라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마주한 시계탑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윽고 밤하늘과 넘실거리는 캔버스에 쏟아지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의 전경. 건물에서 흘러내리는 빛들이 바다에 별쳐럼 박히는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남은 십 분이 너무 짧았다. 시계탑을 끼고 약간 왼쪽으로 돌아 인적이 드문 방파제 비슷한 곳에 걸터앉았다. 하염없이 잔잔히 부숴 지는 불빛들을 헤아렸다.  

홍콩다운 밤.


  RF 방식으로 카메라를 바꾸면서 더 이상은 야간 촬영에 끌리지 않았다. 자연스레 삼각대는 방에 놓고 다녔고, 셔터 릴리즈도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후회하는 오늘이었다. 눈에만 담아오기는 아까운 광경. 아쉬운 마음에 디지털로 몇 장, 필름으로도 몇 장 박아 넣었지만 성에 차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사람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시곗바늘 위에서 곡예를 넘음에도 다음 발을 어떻게 내딛을지 계획하고 예상한다. 정각에 집을 나서 같은 시간에 도착하는 출근 버스에 몸을 맡기려 하는 일마저도 내 뜻대로 되지 않건만. 하물며 처음 와보는 타국의 정취에서 나름의 계획이란 의미 없는 다짐이었다. 시간은 엉망이었고 계획한 길은 허물어졌으니. 기대하지 못했던 풍경에 마음이 풀리고 준비하지 않은 가방이 무거워졌다. 

유람선에서 아쉽게 한 장.


  건물의 빛들이 그친 이후에도 멍하니 바닷가에 앉아 있다 유람선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곱절은 어두워져 검푸른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의 움직임에 하염없이 눈길을 두며 내일을 기약했다.  

아쉬움을 가지고 유람선에 올라.


  단 한 번도 계획대로 움직이지 못했던 오늘의 홍콩은 만족스럽게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지독하게 길을 헤맨 일정이었지만. 심지어 계획에도 없이 다음 날 심포니 오브 라이트에 다시 찾아올 것을 예상 못한 오늘이지만. 그런 오늘이라서, 그런 여행이라서 좋았다.


아쉽게 필름, 아쉽게 야경.


매거진의 이전글 홍콩 표현기 _#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