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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an 06. 2019

홍콩 예찬

홍콩을 좋아한다면 공감해주길 바라는  글

   우연히 틀어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국영이 나오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개인적으로 양조위나 주성치 같은 홍콩 배우를 훨씬 좋아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가졌던 사내에 대한 동경은 국가나 성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만우절에 우리 곁을 떠나 더더욱 영화 같은 존재로 각인되기도 했고. 어쩌면 배우 한 개인으로써가 아니라 그 당시의 홍콩이 처했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20세기 홍콩 반환에 얽혔던 사연들과 당시 홍콩의 분위기, 그리고 장국영이 가진 그 무엇에 대한 연관성은 해당 예능 프로에서도 언급해 주었다. 그래서 보는 내내 마음이 더 먹먹해졌다.) 


침사추이. 홍콩의 상징들.


   사실 주변에 홍콩 영화라던가 그 당시 배우들을 좋아한단 말을 할 기회가 생기면 대부분 매우 의외라는 듯이 반응한다. 홍콩 영화를 좋아할 나이는 아니란 이유가 가장 큰데, 이젠 마냥 젊은 나이만은 아니라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조금씩 민망함이 피어오른다. 궁색한 대처는 내가 ‘홍콩 영화의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는 말로 웃어넘기는 식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부모님, 사촌 형들과 홍콩 영화를 섭렵했었으니 정말로 ‘세대’라 부를 수 있는 마지막의 마지막일 수 있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  


   위 이야기는 보통 ‘나에게 최고의 영화를 몇 개 꼽으라고 한다면 늘 주성치의 서유기: 선리기연, 월광보합 시리즈는 들어간다’는 말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데, 그럴 때 주위 반응은 대부분 세 가지로 나뉜다.


1. 홍콩 영화까지는 이해하더라도 왜 하필…? (홍콩 영화를 봐온 세대들의 일반적인 반응. 약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우도 간혹 있다.)  
2. 그게 뭐예요? 날아라 슈퍼보드는 아는데. (보통 나보다 어리거나 동년배들의 기계적인 반응에서 찾을 수 있다. 날아라 슈퍼보드를 안다는 것에서부터 아주 어린 친구들과는 이런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 오, 이 친구 뭘 좀 아는데. (홍콩 영화를 봐온 세대 중 극히 일부에서 주로 나오는 반응인데, 보통 저 말을 시작으로 상호 간에 묘한 유대감이 싹트곤 한다.)  


   사실 홍콩 영화를 좋아한다면, 홍콩 그 자체에 대한 동경이나 열망 같은 것들도 곧잘 생기곤 한다. 무협 영화만 아니라면 홍콩 영화의 대부분에서 화려하지만 어딘가 묘한 구석의 홍콩 거리들을 마주한다. 그 골목마다 슬픈 눈을 가진 배우들이 누비고, 왕조위 감독 같은 이들이 감각적이고 원색적인 프레임과 음악으로 마무리해낸다면. 홍콩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직접 여행을 떠나 홍콩보다 더 홍콩스러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일본 사람들이 문화로 소비했던 파리를 직접 여행하다 환상이 깨지고 우울증을 호소하게 된다는 ‘파리 증후군’ 같은 증상을 겪을 일도 없다. 영화 속 홍콩이 홍콩 그 자체이자, 배우들 면면이 홍콩의 화신이라 가감이 없달까. 오히려 거리와 가게 곳곳이 영화 세트처럼 쓰여 이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드 레벨 에스칼레이터라던가, 더들 스트리트 가스등 같은. 이는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홍콩 영화를 접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홍콩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깨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에 가까운 감정이다. 


홍콩보다 홍콩스러운.


   물론 홍콩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음식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동서양 문화의 교류 지점이라 다양한 음식 문화와 맛집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화권 음식, 정확히 말하면 중화권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면. 홍콩 같은 곳에서도 아쉬움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본토 음식 말고도 워낙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주린 배를 부여잡고 여행을 다녀야 할 일은 없거니와, 불행인지 다행인지 본토 음식이 입에서 너무 잘 받아주는 나 같은 이에게 홍콩은 되려 지상낙원이다. 여행에서 커피와 음식, 반주(飯酒)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는 ‘나’라면 더더욱. 


   작은 브라운관에서 시작되었던 영화 속 풍경에 대한 동경이었지만. 과거와 현재를 향유하는 풍경에 몇 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 홍콩스러운 거리와 음식은 물론, 붐비는 인파마저도 유일하게 그 도시 자체로서 품을 수 있는. ‘홍콩’이란 단어는 언제 어디에서 마주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고 무장해제되는, 첫사랑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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