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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Oct 20. 2020

그가 있는 한, 모두가 평등해지는 그날은 멀지 않았다

뉴델리, 인도

대학교 옆에는 커다란 쇼핑몰 세 개가 있었다. 십 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에 경탄을 금치 못하는 내게 그가 말을 건넸다. 세 쇼핑몰에 기반해 인도의 소비문화와 계층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박사 논문을 쓰고 있어. 기회가 된다면 세 번째 쇼핑몰의 화장실은 꼭 가봐, 궁전이 따로 없다니까. 가난한 유학생 생활을 하는 내게 뉴델리의 쇼핑몰은 사치였다. 상위 카스트가 아닌 그에게도 쇼핑몰은 다른 세상일 터였다. 하루는 그의 조언을 따라 세 번째 쇼핑몰의 화장실로 향했다. 빈곤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부러 한국의 삼선 슬리퍼를 신고 동네 마실 나온 마냥 행세했다. 과연 그곳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박사 학위의 그가 평생을 꿈꿔도, 아니 내가 평생 돈을 모아도 가질 수 없는, 내 생애 가장 호화로운 화장실이 자리 눈앞에 잡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는 낯설었다. 매번 지치도록 흥정했던 릭샤들은 우버로 중무장한 채 손님들을 태우고 있었고, 인터넷 카페에서 알음알음 찾았던 숙소들은 에어비앤비에 친절하게 등록되어 있었다. 뉴델리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지하철은 더 반짝였고, 오래된 파하르간즈 거리는 음악과 술이 있는 하우스 카즈에 중심을 내줬다. 이렇듯 무언가 변한 듯 보였지만, 사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은 변한 게 없었다. 릭샤 왈라들은 여전히 공항과 관광지 앞에서 흥정을 시도했고, 철 지난 호스텔들의 접객원들도 호객에 바빴다. 파라흐간즈는 낡았지만, 그 골목들은 아직도 여행자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십 년 전에 바라보았던 인도가 여행지로서의 인도였다면, 그가 보여준 인도는 조금 더 삶의 경유지에 가까웠다. 그와 내가 공부하는 대학교는 인도에서 가장 사회주의적 대학교였는데, 사회학의 재부흥을 목표로 하는 학교답게 학생 모두가 인도 전반의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종종 내게 자신의 서사를 들려주었다. 인도는 영국의 제국주의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그 수탈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세계 면화 수출량 4위의 대국이던 인도가 어느새 세계 최빈국 중 하나가 된 것은, 유연한 카스트 제도로 카스트 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인도가 어느새 다른 카스트를 멸시하고 차별하는 국가가 된 것은, 오랜 식민주의의 유산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지. 불평등과 차별의 낙인은 사회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절망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배우는 사회학은 결국 자신들을 핍박한 서구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그 억압의 유산으로 사회를 개혁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한 명의 달리트 학생이 실종되었다. 우파 정권인 모디 내각과 인도 인민당의 비호 아래 학교는 극우 청년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고, 학생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차별과 멸시에 항의해 수업을 보이콧했다. 수많은 학생이 학교 건물들을 막았고, 수백 명이 모여 캠퍼스와 델리 시내를 행진했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사회학의 성전인 대학에서 사회는 말살당하고, 차별에 억압당하고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피켓을 들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의 늦은 다섯 시, 우리는 총장의 퇴진을 외치며 거리를 점령했다. 가장 호화로운 화장실은 사실 필요 없었다. 그들에게, 아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평등한 대우였다.


인도는 여전히 차별과 부패로 신음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이겨낼 귀한 사람들은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가 있는 한, 그와 연대하는 이들이 있는 한, 차별이 없어지고 모두가 평등해지는 그날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아 보였다.



뒷모습, 내가 만났던 도시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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