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3인을 만나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 그 누가 말했던가. ‘한 시간을 일해도 밥 한 끼 사 먹기 어려운’ 최저임금은 둘째치고 ‘다치거나 죽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야 하는 게 우리 일터의 현실인데 말이다.
거세지는 신자유주의 파고 속 노동은 조각조각 찢겨간다. 계약직, 기간제, 파견직……. 일하는 사람의 자율성을 극대화한듯한 형태이지만 실상은 고용주의 책임을 덜어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 허울은 곧 ‘불법’ 파견직으로 분화돼 일터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점점 뾰족해지는 위험의 화살은 비수도권 지역, 특히 농촌과 여성, 이주노동자 등 노동시장의 약자를 향해 거칠게 날아든다. 제대로 된 안전장치 하나 존재하지 않는 ‘죽음’의 일터. 최저임금, 노조할 권리, 중대기업재해처벌법 등의 법과 제도도 이 쏟아지는 위험을 온전히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음성노동인권센터의 지난 10년은 바로 이 위험을 직시하고 드러내며 노동자의 곁을 만든 시간이었다. ‘노동인권’이라는 묵직한 간판 아래 임금체불을, 부당해고를,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의 상처를 안은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주는 세월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지 모를 이곳. 함께 회복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싸우는 음성노동인권센터 활동가 박윤준, 천윤미, 박성우 씨를 만났다.
상담만 하지 않습니다
중소 제조업 공장이 밀집한 충북 음성군. 9만이 조금 넘는 인구 가운데 절반이 노동자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10% 이상(약 1만 명 규모)이 외국인노동자다. 음성군은 전국 군 단위 지자체 중 외국인 주민 수가 가장 많은 지역.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보여주듯, 한국인이 취업을 기피하는 제조업 일자리 상당 부분을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음성군은 다른 군 단위 지자체에 비해 노동 관련 정책에 있어서도 눈에 띈다. 노동권리 조례(‘음성군 노동자 권리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나 노동정책 5개년 수립, 노동권리보호관 도입 등의 제도가 그것. 그리고 이 모든 정책에 앞서 오래도록 지역 노동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이들, 바로 음성노동인권센터가 있다.
2015년 3월, 전국 군 단위에서는 최초로 문을 연 음성노동인권센터는 지난 10년간 노동 상담과 법률 지원, 노동인권 교육 및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지역 고용·노동실태 조사와 연구,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한 공론화 작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음성군 노동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소책자(△안녕, 노동인권 △충북 음성군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내 이름은 이주민 – 지역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펴내며 지역사회 안팎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각종 불법파견, 노동탄압, 비윤리적 기업 운영에 맞선 투쟁도 빼놓을 수 없다. △금왕하수처리장 무단 방류 내부 고발(2016) △신세계푸드 간접고용 고발(2017) △충주택시-하나로택시 사납금제 철폐 및 노조 설립 투쟁(2018~) △음성군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업체 불법행위 내부 고발 및 직고용 쟁취(2021) △건국우유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공동행동(2024) 등 다양한 투쟁 현장에서 음성노동인권센터의 활약도 빛났다. 이처럼 센터가 걸어온 지난 10년의 역사가 오늘날 ‘군 단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노동 정책의 기반이 되어왔을 테다.
“오갈 데 없는 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고민 상담도 하고, 법률지원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모든 지역에 필요하죠. 음성의 경우, 노동자가 6만 명이 넘는데도 당시(2015년) 지역엔 공인노무사 하나 없을 정도로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없었어요. 그렇다 보니 청주노동인권센터로 관련 문의가 빗발쳤죠. 그러면서 음성에 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됐던 거 같아요. 청주센터의 제안에 음성민중연대, 이상정 (당시) 군의원, 당시 음성자치신문 고병택 기자 등이 동참하면서 음성센터가 시작됐죠.”
음성노동인권센터 박윤준 상담실장의 설명이다. 비영리 시민단체인 청주노동인권센터(대표 김인국 신부)가 조광복 노무사를 파견하는 형태로 문을 연 음성노동인권센터는 한 해 400건에 달하는 상담을 진행할 만큼 엄청난 ‘실적’을 올린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숫자다.
초반 상담 업무에 집중했던 센터 활동은 곧 노동정책 전반의 문제를 짚어내는 데까지 이른다. 지역 노동자들이 처한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현재의 노동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라는 결론에서다. ‘일하기 좋은 음성군 만들기’ 토론회, ‘음성군 노동환경 실태조사’ 등을 이어온 것도 바로 이 때문. 음성 지역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과 함께 꾸준히 마련해온 공론장은 이후 실질적인 지역사회 변화로도 이어졌다. 음성군의 노동인권 조례 제정이나 도내 최초의 노동정책 기본계획 수립, 전담부서 설치 등이 그것.
센터는 이외에도 이동권 문제나 기후위기 등의 의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이 모든 게 노동자와 같은 서민, 사회적 약자의 삶에서 반드시 고려되고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인권센터니까 노동상담만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이 외에도 지역에서의 다양한 권리 구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책 제안을 하기도 하고요. 주민 스스로 삶의 문제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에 같이 움직여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결국 우리 모두의 일이니까요.” (천윤미 차장)
세 사람이 노동인권 활동가가 되기까지
박윤준 실장은 본래 신학생이었다. 그러던 그가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현실을 접한 건 2012~13년 무렵, 서울 영등포산업선교회의 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콜트콜텍 등 당시 부당해고 농성장을 찾아 기도회를 여는 활동이었는데, 그때 그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나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곧 그 충격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강단이 아닌 노동 현장으로 그를 이끈다.
“노동운동 내지는 관련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산업선교회 분들께 그런 현장을 소개해달라고 요청드렸고 당시 몇 군데 현장을 경험해 볼 수 있었죠. 음성도 그중 한 곳이었고요. 그러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는데, 자꾸 음성 생각이 나더라고요.”
혈혈단신 내려와 센터 활동가를 넘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녹아들고 있는 박윤준 실장의 정착기다. 그게 2017년의 일이니 벌써 8년차 음성 주민인 셈.
천윤미 차장은 2021년 센터 일을 시작했다. 옥천이 고향이기도 한 그는 20대 중반 음성에서 공무원노조 일을 하며 음성지역과 연을 맺었는데, 이후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10년 넘게 활동을 쉬고 있던 차였다. 그런 그가 가정을 꾸린 곳도 음성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이야기가 음성 지역 노동단체에 전해졌던 듯싶다.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지인의 소개로 센터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민주노총 충북음성지부 국장님이 처음엔 알바 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요청을 하셨어요.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래 일하게 될 줄은 몰랐고, 처음 왔을 때 센터 사무실이 꼭 노조 사무실이나 창고 같다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활동을 해보니, 이곳이 단순히 상담만 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 단체와의 네트워크, 정책 제안, 지역사회 활동 등 여러 가지를 함께하는 공간이더라고요. 이런 활동을 통해 저 역시 노동운동, 지역활동을 더 폭넓게 이해하게 된 거 같습니다.”
센터 활동을 비롯한 노동 의제나 관련 법률을 보기 쉽게 가공해 온라인으로 전파하는 일에도 열심인 천 차장의 말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센터에 합류한 사람은 박성우 활동가. 지난해 6월부터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음성에 발을 들였다. 자신이 후원하고 있던 시민단체 ‘플랫폼씨’ 행사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음성을 알게 됐고, 이후 음성에도 방문하게 되면서 인연이 만들어졌다.
“연고도 없었고, 사실 음성이라는 지역 자체를 몰랐어요. 처음 와봤는데, 풍경도 좋고 마침 박윤준 실장님이 함께 일해보면 좋겠다는 제안도 주셔서 덜컥 오게 됐죠.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이곳에서 할 일이 많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음성센터가 발행한 ‘내 이름은 이주민’ 기획과 진행도 박성우 활동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라니, 그가 얼마나 열의를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그는 앞으로 센터가 더욱 이주노동자와 지역을 잇는 점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전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서로 소통하는 커뮤니티가 확실해요. 달리 말하면, 이 커뮤니티가 아니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실제로 법과 제도를 몰라서 당하는 피해가 정말 많거든요. 기업과 노동자가 대화할 기회도 거의 없고요. 센터가 그 접점을 계속 만들어 가야죠.”
음성 지역 노동정책 견인, 아쉬움도
단 3명의 상근 활동가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센터는 다양한 영역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거나 조직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자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 그러나 문제가 겹겹이 산처럼 쌓인 상황에서 모든 사안에 적극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아쉬움도 한켠엔 늘 존재한다. 센터 활동이 기폭제가 돼 음성군이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나름대로는 진일보한 정책을 만드는 듯하나 이 역시 구멍이 많다.
“임금체불이나 해고 문제가 여전히 우리 노동 현장의 큰 문제이긴 해요. 하지만 여기에만 주력하면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이 있어요. 불안정한 지위(비정규직)에서 유령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갈수록 그런 일자리들이 늘어나요. 50인 이상, 100인 이상 중소기업, 중견기업도 대부분 사내하청 구조를 갖고 있고요. 음성에서 문제가 됐던 사업장들이 모두 이런 구조죠. 이건 단순히 경기를 타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조의 문제예요.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중간 착취, 노동자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 차별, 인권침해 등을 계속 야기해요.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상존해 있는 문제죠. 게다가 이제 이 위험한 자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는 상황이고요.”
지난해 6월 우리를 큰 충격에 빠뜨렸던 아리셀 참사 역시 같은 배경을 가진 사회적 참사다. 박윤준 실장의 설명대로, 이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일터는 매번 참사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센터가 노동법 교육이나 상담 등을 넘어 토론회 개최, 정책 제안을 계속 이어가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악순환을 멈추려면 지역 사업장의 고용형태가 어떤지, 직업소개소를 통한 불법파견 형식은 아닌지 등을 세세하게 확인해야 해요. 그렇지만 음성군은 일자리 중심 통계만 내는 데 그치고 있죠. ‘도내 고용률 최고’, ‘경제 활동 인구 최다’ 같은 수식어는 이 같은 간접 고용의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찾기 위한 ‘생활임금 조례’ 역시 음성센터를 비롯한 지역 단체들이 주요하게 다루는 의제 중 하나. 지난해 음성 지역은 2천356명의 주민이 서명해 ‘생활임금 조례안’을 발의하며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음성군의회가 이에 제동을 걸며 추진에 난항이 예상된다. 당초 군의회가 연내 추진하기로 했던 해당 조례를 부결시킨 데 이어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고소하는 등 불필요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누군가의 행복, 우리의 행복
지역에서의 활동이 벅찬 순간도 분명 있을 터. 생활임금 조례안 부결 및 고소 사태처럼 지역 권력 앞에 무력해지는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논쟁을 사이에 두고 좁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생활인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지역이다 보니 서로 다 아는 사이잖아요. 그나마 센터 활동가들 모두 외지인이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렇지 않고요. 그렇다 보니 ‘누군가 해야 하지만 내가 나서긴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있죠. 그래서 저희 같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는 거고요.” (천윤미 차장)
그만큼 ‘영향력’이 쉽게 드러나기도 한다는 게 지역 활동의 장점이기도 하다. 박윤준 실장의 말이다.
“청주 같은 도시만 해도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다양한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음성은 작은 변화도 비교적 크게 다가올 수 있죠. 현수막 몇 개만 걸어도 금방 눈에 띄고, 사람 대여섯 명만 모여 있어도 ‘무슨 일이지?’ 하며 관심을 받기 쉽고요(웃음). 노동인권 조례 제정으로 지역 전체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요.”
지난 10년, 센터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작지만 깊은 지역사회의 관심과 후원회원들의 마음, 그리고 활동가들의 열정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 센터 운영이 근본적으로 안정되기는 어렵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니 그렇다 한들 센터처럼 공익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의 재정 형편이 기적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을 터. 자명한 어려움 앞에서도 이들이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 일로 사회 구조를 당장 뜯어고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소위 말해 ‘현타’가 올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그냥 해야지. 이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이걸 하고 싶은 저희는 그냥 하는 수밖에 없어요. 만화 ‘드래곤볼’ 마지막화 중 주인공 손오공이 적들과의 전투에서 ‘내가 아니면 누가 하리’ 이런 말을 하거든요. 그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거죠.” (박성우 활동가)
“그냥 한다.” 우문에 현답이다.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뿐이라는 말은,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박윤준 실장의 이어지는 말은 이 일에서 더욱 기쁨을 찾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니까, 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행복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공적인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시험을 잘 보고 성적을 잘 받고 돈을 많이 버는, 그런 사적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공적인 행복을 설명하는데요. 노동인권 조례 제정이나, 아직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생활임금 조례 제정 같은 것이 우리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한 발씩 나아갈 때의 성취감이 정말 중독적이에요. 나나 동료, 우리 가족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그 성취감. 사회를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다는 감각. 요즘 말로 ‘도파민’이라고 해야할까요(웃음)? 그런 즐거움이 끝없는 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잔뜩 침울한 표정, 축 처진 어깨로 센터의 문을 두드렸던 노동자가 어느새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원동력이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치여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려운 이들에게 이를 인식시키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받쳐가는 일. 이들의 활동이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하는 까닭이다.
음성노동인권센터 2.0을 향해
센터는 새해 어떤 계획을 갖고 활동을 준비하고 있을까. 특히 올해는 박윤준 실장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며 남은 두 명의 활동가에겐 긴장의 시간이기도 하다는데, 10년을 쉼없이 달려온 만큼 센터의 다음 10년을 계획하는 해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중장기 계획을 세워 센터뿐 아니라 지역 노동 의제를 견인하는 역할의 기반을 튼튼히 다지겠다는 것.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이로쿼이 인디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일곱 세대 앞을 내다본다고 해요.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한 우리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센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제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더 멀리 보고 가야할 때입니다. 음성노동인권센터의 2.0을 만들어야죠.” (박윤준 실장)
음성이라는 지역에서 노동의 가치를 지켜온 지난 10년. 이제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계속 지켜보자. “지푸라기 같은 존재로 시작했지만, 그러나 그 지푸라기가 물에 빠진 이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던가.” 개소 10주년 기념식에서 김인국 신부가 전한 이 축사를 다시 기억해본다. 이 지푸라기가 좀 더 많은 이를 구할 수 있도록, 그 공적인 행복에 우리도 동참하는 시간을 기대해본다.
음성노동인권센터
주소 | 충북 음성군 금왕읍 무극로 184-1, 2층
후원 | 농협 351-0802-5012-33(음성노동인권센터)
문의 | 043-882-5455
월간 옥이네 93호(2025년 3월호) 글 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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