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남은 낙서들로 읽는 도시의 감성
델리의 골목을 걷다가,
저 멀리 벽에 쓰인 한 줄의 글귀에 발길이 멈췄다.
“Zindagi ek safar hai, suhana.”
(인생은 아름다운 여행이야.)
글씨는 서툴렀다.
삐뚤빼뚤하고, 중간에 철자도 하나 틀렸다.
그런데도 그 문장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마치 누군가 급하게 전하고 싶었던 진심이 거기 그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인도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벽에 쓰인 손글씨를 마주치게 됩니다.
버스 정류장 뒷편, 오래된 골목길, 학교 담벼락, 철문이 굳게 닫힌 상점 앞까지.
그 낙서들은 단순한 낙서가 아닙니다.
어떤 건 사랑 고백이고, 어떤 건 정치적 주장, 어떤 건 종교적 구절이죠.
한 마디로, 인도의 거리 낙서는 사회와 개인이 맞닿은 곳에서 흘러나온 감정의 잔상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흔적은 손글씨라는 형식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인도는 문자 문화가 뿌리 깊은 나라입니다.
힌디어, 벵골어, 타밀어, 우르두어… 수많은 문자가 공존하고, 그만큼 필체도 다양합니다.
공식 간판은 영어로 단정하게 인쇄되어 있지만,
사적인 마음은 여전히 손글씨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 글들은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남기고 싶을 때,
가장 직접적이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선택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정돈되지 않은 그 글씨들이 오히려 더 진실해 보였습니다.
한 번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 벽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Don't throw plastic. This is mother.”
거칠게 휘갈긴 영어였지만,
그 문장은 구호보다 더 가슴에 박혔습니다.
힌두교에서 ‘마더 갠지스’라 불리는 성스러운 강을 향한
애정과 경고가 동시에 담겨 있었죠.
그 순간 알았습니다.
손글씨는 정보가 아니라 감정을 전한다는 걸.
이 시대는 활자와 폰트의 시대입니다.
매끄럽고 예쁜 글자가 넘쳐나죠.
하지만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사람들은 손글씨가 가진 불완전함에 더 마음을 빼앗깁니다.
인도의 도시 벽을 가득 채운 낙서들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이 도시를 지나며 남긴 ‘생각의 잔향’이 전해집니다.
그건 책 속 문장보다도 더 가까운 이야기이고,
문자보다도 더 깊은 온도입니다.
델리 골목 어귀에 다시 서 봅니다.
햇빛에 바래고, 비에 씻겨
이제 겨우 윤곽만 남은 손글씨 하나.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 수도 있고,
그리움이었을 수도 있는 그 문장 앞에서 문득 멈춰섭니다.
인도인의 손글씨는 그 자체로 ‘삶의 흔적’이었습니다.
기록이기보다 표현이고,
기억이기보다 감정이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인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한 번쯤은 거리의 벽을 읽어보세요.
그곳엔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활자 대신 손글씨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