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이분법을 넘어

인도의 제3의 성, 히즈라(Hijra) 문화 체험기

by 형형색색

처음 히즈라(Hijra)라는 단어를 들은 건 델리의 작은 사원 근처에서였다.

이름도 모를 작은 축제가 한창이었고, 색색의 사리와 짙은 화장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며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 인도 친구가 말했다.

“저 사람들, 히즈라야. 인도의 제3의 성이야.”

히즈라? 제3의 성?

한국에서 성별은 남성과 여성, 딱 두 가지로만 구분된다.

그 틀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회화된다.

그런데 인도에는 수천 년 전부터 히즈라라는 ‘제3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내게 충격이자 경외였다.


히즈라는 누구인가

히즈라는 흔히 트랜스젠더나 간성(인터섹스)으로 소개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인도 사회에서 히즈라는 신분이자 정체성이며, 공동체이고, 삶의 방식이다.

이들은 종종 남성의 신체를 가졌지만 여성으로 살아가며,

법적으로도 2014년 인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제3의 성(third gender)’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사회적 낙인은 짙고, 대부분 교육과 직장에서 배제된다.

그래서 많은 히즈라 공동체는 ‘Guru–Chela(스승과 제자)’ 관계로 이루어진 전통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서로를 보호하고, 생계를 위해 특정 의식이나 공연, 또는 성적 노동을 하기도 한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한 히즈라

인도 북부, 바라나시에서 우연히 한 히즈라 공동체의 일상에 함께하게 됐다.

나를 맞이한 사람은 ‘마리까’라는 이름의 40대 중반 여성.

짙은 아이라이너와 코에 박힌 작은 금핀, 그리고 조금은 딱딱한 목소리.

“내가 태어났을 땐, 아버지가 절망했어.”

그녀는 차를 내리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우리 공동체의 어머니야.”

그녀의 방 한 켠엔 힌두 여신 바하라비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히즈라는 종종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결혼식이나 출산 때 히즈라가 와서 축복을 하면 아이가 건강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신성함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경멸과 차별, 때론 폭력 속에서도 매일 화장을 하고 사리를 입는 그녀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존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성별이라는 경계 앞에서

히즈라를 만난 후, 한국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남자다움’, ‘여자다움’이라는 말이 얼마나 작고 얕은 틀인지 새삼 느꼈다.

인도는 보수적인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성의 경계를 흐리는 존재를 문화 안에 담아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했다.

현대 인도 사회도 여전히 히즈라를 향한 편견이 크지만,

그 속에서도 히즈라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나의 시선이 바뀐 이유

어느 날 저녁, 마리까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늘 경계에 있어. 그런데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

경계에 있는 자만이 두 세상을 다 볼 수 있으니까.”

그녀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의 성별로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지만,

그 믿음 자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지워왔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히즈라는 단지 인도의 성소수자가 아니다.

그들은 인도 사회가 품은 또 하나의 정체성이자,

성별이라는 개념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히즈라 문화가 남긴 질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성별은 태어나는 걸까, 선택하는 걸까?

혹은, 그 모든 정의 자체가 낡아버린 것은 아닐까?

히즈라들은 우리에게 대답 대신 질문을 건넨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어떤 틀 속에, 혹은 틀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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