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내가 좋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광고모델 에이전시에서 인턴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에 우연히 본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것이다.
주업무는 광고와 모델 사이를 연결해 주는 일이었는데,
광고 컨셉에 어울리는 모델을 찾아 광고주에게 제안하여 제작을 돕는 회사였다.
나는 인턴이었기 때문에 팀장님들이 추천한 여러 모델들에게 오디션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돌리는 일을 담당했고, 오디션을 보러 온 이들에게 콘티를 설명해 주고 오디션 영상을 찍어주기도 했다.
내가 찍은 영상속 모델들이 실제 광고에 나오는 것을 볼 때는 왠지 뿌듯하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현장에 같이나가 광고 촬영을 구경하기도 했는데,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소소한 즐거움과는 별개로 오전 7시에 일어나
만원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에 오르는 일은 언제나 나를 괴롭게 했었다.
나는 뼛속까지 게으른 인간이다. 게을러서 시작도 못해보거나 중간에 포기하는일은 부지기수였다.
기타, 피아노를 배우는 일은 2개월을 넘기지 못했고 영어회화 수업 한 달, 토익수업도 한 달, 미술학원도 한 달, 목수가 된다며 공방에 다닌 것도 고작 한 달이었다. 손뜨개 취미는 어깨가 아프다는 이유로 2주를 가지 않았다. 데드라인이 코 앞에 와야 겨우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내가 진득한 취미를 가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게으른 주제에 생각은 어찌나 단순무식한지 게으름에 일을 그르쳐 속이 상할 때마다 실망하는 대신 ‘아 그래서 뭐 어쩐다냐’ 하며 두 다리를 쭈악 펴고 편안하고 깊은 잠에 들곤 했다. 게을러 터진 주제에 긍정적
이기까지 하니 나의 게으른 기질은 마를 날이 없었다.
두 달에 한 달을 더 보태 인턴 생활을 끝내고 나서야 회사를 나왔다.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도 며칠동안은 습관적으로 새벽에 눈을 떴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겨울의 푸른 새벽,
나는 하고싶은 것을 했을 때 보다
안하고 싶은 것을 안했을 때 비로소 평안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게으르고 잠이 많은 편이었다. 툭하면 유치원에 안 가겠다 떼를 쓴 기억이 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으셨다. 학창 시절 내내 그리고 고3이 된 후에도 “하기
싫으면 하지마, 더 자고 싶으면 더 자” 라던 우리 엄마. 엄마는 항상 다 괜찮다는 따뜻한 시그널을 보내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대신 이른 아침이면 잠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의 입에 작은 주먹밥을 넣어
아침을 챙겨주셨고, 내가 화장실 문지방에 머리를 대고 누우면 화장실 안쪽에 쭈구려 앉아 따뜻한 물로 내 머리를 감겨 주셨다. 엄마를 통해 얻는 안도감은 긍정적인 성격 뿐만 아니라
나의 게으른 기질을 더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던것 같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날에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학교 선배가 항공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승무원 공채시험에 지원했다. 나는 운 좋게 합격 통지서를 받은 뒤 일주일 만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24살, 승무원이 되었다.
입사하자마자 3개월간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교육은 각 한 달씩 입사 교육, 서비스 교육, 안전교육으로 구성되었는데, 입사교육은 비교적 회사의문화를 습득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기내식 사업센터나 공항을 방
문하거나, 연수원과 제주도에서 합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 교육과 안전 교육은 매일이 시험의 연속이었다.
오늘 배운 내용을 소화시키기도 전에 다음날 출근 직후의 오전 쪽지 시험으로 이어졌고, 퇴근 전에는 정규시험을 봤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의 시험, 새롭고 생소한 내용들로 가득한 정보들과 방대한 양의 공부 범위 앞에
시험에 탈락하거나 건강이 악화되어 짐을 싸는 동료들도 생겨났다.
나는 게으른 기질로 평생을 살아오며 번번이 벼락치기로 여러 순간들을 모면해 왔다.
벼랑 앞에 서야만 무언가 할 마음이 생겼던 나는 당연히 1등엔 관심이 없었고 꼴찌만 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시험을 치고 나면 백지장이 되어버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늘도 제자리걸음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늘 그렇듯 이내 개헤엄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매일 발등의 불 같았던 수 많은 시험들을 늘 그래왔듯이 벼락치기와 턱걸이로 통과하여 결국 승무원 자격을 취득했다.
부족한 결과물이라도 결국 만들어 내긴 했으니,
게으름뱅이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게으름은 내 기질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특성이다. 벼락 치기를 좋아하는 것과 쉽게 포기하는 것, 꼭 마음이 동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나의 기질들은 모두 게으름을 뿌리로 한 줄기들이다. 나는 이 기질들에 거스르
지 못하고 굴복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괜한 탓을 해 보았지만
이 기질은 나의 고유한 것이었으므로 강한 저항에도 파도처럼 언제나 다시 곁으로 밀려들어왔다.
나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그 삶은 무엇보다 윤택하고 특별해질 것이다. 고유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진않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완전히 내향형 인간에 게으르고 내성적이며, 끈기 없고, 무계획인 인간.
단점이 그득해 보이지만 사실 나는 내가 싫지않다.
오히려 너무 좋다.
내가 이런 걸, 어쩔 수 없는데 싫어해봤자 뭐하나. 좋아하고 말지.
물컵을 (또) 엎질렀을 때, 침대 모서리에 정강이를 찍었을 때, 핸드폰을 와장창 깨먹었을 때도 웃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내게 속 편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좋을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를 일 앞에서도 나는 고요하고, 무례한 사람을 곁에 두고도 마음은 평온하다. 미용사가 내 머리를 삐뚤 빼뚤하게 잘라도, 결혼식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화장을 받는 날에도 나는 괜찮다.
내가 괜찮은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게을러 지는 과정을 단련해왔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은 상황과
불안이 내 앞에 드리울 때면 나는 언제나 괜찮지 않는다고 달라질 것이 있나, 불안하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이 있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은 언제나 '노'였다. 그렇다면 굳이 괴롭지 않아도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제나 결론이 되었다. 이렇게 게으른 내 기질은 정서마저 게으르게 만들어버려서 결국 단단한 방패막이 되어 상처와 고민들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게으름의 기질을 진실하고 참된 성질로서 인정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고유함에 갇히지 않고, 그렇다고 잊지도 않으면서.
(정서의 게으름 단련훈련 내용은 -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