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신의 바늘>후기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이 바늘 없이 살 수 있을까? <신의 바늘>에서 반복되는 대사가 떠오른다. "신이 바늘을 줬는데 누구는 옷을 만들고, 누구는 물고기를 낚아 올렸대." 그러나 멍하니 연극의 공기를 느끼면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바늘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 아니, 바늘로 집을 지을 수도 있나?
무대에는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은 주거 공간이 나온다. 아마도 매체에서 흔히 이미지화 되는, 소위 말하는 가난한 학생이나 백수들의 공간으로 짐작된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비좁은 골목길을 한참 지나가다 갈색 알미늄 샷시를 열면 귀가 찢어지는 마찰음과 함께 펼쳐질 듯한, 다세대 주택의 옥탑을 상상하게 하는 공간이다. 곰팡내 나는 노란 장판, 여기저기 널부러진 물건과 담배, 이 집은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우가 비트를 만들다가 혼자 감상에 젖어 벽에 미친듯이 낙서를 했을 것 같군, 저 화장실 문짝은 아마 명진이가 부숴먹었겠군. 그러나 연극이 후반부로 달려가면서 의문은 커져갔다. 이 집은 정말 두 비행 청소년이 스스로 이렇게 만든 것일까?
위태하게 매달려 있는 h빔이 눈에 들어온 건 그 즈음이다. 1년 전 이맘때 즈음 친구랑 재개발이 한창인 동네 인근을 거닐다 우후죽순으로 솟아 오르는 건물을 바라보며 저기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실로 놀라운 대답을 들었다. 이 아파트는 살기에 별로라고. 무슨 의미인가 하니, 이 아파트는 지을 때 철근이 많이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푸집 속에 담긴 시멘트가 튼튼히 서기 위해 철근을 꽂아 넣는다고 하는데, 그 철근이 값이 많이 나가 고의로 누락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삶을 건물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으로써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철근 없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달동네 언저리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이기 때문이다.
철근 없는 아파트가 무너지면 아마 영락없이 깔려 죽을 것 같은 공포에 눈앞이 캄캄했다.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건축업계의 비리,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 허가, 자본주의가 잠식한 지구, 뭔가 잘못됐다. 명진의 자조적인 대사는 굳이 약을 하지 않더라도 나와 같은 소시민은 매일같이 불만을 쏟아내고 나서 나오는 결론이다. 신은 우릴 버렸어. 그리고 지우의 희망적인 대사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계획이 있을 거야. 해맑은 그의 어조와는 달리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맥없이 다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숨처럼 내뱉지만 말이다.
나는 어쩌면 우리 사회 곳곳에 바늘을 꽂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은 불안에 떨면서 스스로 바늘을 꽂게 될 것만 같다. 나는 저들의 상황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거대한 바늘이 명진에게 성큼 다가올 때 스치듯 생각했다. 이런 모든 상황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바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구멍나 버린 시스템을 다시 깁고, 자본에 잠식당한한 인간의 영혼에 비수를 찌르고, 우리가 살아갈 터전에도 튼튼한 철근을 깊숙히 꽂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많은 바람에도, 명진과 지우처럼 스스로 바늘을 꽂지 않는 무기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안전한 집과 안전한 사회에서 제명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 뿐이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가 사는 주택에선 해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