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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Jan 24. 2023

혼코노

1995년에 발매된 이소라의 처음느낌 그대로



 오늘도 적적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혼자서 코인 노래방을 다녀왔다. 사실 내 또래는 혼코노라는 말보다 오락실에 부속 시설로 같이 있던 동노(동전노래방)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세월이 흐르고 이 부속 노래방이 더욱 흥하면서 따로 코인노래방만 우후죽순 생겨났다. 부르는 말도 달라지니 늙은이로 안 보이고 싶어서 혼코노라 부른다. 대학을 다닐 땐 대학가 주변의 ㅇㅇ노래방이 아지트가 되어 2 차건 3 차건 마무리로 갔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왁자지껄한 노래방보다는 정갈한 코인 노래방이 더 좋아졌다. 노래방 갔을 때의 신명 나는 매력도 있지만 내 못난 노래실력을 감추는 데는 혼코노만 한 게 없으니까!


 사실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들이 오래된 것도 혼코노를 가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기도 하다. 이런 노래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마음 편히 부르기에는 걸쩍지근하다. 친한 친구랑은 뭐 이런 걸 부르냐며 그냥 부르긴 하지만 말이다. 내 노래 취향은 20살 때부터 구식이었는데, 친구들이 빅뱅이나 투애니원 노래를 부를 때 장사익의 찔레꽃이나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백만 송이 장미 같은 걸 불렀으니 친구들의 황당함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이별노래도 빠른 박자로 감정을 경쾌하게 날려 보내는데, 나 혼자 음울하게 하얀 꽃 질레꽃이나 찾고 앉았으니..


 혼코노를 가는 또 다른 이유로 우아한 백조가 되고 싶은 마음도 배제할 수 없다. 버스커버스커 노래방에서라는 노래에 공감 가는 가사가 있다.

무심한 척 준비 안 한 척 노랠 불렀네
어어 그렇게 내가 노랠 부른 뒤
그녀의 반응을 상상하고
좀 더 잘 불러볼 걸 노랠 흥얼거렸네
사랑 때문에 노랠 연습하는 건 자연의 이치

 

 물론 이 앞에 내가 좀 못생겨서 좋아하는 노래를 연습한다는 내용이 가장 와닿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사랑을 위해서 좋아하는 노래 하나 연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러주고 싶은 게 자연의 이치(!)이지 않냐는 거다. 내가 제일 처음 노래를 연습하게 된 이유도 첫사랑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당시의 나는 파멸적인 음치를 자랑했었기 때문에 노래를 불러준다는 건 꿈도 못 꿨지만.. 그래도 나 같은 음치도 부를 수 있는 게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차에 친구가 랩을 추천해 줬다. 그게 바로 MC SNIPER의 마법의 성인데 빈 종이에 가사를 옮겨 적어 외우고 MP3로 흥얼거리다 주말이 되면 오락실에 같이 있는 동전노래방에서 혼자 연습하곤 했다. 그 우아한 백조가 되려는 노력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을 얻는 대신 랩을 더 좋아하게 돼버렸다.


 조금은 엉뚱한 이유로 랩에 빠지게 됐는데, 랩은 음치인 나도 박자만 잘 지키면 한 곡을 부를 수 있는 게 매력이었다. 다만 나는 박치이기도 해서 그냥 박자를 다 외워버리는 식으로 랩을 해야 해서 그마저도 느리긴 했지만. 이후로 마음에 드는 랩을 발견하면 산책하는 와중이나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중얼거리다가 주변인의 눈총을 받곤 했다. 혼코노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엔 코인 노래방에서 리듬을 눈으로 좇으며 마음껏 중얼거릴 수 있게 됐다. 만세!


 음정이나 박자를 통으로 외워야 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때까지 오래 걸렸다. 평소에도 어느 노래에 빠지면 주야장천 한 곡만 듣기 일쑤인 데다. 집중해서 듣고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그마저 기억에 안남곤 했다. 이것들이 환장의 조화를 일으켜 한 달 내내 같은 곡을 주야장천 듣고 같은 노래를 맨날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여기서 또 혼코노의 장점을 발견하게 됐다. 보통 노래방에선 같은 노래를 또 부르는 건 지양하려 하고 친한 친구끼리 가서도 그다지 좋은 소릴 못 듣는다. 그런데, 혼코노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애초에 혼자니까 말이다. 이소라의 처음느낌 그대로 노래도 처음 들은 지는 꽤 됐는데 최근에서야 불러보기 시작했다. 어찌나 부를 때마다 갖은 감정이 울컥하는지, 진즉에 불러볼 걸 싶었다. 물론 그전에는 아예 엄두도 못 낼 노래라고 인식이 했지만 혼코노가 있는 이상 정복하지 못할 노래는 없게 된 셈이다. 기다려라 명곡들아! 음치의 혼코노가 정복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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