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샤넬, 남자도 이 '알' 속으로 숨고 싶을 때가

가장 소란스러운 곳에서 나를 지키는 법 : 에그체어의 대칭

by mookssam


4개의 다리를 지우고 얻은 완벽한 대칭의 안식, 에그체어

어느 도시나 그곳을 기억하게 만드는 '나만의 명당'이 있다. 내게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카스트너 앤 욀러(Kastner & Öhler) 백화점 2층, 샴페인 바(Champagner Bar)가 그런 곳이다. 물론 나는 그곳에서도 코카콜라를 마시지만, 화려한 패션 매장 사이로 에스컬레이터가 흐르고 사람들의 활기가 교차하는 그 길목, 내 시선을 먼저 앗아간 것은 쇼윈도의 신상품이 아니라 소란스러운 공기 속에 섬처럼 놓인 둥근 달걀 모양의 의자들이었다.


그 자리는 늘 주인이 있다. 백화점의 심장부 같은 곳인데도, 그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이들의 표정만큼은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평온하다. 나는 먼발치에서 기회를 엿본다. 그러다 자리를 뜨려는 사람의 움직임이 보이면, 놓칠세라 얼른 가서 그 둥근 품을 차지하고 앉는다.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의 마스터피스, '에그체어(Egg Chair)'다.


차가운 도시에 던져진 따뜻한 곡선, 그 뒤에 숨은 치밀함

1960년 코펜하겐 중앙역 인근에 세워진 SAS 로열 호텔(현 래디슨 컬렉션 로열 호텔)은 당시 도시 최초의 고층 빌딩이자 건축적 랜드마크였다. 호텔 외관이 미니멀리즘적이고 직선적인 정밀함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야콥센이 그 내부에 구현한 '토털 디자인'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는 1958년 2월 18일 자로 남긴 치밀한 러프 스케치를 바탕으로, 자기 집 차고에서 직접 찰흙을 빚어 목업(Mock-up)을 만들며 조각가처럼 이 유기적인 곡선을 깎아 나갔다.


당시 호텔 건축주는 로비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파티션(벽)을 세우자고 제안했지만, 야콥센은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그는 형태와 질감, 세련된 디테일이 어우러진 가구 자체가 벽이 되는 미학적 해결책을 내놓았다. 의자의 날개를 높여 사용자를 감싸 안는 '윙 백' 구조를 통해, 벽 없이도 완벽한 심리적 경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에그(Egg)'는 그렇게 직선적인 도시의 정밀함 속에서 인간을 포근하게 보호하는 가장 상징적인 조각이 되었다.



들키지 않는 대칭, 입체적 보호막의 비밀

에그체어의 진짜 비밀은 '들키지 않는 대칭'에 있다. 야콥센은 직선이 단 하나도 없는 곡선 대칭(Curvilinear Symmetry)을 완성했다. 뇌가 수학적 대칭으로 분석하기 전에, 우리 몸이 자연의 품처럼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설계다.


실제로 샴페인 바의 소음 속에 있다가도 이 의자에 앉는 순간, 높은 대칭형 날개가 내 시야와 소리를 싹둑 잘라내 준다. 가장 분주한 곳에서 가장 완벽한 고립을 선사하는 힘. 4개의 다리를 지우고 중심축 하나로 지탱되는 이 완벽한 균형은, 우리에게 태아기적 포근함(Cocooning)을 선사한다.


1,100번의 바느질이 만든 '의자의 샤넬'

이 의자가 명품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제작 과정에 있다. 가죽 버전 하나를 만드는 데는 암소 두 마리 분량의 가죽이 통째로 들어간다. 숙련된 장인이 가죽에 주름이 생기지 않게 팽팽하게 당겨 1,100번 이상의 손바느질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가죽을 손가락으로 집었을 때 천이 집히지 않아야 진품이라는 '핀치 테스트(Pinch Test)'는 야콥센의 결벽에 가까운 장인 정신을 대변한다.


이런 완벽주의에 매료된 이들은 수없이 많다. 미니멀리즘의 대가 스티브 잡스부터 패션 거장 입생로랑, 그리고 영화 '맨 인 블랙'과 드라마 ‘더 브리지’ 배경까지, 에그체어는 지적인 안식과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맨 인 블랙 2' (좌)와 드라마 '더 브리지' (우)에 등장하는 제이콥슨 에그 체어

606호실의 약속, 대물림되는 영속성

호텔은 현대화되었지만, 야콥센의 정수가 담긴 '606호실(Room 606)'만큼은 1960년 당시의 가구와 벽지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 이곳의 에그체어는 수명이 다하면 버려지는 소모품이 아니다. 상태가 나빠지면 전문가의 손길로 가죽을 새로 씌우는 복원(Re-upholstery) 과정을 거치며 대를 이어 살아남는다. 빈티지 시장에서 세월의 광택(Patina)이 묻은 낡은 에그체어가 새 제품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유하지 않았기에 더 선명한 로망

아직 내 거실에는 이 의자가 없다. 하지만 나는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야 할 인생의 계절이 오면, 마지막까지 내 삶의 일부처럼 가지고 있을 단 하나의 물건으로 이 둥근 달걀 껍데기를 꿈꾼다.


비록 지금은 그라츠 백화점 2층 샴페인 바 옆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여행자의 처지이지만, 언젠가 내 생의 마지막 문장을 정리할 곳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보호해 줄 이 둥근 대칭의 품 안이었으면 좋겠다. 그 로망이 있기에, 오늘의 분주한 전철 위 삶도 조금은 더 우아해질 수 있다.


사진 출처_https://arnejacobsen.com/works


다음 글에서는 빛의 선, 대칭, 리듬이 인간의 망막과 감정을 어떻게 설계하는지를 도로 위의 꼴을 통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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