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성북동, 종이와 만난 운명적 4학년
1장의 목표는 유년 시절 종이를 오리고 세우며 익힌 경험이 어떻게 형태 인지와 체화된 사유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 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경험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공간을 이해하는 조형적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나의 운명적인 '꼴*과의 첫 만남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찾아갑니다.
나의 어릴 적은 누구나 그랬듯이 나무, 흙, 돌 같은 자연 재료를 가지고 놀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성북동 친구 김희락의 집에서는 달랐다. 그곳에서의 놀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디자이너가 되고 종이를 연구하며 '꼴'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가장 선명한 기억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형태를 사유하는 사람이 되기로 무의식적인 인식을 한 것 같다.
내가 살던 성북동의 집은 늘 종이를 아껴 썼다. 방 안 벽과 천장은 신문지로 덧발라져 있었고, 글자를 몰랐던 나는 그 신문지의 글자의 꼴, 사진의 형태, 판형의 구조를 먼저 익혔다. 문자보다 형태가 먼저 들어왔고, 언어보다 ‘꼴’이 나의 세계를 먼저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희락의 집은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인쇄업을 하셨던 듯하다. 방 한켠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 쌓인 인쇄소 파지(미색 모조지)가 층층이 꽂혀 있었다. 그 종이는 우리가 흔히 쓰는 하얀 종이가 아니었다. 당시 ‘시험지’라 부르던 누르스름한 종이였는데, 지금도 그 색감과 질감이 손끝에서 생생히 느껴진다. 그 종이 더미는 어린 나에게는 금고보다 귀했고, 외계 행성보다 낯설게 빛났다. 그곳은 나만의 비밀 연구실이었다.
나는 그 종이로 수없이 놀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접고 자르는 일로 시작했지만, 곧 나는 '접고 오리기'를 통해 평면의 종이에 나만의 상상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행위에 몰두했다. 가끔 학처럼 규칙적으로 접어야 완성되는 놀이도 했지만, 내 주된 관심은 종이를 오려서 세우고 만드는 창의적 행위에 있었습니다. 나는 종이를 반으로 접고 옆모습으로 동물의 실루엣을 오려냈다. 펼쳤을 때 완벽한 대칭을 가진 네 발 달린 동물이 되었고, 기린, 강아지, 토끼, 나무, 돌 등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장난감을 만들어냈다는 감각에 휩싸였다. 레고도 없던 시절이었다. 어린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창작 도구는 바로 종이 한 장이었다.
우리는 그 종이 동물들을 세워 종이 동물원을 만들었다. 이 피규어들은 내가 오려낸 꼴의 정확성과 균형에 따라 서거나 쓰러졌다. 바람이 불면 동물들이 흔들리며 쓰러졌고, 다시 세우며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나는 모르게 형태의 질서, 무게 중심, 구조를 감각으로 익히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린아이의 놀이가 아니라 꼴의 자립성(Self-Reliance of Form)을 실험하는 초기 조형 훈련이자 감각 인지 실험이었다.
'동물'을 오릴 때, 종이를 반 접은 채 실루엣의 좌우 대칭(Symmetry)을 정확히 맞추고 잘라야 자립할 수 있는 완전한 꼴이 된다는 사실.
'세우기' 놀이를 할 때, 종이 다리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미세하게 벌어져야 무너지지 않는 구조적 안정성(Structural Stability)을 갖는지.
'나무와 돌'을 오려 옆에 배치하며, 납작했던 평면 실루엣이 배경이 아닌 3차원의 공간(Spatial Dimension)을 점유하는 입체적 조형물로 변신하는 희열.
피아제는 “아동은 손의 경험을 통해 공간을 이해한다”[1]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실증 사례였다. 종이를 접고 자르는 그 반복적 행위가 내 안에서 공간 감각을 깨우고, 형태를 언어처럼 읽는 능력을 키워갔다. 종이는 말없이 가르쳤다.
면이 만들어지는 각도
주름이 생기는 방향
종이가 스스로 서기 위해 필요한 지지점
균형이 유지되는 구조
종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칙을 손끝에 전해주는 감각의 교과서였다. 게다가 우리는 종이를 얼마나 길게 자를 수 있는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사과 껍질을 깎듯 종이를 끊기지 않게 돌려 자르면서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순한 승부놀이가 아니다. 종이가 찢어지는 경계, 유지되는 경계—질서와 파괴의 경계선에서 이루어지는 감각 실험이었다. 종이는 얇고 가볍지만, 한 번 접히면 그 흔적을 남긴다. 펴져도 주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주름은 내게 경험이 어떻게 마음에 남는지를 닮아 있었다.
종이는 형태를 기억하고, 나는 종이를 통해 나의 기억을 만들었다.
지금도 나는 그 종이 동물들을 떠올린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조형 수업이었고, 동시에 ‘꼴’의 철학이 시작된 기원지였다. 조용히 쌓여 있던 친구 집의 종이 더미가, 사실은 내 인생의 첫 연구실이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나는 종이를 믿는다. 종이는 형태를 기억하고, 그 형태는 언제든 나의 사유로 되돌아온다.”
인용 및 참고
[1] 아동의 공간 이해와 손의 경험 (피아제) Piaget, J. & Inhelder, B. (1967). The Child’s Conception of Space. London: Routledge.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