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의 문동은은 현실에서도 어디에서나 존재합니다
언어 장애란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수용성 언어 능력은 비교적 정상이나, 언어 표현에는 장애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간단한 단어, 문장 표현도 어려워하고 몸짓이나 손짓으로 언어를 대체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인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과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능력의 장애를 보이는 증상이다.
실업계 고교를 진학했던 나는 비교적 순탄하게 학교 생활을 보냈다. 이전처럼 지나치게 학교 내에서 따돌림 및 아이들의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비교적 원만한 성격으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고, 함께 다니는 친한 단짝들도 4,5명 될 만큼 이전의 그늘진 모습을 많이 벗어난 후였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어두웠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늘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긋나지 않게 조심을 하며 교우 관계를 쌓기도 했었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는지 내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따랐고, 그 덕에 '왕따'라는 타이틀과는 거리를 둔 평범한 학생이 될 수 있었다.
#1
반 내에서는 유독 조용하고 타인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미영'이로 칭하겠다. 미영이는 풍채가 제법 크고 통통한 친구였다. 앞이마를 드러내고 뒤로 길게 밧줄처럼 땋아 늘어뜨린 긴 머리는 엉덩이에 닿을락 말락 한 길이였고 눈썹은 짙고 시선은 항상 아래에 향해있었는데 앙 다문 입은 웬일인지 쉬이 열리지 않았다. 늘 교실 한편에 자리하고 아무와도 대화를 일절 나누지 않던 그 아이는 시선을 항상 아래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는 반 친구 중 한 명이 다가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시선을 나누지 않는 그 아이의 모습에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등교를 할 때에도, 수업을 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체육 시간에도 이동수업을 할 때에도 그 아이는 입을 앙 다물고 시선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2
어느 날은 반에서 소위 논다 하는 아이들이 몰려 가 아이의 주변을 에워쌓다. 어디에 사는지, 이름이 뭔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취조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지고 그 아이는 늘 그렇듯 아무 말이 없었다. 얼굴을 들어보라는 소리에 허공에 시선을 둔 체 그 아이의 눈 길이 정면을 향했지만 초점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소확도 얻지 못한 채 수업이 시작되자, 그다음 쉬는 시간부터 아이들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미영이는 말 그대로 그 아이들의 '표적'이 된 셈이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계속해서 미영이의 자리를 찾았고 처음에는 언어로 이후에는 아이의 외모로 놀려 대더니, 이내 손을 들어 길게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학교 칠판을 닦던 분필이 묻은 지우개로 얼굴을 때려 댔다. 빨래집게를 구해 와서 코에 꽂거나, 얼굴 여기저기에 꼽고 그 아이가 고통에 신음을 하면 그때서야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귀를 가져가 목소리를 들으려 히히덕 댈 뿐이었다.
그 쯤하면 되었다 싶을 정도로 온 얼굴에 빨래집게를 꽂은 아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다가 집게가 풀리면 언제 그랬냔 듯 평온한 얼굴로 돌아갔다. 고통에 신음하던 입을 움켜쥐며 아이는 절대 목소리를 내려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면 꼭 안 되는 것 마냥, 고통에 시달려도 '윽..' 하며 자그마한 소리가 흩어질 뿐이었다.
#3
하루하루, 매일이 흘렀다. 미영이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그 아이를 괴롭히는 횟수가 늘어났고, 강도는 더욱더 강해졌다. 여느 날은 반 내에서 아무 이유 없이 뺨을 후려갈기고, 돌아가며 머리 끄덩이를 잡아 당기며 폭언과 함께 폭력을 이어갔다. 고함을 치고, 욕설을 하고, 얼굴을 때리고, 입을 강제로 벌리고, 음식물을 욱여넣고, 물을 뿌리고, 머리를 잡아 뜯고 책상에 머리를 처박아도 아이의 입은 쉬이 열리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포기한양 고통을 감내하듯 입을 앙 다물고 간간히 신음을 조용히 내뱉을 뿐이었다. 이때 아이들의 폭행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반 친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예 이어폰을 꽂고 그 행동을 보지 않으려 책을 읽는 아이, 폭행을 당하는 아이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쉬는 시간마다 반에서 나와 있는 아이, 폭행을 당하는 아이 자리 부근에 있으면서도 다른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 폭행의 강도가 심해지자 미영이를 걱정스레 바라보고만 있는 아이,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궁금하단 표정으로 폭행을 바라보는 아이…
하지만 이들 중 그들의 폭행을 정면으로 맞서서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다 방관자였다.
#4
다들 하나같이 방관을 했을 뿐이다. 나라고 다를까 아니, 나 역시도 비겁한 '방관자' 였을 뿐이었다. 그들의 폭행에 대항할 용기도 배짱도 없었다. 그저 그 폭행이 멈춰지길 소원할 뿐, 폭행을 직접적으로 말릴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우리 반에는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또래 친구들 중 그 누구 한 명도 담임 선생님께 폭행을 하는 것을 이야기하겠노라고 목소리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 '타깃'이 본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비겁하고 치졸한 마음들 뿐이었다.
힘없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괴롭혀서는 안 된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그런 식으로 괴롭히면 안 돼. 하는 마음의 목소리는 쉬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4,5명이 몰려다니는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그 아이들에게 대항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과 폭력이 난무할 게 뻔했다. 어른도 법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들을 맞설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장애를 가진 아이가 본인들의 폭행을 누설하지 않으리란 가해자들의 믿음과 그 아이를 돕다가는 피해를 입을 거라는 엄포에 반 아이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렇게 미영이는 학교 폭력을 당하는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학교 폭력 가해자와 방관자들을 보며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교실 한편에서 쉬는 시간만 되면 몰려와 자신의 따귀를 때리고 침을 뱉으며 머리 끄덩이를 잡아당기는 표독스러운 아이들의 괴롭힘 속에서 앙 다문 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5
왕따를 초등학교 유년 시절 6년을 당했던 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아이의 학교 폭력은 말리고 싶고, 보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너무 불쌍하고, 너무 참담하고, 너무 마음이 아픈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내가 조금 더 힘이 셌더라면 그 아이들을 막아설 수 있을까? 아니, 힘과 용기는 비례하지 않다. 그저 그 표적이 내가 되는 것이 싫었을 뿐. 알량한 정의감은 그렇게 정의를 구현해 내지 못했다. 나도 말리지 않는 방관자들과 똑같은, 방관자 아니, 가해자였을 뿐이었다. 적어도 그 아이에게는…
#6
여느 날은 그 아이들이 물었다.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학교를 부득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대답은 역시 돌아오지 않았고 이내 예상했던 것처럼 괴롬힘은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은 보통의 날과 달랐다. 괴롭힘의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반 아이들의 주목이 커지고 가해자들의 분노가 치닿자 미영이를 데리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율 시간을 포함해 한 시간 반 이상을 미영이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가해자들이 씩씩 대며 매점으로 향한 후, 화장실에 가보니 미영이는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이 뺨을 올려댄 건지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퉁퉁 부어올른 모습이었다. 대걸래는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물을 대야로 퍼부었던지 교복과 머리는 푹 젖어 있었다.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 후 미영이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아팠다. 많이 아팠을 텐데,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이렇게 울고만 있었을까. 이 아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렇게 매일 같이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걸까. 분통이 터졌다. 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런 폭력을 당해내야 하는지, 왜 남들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폭력을 당하는 상황이 이어져야 하는지, 왜 부모님께 말을 해서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 말하지 않는지, 왜 선생님께 얘기해서 이런 폭력에서 벗어나지 않는 건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일인 것을, 그리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도 쉬이 바뀌지 않을 것을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메모로 글을 써서 알릴지언정, 부모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싶지 않음을, 스스로가 이렇게 폭행을 당해도, 이런 폭행에 대응할 힘이 없음을, 폭행을 당하는 시간 내내 참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본인의 무력함에 제일 괴로울 사람은 바로 자신인 것을..
축 젖은 그 아이에게 체육복을 빌려다 주고 옷을 갈아입을 것을 얘기한 후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많이 아파? 괜찮아? 말리지 못해서 미안해.", "혹시 목소리 내서 얘기 할 수 있어? 얘기하지 못하면 끄덕, 얘기할 수 있다면 응 이라고 말해줄래?"
- 끄덕
#7
"집에 갈 수 있게 선생님께 얘기해 줄까?",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겠어?", "양호실에 데려다줄까?"
미영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폭력을 심하게 당한 후라 얼굴이 빨갛게 부어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이대로 집에 가는 것도 양호실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선생님께는 몸이 아픈 것 같다고 얘기해 줄게. 교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어. 많이 아플 것 같아"
계속 이어지는 수업 시간 중 선생님께는 미영이가 아파서 엎드려 있다 얘길 했고, 이후 하교가 될 무렵 미영이는 체육복을 입은 채로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하루를 건너뛰고, 다시 등교한 미영이는 여느 때처럼 곱게 빗은 긴 밧줄 머리에 시선은 아래로 늘 향해 있는 평온한 표정으로 학교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구들과 나는 점심시간에 그 아이를 데리고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이동 수업시간에도, 체육 시간에도, 급식 시간에도, 늘 그 친구를 데리고 다녔다. 그 아이들의 폭력을 피해서, 그리고 다시 그런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8
화장실 소동 직후 폭행의 강도는 이전보단 약해졌고, 그 아이들은 미영이의 괴롭힘 보단 본인들의 세력 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그 관심 속에서 벗어났다는 것이고, 미영이를 챙겨주는 모습에 다른 또래 친구들도 미영이를 챙기는 모습이 더해져 전보다는 학교 생활이 나아졌다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도 학교 폭력에 대한 상황을 전혀 인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친구들이 계속해서 미영이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나와 친구 한 명을 포함, 미영 역시 3년을 같은 반에 붙여주기도 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그리고 폭력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이후에도 그 아이들의 괴롭힘은 종종 있었고, 자율 학습 시간 또는 쉬는 시간에도 찾아와 강제로 무언갈 먹이거나 때리거나 놀림과 폭언이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그 아이를 돕진 못했다. 말려도 그때뿐이었고, 대항할 수 없는 아이들 속에서 그들의 괴롭힘은 종종, 이따금씩 계속되었다. 길고 길었던 3년이 지나고, 졸업식을 함께 하며 마지막으로 졸업 사진을 함께 찍고 돌아서는 데, 미영이와 함께 돌아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밟혔다.
어딘가에서는 절대 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다시는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힘들었던 시간들을 모두 잊을 수 없겠지만 부디 살아가며 그 기억들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길. 그리고 미안하다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9
학교 폭력은 신체에 해를 가한 가해자와, 그 폭력 현장을 목격하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 방관자가 있다. 근래에는 학교 폭력 현장을 목격하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학교 폭력 방관자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꼭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상황을 방관했단 이유로 방관자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우연히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도 모두 포함된다. 구경을 했던, 어떤 이 유로 서던 나서서 폭력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방조범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 나를 포함한 그때 반 아이들 모두 방관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학교폭력의 신고는 쉽지가 않다. 학교 폭력을 신고한 그 사람은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가해 학생들에게 보복 폭행을 당하게 되고, 이는 학교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잇따르는 부담이 적지 않다.
근래에는 어떤 식으로 학교 폭력 위원회를 만들고 진행이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20년 전의 학창 시절에는 이런 신고 제도가 명확하지 않았다. 학교 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한다는 이유를 이야기하려면, 폭행을 목격했던 이의 상담, 진술 확보, 가해자와의 교무실 면담, 가해자의 부모에게 통보, 학교 내에서 징계 및 위원회를 소집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떤 루트로던 진술을 누가 했는지에 대한 목격이 이어지고, 폭력을 누설한 행위로 다시 한번 타깃이 변경될 뿐이었다.
#10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로 서면 사과, 피해학생과 접촉하지 않고 보복행위를 금지, 학교 내의 봉사활동, 사회봉사, 교육 이수, 출석 정지, 전학, 퇴학처분. 이런 것들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필자는 말한다. 그건 아무런, 하등 쓸모없는 일일 뿐이라고. 현실에서는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존재하지 않고 학폭 했던 사람들은 없던 일인 양 일상을 잘 살아낼 뿐이다. 결국 피해자만 고통받고 상처받은 채로 끝나게 되는 경우다 다반사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법은 항상 완벽하게 피의자의 편에 서 있지 못한다. 가해자의 완전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악법은 계속될 뿐, 피해자의 상처는 이런 법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피해자는 고통 속에 살아갈 뿐이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의 복수는 법으로는 정당화될 수 없었고, 시청자들은 문동은이 통쾌한 복수를 하는 모습에 쾌재를 부를 뿐이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나서는 것이 정당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법적으로는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 행위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한 정의 실현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정당하게 처벌을 내릴 수 없다면, 더 글로리의 문동은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1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의 본질, 그리고 학교 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학교 폭력 이슈는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고 가해자의 처분에 대한 논란 역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피해 학생들은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고 가해자들의 보복 행위 역시 계속해서 피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근래에는 학교 폭력 미투 사건이 많다. 피해자를 안 좋게 보는 시선들도 있고 의견이 분분한데, 피해를 입은 내용을 용기를 내서 밝혀도 법은 피해자의 편이 아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제2차 피해를 주는 셈인 것이다. 헌법은 범죄자일지라도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해야 한다 말하고 있고, 개인이 숨기고 싶은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내용을 적시할 경우 비밀과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볼 수 있기에 사실 적시 명예 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것이 학교 폭력 가해자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이다. 법의 사각지대, 피해자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억울한 부분이 많아도 억울하다 할 수 없고 법이 적극적으로 구제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법은 피해자를 위해 있는 것인지 가해자를 위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요즘은 학교 폭력을 소재로 드라마에 인용해서 인기를 몰기도 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오히려 과거의 폭력이 다시 트라우마가 되어 상처를 입을 수 있고, 또 반면에 가해자는 그저 재미의 요소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어서 이 것 역시 풀리지 않는 아이러니 함이다.
#12
학교 폭력이 피해학생에게 주는 치유가 되지 못하는 상처와 아픔은 누군가가 절대 해결해 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성인이 되어 용기를 내어 피해를 입었다 얘기하게 될지라도, 형법상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게 되는 일 역시 비일비재하다. 철없던 학창 시절의 객기라고 하기엔 피해를 입은 아이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학교폭력을 당했던 '미영'은 사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미영이 갖고 있던 장애가 언어 장애 중 표현성 언어장애인지, 수용성, 표현성 혼합 언어장애인지, 음성장애인지, 말 더듬이 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소풍을 다녀온 후 집으로 귀가하는 문제 때문에 아이가 집에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핸드폰을 주며 어머니와 통화를 해서 집으로 귀가할 수 있을지를 물었고 먼발치에서 어머니와 통화를 짤막하게 나누었던 것을 본 게 다였기 때문이다. 선택적 언어장애였는지, 아니면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에 결함이었던지, 알 수 없던 부분이었지만, 아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님으로 보아 미영이는 말하는 것 자체에 문제를 겪는 것 같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더 글로리의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몰았을 때, 가해 학생 중 한 명은 본인의 죄가 상기되어 그동안의 잘못된 일을 반성하고 있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다행일까? 다행이지 않을까. 이미 벌어진 일과 피해를 입은 아이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상처를 안고 자라 성인이 되었고 학교 폭력을 당한 일은 20여 년이 지났을 뿐 잊히지 않았을 뿐이었다. 폭력이라는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았을 뿐, 가해 학생의 사과를 받는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역시도 본인의 죄가 수면 위에 오를까 두려워하는 마음에 사과를 한다면, 그것 역시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있을까.
인과응보라는 말을 믿는 이들이 있다면, 그마저도 가해 학생들은 불안에 떨며 살 것이다라는 사실로 피해를 입은 학생은 만족해야 하는 부분일까. 그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13
나는 따돌림을 오래 당했던 사람이었고, 학교 폭력이 이뤄지는 중에도 피해 학생을 선생님께 얘기하지 못했다. 보복 행위에 겁이 났고, 누구도 그 아이를 돕지 못했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학폭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올 때 심정적으로 마음이 많이 무겁다. 가해 학생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긴 시간 그 아이를 괴롭혔었고, 언어 장애가 있던 그 친구가 학교 생활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는 방관했던 나와 반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 잔상과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미안함과 동시 자책감이 몰려온다. 피해를 지켜봤지만 안타까움만 가졌을 뿐 방관했던 내 모습이 그저 창피하고 싫을 뿐이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그 아이의 피해를 막고자 나서주었다면, 그리고 그 용기로 우리가 그 아이가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면, 그랬다면 그 아이는 학창 시절이 그렇게 고단하지 않았을 텐데, 괴롭지 않았을 텐데 하며 생각한다.
20년이 지났지만 어제일 처럼 또렷한 그때 그 상황에 아직도 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 아이는 잘 살아가고 있을지, 그 상처에서 벗어났을지, 그때의 우리가 얼마나 미웠을지를 말이다.
#14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폭에 관한 내용이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려올 때 나는 그 아이와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떠올랐다. 가해 학생 중 한 명은 폭력을 주도했던 이가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소문을 행간에 듣고 난 후라 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 진심 어린 사과를 직접 해준다면 그 아이는 마음이 그래도 한결 나아질까, 아니면 가해 학생을 대면한다는 이유 만으로도 더욱 괴로워질까. 본인의 죄 값을 이제야 인지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그 아이는 드라마의 가해학생과 본인을 동일시하고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걸까, 아니면 본인의 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어 사람들의 질타에 본인의 입지가 실추될 것을 불안해했던 것일까.
뭐든 답이 없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에 그런 가해 행위로부터 피해 학생을 지켜줄 수 있는 명확한 대책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을 목격하고 이를 신고하더라도, 면담을 통해 목격을 진술한 진술자로 불리게 되면, 그때부턴 가해학생의 보복행위는 타깃만 변경된 체 이어질 뿐이다. 설사 전학을 가고 퇴학을 당한다 할지라도 피해 학생은 2차, 3차 생겨날 뿐이고 제대로 문제 행동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학교 폭력으로 누군가는 평생이 괴로움에 살게 되고, 사회가 인지하고 관련된 법의 제도나 처벌은 악의와 악행을 억제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사적 복수는 더 글로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복수라는 것 자체가 매우 통쾌할 순 있지만 더 멀리 보자면 사적 복수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폭력은 폭력으로, 눈 눈 이이로, 악은 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복수를 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고, 그 기준은 누군가가 정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법의 규율과 기준이 구멍 없이 더욱 완전해지고, 피해를 입는 학생들이 더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러분은 권선징악, 인과응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생기지 않으려면 법은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