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무 Dec 01. 2023

이상보다는 현실… 살아냄의 무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1

 '이혼'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필자는 말한다. '이혼'이란 낙인이 찍히고 나면 그때부터 색안경은 씌워지게 된다고…

이혼을 한 후 마주한 세상은 전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이제 그 사람 때문에 더 이상 속앓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과 시댁에 불려 가서 온갖 잡일을 도맡지 않아도 된다는 점 빼고는 더 이상의 장점이 없었다. 아니 '이혼'이란 자체는 '결혼에 실패'했거나 '문제가 있으니 이혼을 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이혼이 별거냐, 할 수도 있지' 하며 쿨하게 받아들일 문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혼녀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미취학 아동 두 명과 월세방에 전전긍긍하며 지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2

이혼 소송을 하는 중 나는 18%대의 이자를 물며 500만 원을 빌려 월세방을 얻었다. 끽해야 11평 남짓 돼 보이는 방 두어 개에 부엌과 거실이 같이 되어 있는, 그 마저도 반지하 방이라 화장실을 가려면 벽돌 한 칸을 발로 밟고 올라서야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이 딸린 집이었다. 경제 활동 없이 경력 단절로 6년을 살다 보니, 신용이력이 없어 이제 막 취업을 하는 새내기의 신용등급이 내게 주어졌다. 신용카드 한 장 만들 수 있는 상황도, 대출이 제대로 나올 리도 만무한 상황에서 내게 500만 원에 42만 원의 월세방은 감지덕지였을지도 모른다.


#3

새벽녘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우고 챙기고 아침밥을 든든히 먹이고 어린이집으로 회사로 아등바등 그렇게 꼬박 4년이 흘렀다. 매일 같은 야근과 잔업은 때로는 이렇게까지 먹고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체력이 달려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선택한 일, 내 선택으로 일어난 과정이란 점에서 신세 한탄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4

500에 42, 반지하 방에 사는 세 모자는 매일을 조용히 지냈다. 옆 집에는 노부부가 살고 계셨고, 한국인이 아니라 교포 분이셨던 것 같다. 일찍 일어나셨고, 일찍 주무시는 패턴을 알게 되자 자연히 나 역시 9시 이후로는 하루를 마무리했고, 주말 중에는 놀이터에 나가 신나게 뛰어놀게 하고 아이들의 에너지를 뺐다. 그렇게 해야지 온 방을 누비며 자기 세상인양 시끌벅쩍하게 떠들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키즈카페를 다니는 것 역시 값이 부담이라 고바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놀이터에 가서 두어 시간을 잡기 놀이, 그네 타기, 시소놀이, 무궁화꽃이 등을 하며 보내다 돌아왔다. 우린 돈이 없지만 시간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넘쳐났다. 고단하지만 주말은 늘 그렇듯 아이들과 복작대며 지냈고, 어느 날은 옆 집 할머니께서 아이들이 내향적인 편이냐며 어떻게 그렇게 소리 하나 없이 클 수 있냐며 자신의 손주들과는 다르다며 칭찬을 하셨던 기억이 다. 그건 옆 집 이웃에게 우리 아이들이 소음으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내 노력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시리라.


#5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저녁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돌봐주는 어린이집 선생님 덕분에 석식까지 아이들은 먹은 상태였고 그런 날이면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어두운 골목길에는 10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술에 취해 비틀대는 아저씨,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청년들이 보였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교육 덕분인지 그 늦은 시간에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오른 것 같은 할아버지에게 둘째가 멋모르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순간 할아버지가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등 물어 오려는 느낌이 드는 찰나, 나는 재빨리 손을 이끌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늦은 시간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시간이 늦었어. 인사하지 말고 눈 마주치지 말고 빨리 집에 가는 거야. 알았지?" 여섯 살 정도 되었던 둘째는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 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붙잡고 집으로 향했다. 혼자서 사는 여자, 어린아이들만 키우는 젊은 여자는 위험하다. 특히나 타지에서는 더더욱이 말이다.


#6

아이 둘을 여자 혼자 키우며 사는 집에서는 이렇듯 행동 하나하나에도 온 신경이 쏠리기 마련이다. 나는 가능하면 문 앞에 전단지 등이 쌓이지 않게 매일 신경 썼고, 안전 잠금장치 역시 두 개씩 해놓을 만큼 안전에 신경을 썼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행길가 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문을 열어두면 바깥에 행인들이 우리 집 거실이 버젓이 보이는 형태로 놓여서 1년을 대문 한번 열지 않고 지냈다. 이밖에도 아이들만 따로 단독으로 어딘가에 가는 일, 늦은 오후 시간에 나 혼자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일도 하지 않았다. 가령 오후 시간에 무언가 생필품이 필요해도 2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나가지 않았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집, 불빛이 켜져 있는데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이라면 누군가에 표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7

주변에선 안전과민증이냐는 말을 듣게 됐었는데 이때 나는 두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아프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위험 상황에 노출되지 않게. 스스로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아이들을 지켜내기에 급급했다.  때로는 이런 행동들을 하면서도 생각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내가 아이들이 그저 유복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에 아이들을 두고 왔더라면…'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그늘지지 않은 채로 잘 커주었다. 그걸로 면 충분했고 더 바랄 게 없었다.


졸라맨 같은 우리 가족. 오빠는 가장 작게 그렸다.

#8

이혼에 대해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아마도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은 부인들은 아이들 양육비를 안 받아도 되니 당장이라도 이혼하고 싶다는 부류가 있을 것이고, 이혼만 하면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 이혼을 하면 내가 이 사람으로 피해 봤던 인생을 어느 정도는 다시 보상받고 다시 재기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 이혼은 하고 싶은데 본인의 경제능력이 되지 않아 마음속으로 몇 백번 이혼을 결심하는  등 다양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혼을 해 본 사람, 이혼 후가 힘들어 본 사람의 입장으로 이혼은 결혼처럼 몰랐으니 한 것이지, 알고는 못 할 짓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인 상황이 좋고, 능력도 그만큼 갖추어서 월 500만 원씩 버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과정은 결국 어렵기만 하다. 또, 두 명의 부모에서 한 명의 부모만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점에서 절대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9

다양한 이유로 이혼들을 결심하지만 이혼 과정은 지난 결혼 과정보다 이혼이 못한 지경이 되는 경우도 많다. 나의 경우에는 이혼소송을 시작한 기점부터 빚으로 시작해서, 변호사 비용을 충당하는 위자료 금액이 동일한 케이스다. 그 마저도 성공보수를 10%나 돌려주고 끝이 난 실패작인 이혼소송의 원고였다. 이혼 소송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서 소송을 하는데, 나의 경우 후자였다. 그리고 이건 다신 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는 것을 복기하게 된 시점이었다.



 이혼을 해도 힘든데, 이혼을 하는 과정까지 녹록지 않거니와 이혼 후의 삶 역시 아등바등해야 한다면, 대한민국에 이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정말 이 사람 때문에 내가 죽고 싶다. 내가 어떤 고생을 불사하더라도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살 수 있는 자신이 없다. 하는 정도의 괴로움이라면, 그때는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녀가 아직 어리고, 남편의 경제적인 부분은 만족하나 이혼 후의 180도 바뀐 삶에 고생길이 훤할 것 같다 고민이 된다 하는 중산층의 여성이라면. 이혼을 포기하고 다시 부부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오히려 그 편이 훨씬 낫기도 하다. 소송에서 재산 분할을 하고, 이것저것 빼고, 기여도를 측정하고 나면 결국 그렇게 남는 것이 없다. 내가 생각했을 때의 금액, 변호사가 재산 분할로 얼마 정도 나오겠다 하는 어림짐작은 그저 소송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고 방법일 뿐, 그런 말에 속아 이혼 변호사를 선임해 이혼을 준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10

이혼은 수년 동안 고민을 하다 실행에 옮겨도 후회가 남는다. 우리 아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그리워할 때, 남들같이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 어떻게든 살아는 지지만 아이에게 뻥 뚫린 공허함과 아빠의 부재는 내가 온전히 채워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세간에서는 이혼 사유로 성격 차이를 두고 이혼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구체적으로 이 성격차이란 것은 결국 상대와 내가 의견이 대립되어 부딪치는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악화되서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혼을 결심한다면 그냥 한쪽이 자존심을 버리고 화합할 수 있게 가족 상담을 먼저 신청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결국 이혼이란 것은 나와 그 사람의 갈라섬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혼은 나와 내 자녀, 그리고 부모와 형제까지 힘들게 할 수 있는 선택이다. 물론 모든 걸 혼자서 다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혼자 해결하며 살아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여성이라면 모를까.


 홀로서기가 안 되는 상황에서 막연히 자녀를 키우겠다는 의욕만을 갖고는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혼은 쉽다. 하지만 이혼하는 과정과 이혼 후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험난하다. 예로 들자면 재판상 이혼 소송으로 끝난 나와 같은 케이스는 최악이기도 하고 말이다.


#11

결론은 이혼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쪽이지만, 어쨌거나 모든 상황을 총체적으로 봤을 때 마이너한 일이라는 점이 이혼이었다. 그리고 이혼 가정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부모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부담이자 사명감이었다.


양육자는 이혼 후 자녀를 키우며 어머니 역할, 아버지 역할을 동시에 같이 해내야 한다. 하지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며 아이들을 키울 순 없다. 두 가지 역할을 다 잘 해낼 수 없다면 이 부분은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 역시 친정이 되었던 기관이 되었던 주변의 도움을 받고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긍정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처럼 이혼이란 그저 '혼인관계'사실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는 일이 아니라 이혼 후 온전히 혼자 책임져야 할 일들이 태산이라는 점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혼을 꿈꾸는가? 이혼을 고민하는가? 그렇다면 나 자신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법,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났는 가를 확인해 보았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