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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하다

by 책방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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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동네 맘카페에 접속했다. 재밌는 거 없나 스크롤을 쭉쭉 내리고 있는데 하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 엄마들이 멤버인 독서 모임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사 온 후 어떠한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고 집순이만 하고 있었기에 새로운 만남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망설임 없이 무척 하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4명으로 시작한 멤버는 여러 사람들이 탈퇴와 가입을 반복하며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성실의 아이콘인 나는 한두 번만 빠지고 모임에 참여했고 멤버들의 등에 떠밀려 리더라는 감투도 쓰게 됐다. 완장을 차니 더욱더 책임감이 들며 어떻게든 꾸준히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흐르고 친목모임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모임에 애정이 생겼다.

2020년의 코로나19로 인해 모임이 와해될 뻔했지만 위기를 딛고 꿋꿋이 3명의 멤버로 다시 시작했다. 멤버들의 대거 탈퇴 후 동네 맘카페에 다시 모집글을 올렸다. 3명의 신입이 들어왔고 그중의 한분이 85년생 00이었다.


첫인상은 지금까지 모임에 들어온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분위기였다. 코로나 상황이라 오프라인 모임은 할 수 없었기에 온라인 ZOOM으로 모임을 대체했다. 컴퓨터 화면 속 그녀는 매서운 눈매에 검은색 스트레이트 생머리, 목소리도 딱딱 떨어지는 낭랑한 목소리, 한마디로 똑순이 이미지 였다.

한 달에 두 번 영화와 책을 보고 만나는 형식이지만 진행을 하다 보면 결국은 자기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동네 모임이고 무슨 소문이 날 줄 모르니 초반에는 다들 조심스러운 분위기에 물어봐도 단답식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녀는 첫 모임부터 자신의 썰을 거침없이 풀었다. 자신은 중학교 때 소위 노는 언니? 였고 부모님 속을 무척이나 썩였다며 호탕하게 웃어댔다.


하지만 고등학교 가서는 정신을 차려 공부를 빡세게 했고 박효신이 다녔던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학과에 입학했다며 자신의 신상을 쭉 읊어댔다. 음악 치료사를 하다가 결혼 후에는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아서 운영 중이라는 그녀가 멋져 보였다. 가식이 없는 솔직한 사람인 듯했다. 일을 하는 와중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모임에 참여하는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고 인스타 맞팔을 해서 좋아요도 서로서로 꼬박꼬박 눌러줬다. 인스타 속 그녀의 가족들은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어느 날 문득 그녀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00 씨~ 일하느라 바쁘죠? 혹시 언제 시간 돼요? 괜찮으면 만나서 커피 한 잔 해요^^?”

“리더님~ 좋아요! 퇴근 후 6시쯤 괜찮으세요? 장소는 최근에 생긴 강변 쪽에 카페 좋더라고요.”

“네에~근데 제가 운전을 못해서 00 씨가 저 태워서 가도 될까요?”

“넵 퇴근하고 연락드릴게요!”

망설임 없는 시원시원한 그녀의 응답에 왠지 모를 설렘도 들었다. 온라인으로 계속 봤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려니 극 I형이라 긴장도 됐다. 첫 데이트 나가는 사람처럼 옷을 고르고 같이 갈 카페에서 무얼 먹을지 메뉴도 검색하며 약속 시간을 기다렸다. 퇴근 후 만난 그녀는 사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포스가 느껴지는 아우라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역시나 카페에 앉자마자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대는 그녀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미소를 띤 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제가 사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남자 문제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엄마와도 사이가 무척 안 좋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교 선배가 소개해준 곳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됐고 쌓였던 업? 을 풀었더니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현재도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 만나 공부 중인데 진짜 좋아요. 지인들이 제가 많이 유해졌대요.”

‘잠깐 이거 뭐지? 업? 혹시 신천지 그런 거 아니겠지?’

“리더님도 지금까지 모임에서 한 이야기 들어보니 쌓인 업이 많은 것 같아요. 계속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만 했잖아요. 그건 다 리더님 조상들의 잘못한 업보들이 후손에 전해져서 그래요. 공부하면서 그 업을 풀어줘야 해요.”

“아하하.. 그래요? 난 그런 거 안 믿는데” 썩소를 지으며 핸드폰으로 신랑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야! 사이비를 만난 것 같아. 나한테 빨리 전화해 봐.’ 그러는 중에도 그녀는 계속 헛소리를 했다.

“지금 우리 주위에도 귀신이 있어요. 이순신 장군 알죠? 우리는 훌륭한 위인으로 알고 있지만 전쟁 중에 사람을 많이 죽여서 업을 많이 쌓았어요. 그 사람의 후손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힘들게 살고 있어요.”

“아~그래요? 그런 소리는 첨 들어보네 하하하!” 5분 후 남편의 전화가 왔고 나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언제 오냐고? 왜? 좀 전에 왔잖아. 아들이 숙제 어렵다고 힘들어서 운다고? 네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 뭐? 성질나서 못 가르치겠다고? 휴, 알았어 금방 간다고 해.”

“00 씨~어쩌죠? 아이가 남편이랑 투닥거리다가 우나 봐요. 남편이 한 성질 해서,,,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어쭙잖은 횡설수설에 눈치를 이미 챈 건지 떨떠름함 표정으로 알겠다며 일어선다.

화면 캡처 2023-05-10 082115.png 연상호 감독 애니메이션 영화 <사이비>

그녀의 차를 타기 싫었다. 한 시간 반쯤이 흘러서 어느덧 날이 저물었고 카리스마 그녀는 이제 무당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낯선 곳으로 끌고 가면 어떡하지? 납치당해서 이대로 가족들 못 보는 거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차를 안타는 것도 오버하는 것 같았고 10분만 참자라는 마음으로 올라탔다.

그녀는 집에 도착해서 내릴 때까지 리더님은 계속 조상의 업보를 풀어달라고 기도를 많이 해야 된 댔다. 기가 찼다. 이게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러는 거지? 그때는 멤버들이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는 시기였는데 사이비가 정한 책은 글쓰기 관련 책이었다. <세바시 인생질문 1.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이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꾹꾹 참아왔던 말로 풀지 못한 속사정을, 힘들었던 마음들을 글로 모두 적었다.

차를 타고 오며 이 책을 선정한 이유도 모임에 참여한 의도도 모두 계획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날부터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더니 몇 개월 후 모임에서 친해진 다른 멤버와 만남을 가졌다. 똑같은 레퍼토리로 썰을 풀어댔고 그 멤버는 놀라서 밤 11시가 넘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모임이 사이비모임인줄 알았다며 하루종일 속앓이를 하다 전화한 멤버에게 나는 리더로서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그날 밤 분한 마음에 잠을 설친 나는 다음날 마음을 굳게 먹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1분 남짓한 통화는 지금도 치가 떨린다.

“여보세요? 00 씨?”

“…네, 누구시죠?

“??? 저 독서모임 리더예요.”

“아~네. 번호가 저장이 안 되어있어서. 무슨 일이시죠?”

“… 우리 모임 규칙 알죠? 어제 00 씨 만났다면서요? 미안하지만 나가줘야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뚝… 그녀는 어떠한 변명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고 단톡방도 바로 나갔으며 인스타도 차단해 버렸다.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그녀의 행동이 기가 막혔다. 이런 일들이 지금까지 계속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날 이후로 독서모임에는 구체적인 규칙들이 생겼고 모임에 나가서 함부로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인간을 불신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도저히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사이비의 사자만 들어도 쌍욕이 나오니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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