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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Apr 18. 2018

오르막길의 끝, 최종합격

이게 합격의 기쁨일까, 드디어 끝이라는 해방감일까.

합격전화를 받았을 때, 하필 부모님과 함께 있었다.


나는 서류에 합격하거나 면접전형에 가더라도 절대 부모님께 알리지 않는 아이였다. 괜히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해드릴까봐, 또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어서. 서류전형에 합격하더라도 절대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고, 평상복을 입고 나간 뒤 싸가지고 간 정장을 갈아입고 면접을 갔다. 그리고 다시 평상복으로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절대 모르실 줄 알았던 부모님은 야속하게도 다 알고 계셨다. 내가 발버둥치고 있는 것을 그저 묵묵히 모른척하셨다.

어느덧 학기의 끝무렵이 되자, 뜬금없이 아빠는 휴가를 냈고 갑자기 지방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셨다. 어디로, 왜 가는지 괜히 물어보기 겁났다. 그저 차 뒷자리에 탄 채 졸업유예를 해야할까, 어떻게 신청하지 멍하니 이런 생각이나 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가 차 안의 정적을 깼다. 뜨는 번호를 봤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많이 본 번호였다. 아무 생각없이 받았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ㅇㅇㅇ씨 되시지요? XX사 최종합격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세상 천지가 개벽할 줄 알았다. 당장이라도 데굴데굴 구르고 방방 뛸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지신 부모님을 느꼈다. 차 안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통화소리가 다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 나는 그저 얼떨떨했기에, 감사하다며 아주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심지어 인사담당자가 당황해서, '아, ㅇㅇㅇ씨는 별로 안 기쁘신가봐요. 하하하... 그.. 다음 전형은 어떻게 되냐면요.' 하며 민망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렇게 길지 않은 통화를 끝내자, 분명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고 있을 엄마가 조용히 물어봤다. "누구니?"

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드렸다. "응. XX사 최종합격했대."


데굴데굴 구르고 방방 뛰시는 건 우리 부모님이었다.




그렇게 위로의 가족여행은 축하의 자리가 되어 나는 그날만큼은 너무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게 합격이라는 기쁨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드디어 해방이라는 자유로움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했던 건,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다 잊혀졌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날 하루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만큼 최고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매사 그렇지만, 취업도 등산과 같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고생스러웠던 오르막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잊혀진다. 그러니 힘들어도 그냥 그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럼 최종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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