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신문을 가지려 아파트 현관문을 연다. 매일 어김없이 문 앞에 놓여 있는 신문을 보고 주워온다. 누가 어떻게 언제 배달했는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찬 바람을 맞으면 몸을 움츠리고 신문을 줍다가 신문배달원의 노고를 생각했다. 이른 아침에 여기까지 다녀갔구나! 그것도 이른 아침에 고맙게 항상 그 자리에 가지런하게도 놓고 갔네. 이 신문을 본 지 20여 년이 되었고, 일정 기간만 되면 무료로 서비스도 주었다. 서비스받을 시기가 되었지만, 배달원의 노고를 생각하여 차마 전화를 못 했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이 신문을 보지 않는다며 애로사항을 말하던 신문지국 사장님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 활동하는 분 중에 신문 배달을 빼놓을 수 없다.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새벽 신문 배달 일이다. 그들은 구독자의 집 주소를 절대로 빼먹어선 안 되고, 시간을 꼭 지켜야 하며, 비에 젖어 찢어진 신문은 있을 수 없고, 길을 절대로 잃어버려선 안 되고,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일한다. 우리 주변에는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느끼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 새벽 거리, 열심히 사는 사람 많다. 신문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지난날에는 눈이 와서 배달이 늦어지면 대문 밖까지 나와 신문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수고한다고 인사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때는 그분들에게 세상의 첫 소식을 알린다는 보람으로 일한다고 말한다. 부자들은 매일 아침 신문 기사를 읽는다.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하여 그 답을 신문에서 찾는다. 신문은 가장 빠르고 정확한 최고의 정 보수단이다.
James T. Laney가 에모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그는 매일 걸어서 출퇴근했다. 어느 날, 넓은 터가 있는 작은 집에서 혼자 외롭게 사는 한 노인을 보았다. 그는 외롭게 보이는 그 노인에게 다가가 매일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노인의 집을 찾아가 잔디를 깎아주거나 커피를 마시며 2년이 넘게 교제를 나누었다. 어느 날, 그는 출근길에 노인을 볼 수 없어 집을 방문하고, 그 노인이 전날 운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서 깜짝 놀랐다. 자신과 교제했던 노인이 바로 코카콜라 회장을 지내다 은퇴한 Robert W. Woodruff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 유족이 다가와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입니다."
유서 내용을 본 그는 더욱 놀랐다.
그 유서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2년여를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 주고, 우리 집 뜰의 잔디도 함께 깎아주며 커피도 함께 마셨던 나의 친구 '레이니' 정말 고마웠어요! 나는 당신에게 25억 달러(2조 7천억 원)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세계적인 부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과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과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돈을 주었다는 사실에 레이니 교수는 놀랐다. 그는 자신이 받은 유산을 자신이 근무하는 에모리 대학의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내 마음속에 좋은 생각으로 가득하게 된다. 교만은 망하는 길이고, 겸손은 흥하는 길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면 할수록 눈총을 받고 미움을 산다. 교만한 사람은 올바른 기준을 알지 못하고, 자기 위주이고, 코앞의 것,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겸손한 사람은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노인과 바다』에는 희망의 이야기가 있었다. 산티아고는 하루 벌어 사는 어부 노인이다. 그에게 낚시를 배우기도 했던 마놀린 소년은 노인을 좋아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노인에게 있으면 좋은 일이 없고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노인의 배를 떠나라고 했다. 소년은 노인의 배를 떠나 많은 물고기를 잡았지만, 노인의 배를 떠난 것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소년은 노인이 기가 죽지 않게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하였다. 노인도 이런 소년을 많이 아꼈고, 힘든 순간마다 그 소년을 생각하였다. 생계의 위협을 받는 처지에서 소년이 가져다주는 아침 식사로 생활을 유지하고, 고기잡이 미끼도 소년이 챙겨주었다.
노인은 고기잡이를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바다로 나갔다. 그런 노인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년만큼은 안타까움과 존경심으로 응원하였다. 나이 든 어부 산티아고는 84일째 되는 날까지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85일째 되는 날에도 낡은 배와 낚싯대를 가지고 바다로 나갔다. 먼바다로 나간 노인은 묵직한 물고기의 당김을 느꼈다. 마침내 청새치 한 마리가 낚시를 물었다. 노인은 청새치를 놓치지 않으려고 모든 힘을 다하여 낚싯대를 붙들었다.
노인은 끝도 없는 실패와 불운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물고기를 잡지 못할 때도 묵묵히 다시 도전하러 바다에 나갔다. 이날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낚싯대를 붙들었다. 그러나 청새치가 너무 커 노인이 탄 배를 끌고 다녔다. 이틀 동안 청새치에게 끌려가던 노인은 청새치를 형제라고 부르며 위급한 환경에 적응하였다. 3일째에 청새치를 작살로 잡은 노인은 물고기를 팔 수 있을 것이라며 좋아했다.
청새치를 배에 싣지 못하고 배 옆구리에 묶어 끌고 가다가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의 공격을 받아 뼈만 남기고 모두 잃고 말았다. 이런 허탈한 상황에서 ‘큰 짐이 없어지니, 배가 가볍게 잘 달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그 큰 물고기를 모두 상어에게 내어주는 고통을 겪으면서 항구로 돌아왔다.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 일에 열중하다가 자신이 탈진 상태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결국 집으로 가는 길에 쓰러졌다. 항구로 돌아온 그의 곁에는 머리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새치의 잔해뿐이었다. 소년 마놀린은 노인이 무사하게 돌아온 것을 보고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도 물고기의 크기를 보고 놀랐지만 뼈만 있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비웃었고 소년은 노인을 위로하였다. 행복은 성공과 기쁨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수하는 일에도 존재하였다. 그는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오두막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각박한 현실을 알고 있는 노인과 소년의 마음이 조화를 이뤘다. 산티아고와 마놀린은 세대가 달라도 서로 어울릴 수 있었다.
우리는 대어를 낚기 위해 인생이라는 바다로 떠난다. 그러나 성공만을 위하여 사는 것은 아니다. 어부 산티아고는 돈도 없고, 가족도 없이 죽을 날이 가깝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이었다. 그는 희망의 배에서 희망의 청새치가 난도질당할 때도 그는 자신을 위로했다. 산티아고가 큰 고기를 잡고 싶은 꿈과 욕망은 적극적 삶의 활력을 부여했다. 욕망의 무게를 그대로 유지한 채 살다가 한계를 확인하는 순간 절망이 찾아들었다.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