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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Oct 02. 2021

복수심, 이토록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복수의 심리학>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

요즘 심심한 주말일 때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하나씩 보고 있습니다. 타란티노는 <킬빌>, <펄프 픽션>처럼 통쾌한 폭력이 난무하는 오락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거든요. 영화가 폭력적인데도 후련한 건 억압받는 주인공들이 깊은 증오와 분노로 악인에게 복수를 휘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면서 그런 강한 감정을 품어본 적이 손에 꼽아서, 복수심 하나만으로 일을 저지르는 인물들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복수의 심리학>을 쓴 스티븐 파인먼 심리학 교수는 복수심을 둘러싼 종교, 정치, 전쟁 등을 두루두루 살펴봅니다. 특히 2장에서는 복수를 주제로 한 문학과 영화,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복수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도 쓰였을 만큼 오래전부터 매우 인기 있는 소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특히 사법제도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범인을 단죄하지 못할 때 주인공의 복수는 정당화됩니다.


2장을 읽으면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두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2)>,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2009)>가 떠올랐습니다. <장고>에서는 자유를 얻은 흑인 노예 장고가 자신과 아내를 학대했던 노예 관리인들에게 당했던 폭언과 학대를 되갚으며 복수하고, 아내가 팔려 간 농장을 찾아갈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 <바스터즈>에서는 히틀러가 시사회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은 미군 중위가 나치를 소탕할 목적으로 작전을 짭니다. 그런데 영화관 주인인 유대인 여성 쇼샤나도 자신이 나치에게 당했던 억압과 폭력을 갚기 위해 따로 복수를 계획하죠. 복수는 흔히 비윤리적인 것, 자제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문학과 영화, 드라마에서는 악을 처단하고 선을 실현한다는 구실로 이 금기를 깨고 시원하게 복수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장고는 다른 흑인 노예들이 일하고 있는 목화밭에서 노예 관리인에게 복수합니다. 피로 물든 목화밭은 무척 상징적인 장면이지요.

2장에서는 픽션 속에서의 복수를 재미있게 풀어내지만, 챕터를 넘어갈수록 전쟁, 종교와 같이 우리 삶에서 복수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5장에서는 명예복수 즉,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대가로 행하는 복수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명예복수 또는 명예살인이라는 개념이 생소하지만, 무슬림 문화권에서는 종종 행해진다고 해요. 주목해야 할 점은 "명예살인의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 특히 성차별이 심한 공동체와 심하게 가부장적인 가족에 속한 여성들(106)"이라는 점입니다. "개인의 불명예는 가족과 친척 전체의 망신(107)"이기 때문에, 명예살인은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족 내에서 일어난다는 점이 너무나 충격적입니다.


저자는 명예살인이나 전쟁과 같이 그릇된 방식으로 발현되는 복수는 잘못되었지만, 복수심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복수심을 느끼지 않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불합리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는 애인이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콜센터 상담원이나 외식업 종사자는 정서적 학대를 매일 마주합니다. 이웃 간의 소음 때문에 일상 속에서도 고통받을 정도인데,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며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저는 이 책이 복수를 너무 우상화하지도 않고, ‘복수심을 잘 다스려라’라는 교훈적인 말로 끝맺지도 않아서 좋았습니다. 때로는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이토록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이 우리의 삶과 세계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시원한 콜라를 마신 뒤에 혀에 남은 찝찝함 같은 감정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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